일제강점기 재일 조선인 단체 상세보기
가나가와현협화회 (神奈川縣協和會(神奈川縣) )
활동기간 1939년 ~ 1945년
활동 지역 : 가나가와현(神奈川縣)
내용
  가나가와현(神奈川縣)에 조직된 조선인 통제동원단체. 가나가와현에는 일찍이 1926년부터 현 당국의 주도로 가나가와현내선협회가 조직되어 조선인에 대한 ‘융화사업’과 직업소개, 야학, 간이숙박소 등의 사업을 했으며, 그밖에도 현 각지에 크고 작은 조선인 융화단체들이 결성되어 활동했다. 1939년 이들 내선융화단체들을 통합하고 가나가와현내선협회를 재편하는 형태로 가나가와현협화회가 성립되었다. 기존의 가나가와현내선협회의 활동과 조직을 바탕으로 했으며 경찰서 단위의 지회(支會) 건설에 힘을 쏟았다. 1940년 말에는 지회 17개, 지도구(指導區, 지회 중 인구밀집지역을 다시 구역별로 나눔) 21개이며 보도반(補導班) 153개를 두었다. 지도원은 80명, 보도원은 448명이며 총 회원수는 1만 1,384명으로 당시 재주조선인의 약 46%를 조직했다. 가나가와현협화회의 지도원은 모두 경찰 내선계원(內鮮係員)이었다. 다른 현(縣)에서 유력자나 방면위원(方面委員) 등을 지도원으로 둔 것과 다른 특징적인 점이다. 가나가와현내선협회 시기보다 훨씬 더 강제적이고 통제력이 강한 조직으로 조선인을 전시 협력에 동원했다. 1939년 8월 반영(反英)시민 대회에 조선인을 동원했으며 식기 공출과 국방헌금을 강요했다. 1943년 조선 징병제 실시에 따라 가와사키시지부에서는 비행기 헌납운동을 벌이며 전체 가나가와현 조선인들에게 ‘10만 엔으로 전투기, ’가나가와현 재주 반도동포호(號)‘의 헌납을 촉구했다. 1944년 12월 30일에는 조선인에 대한 ’도항(渡航) 규제 철폐와 참정권 부여‘ 방침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요코하마시(横濱市) 쓰루미(鶴見)지부의 회원들이 3만 5천 엔을 거두어 육해군에 헌금을 내고, 전투기헌납운동도 일으켰다. 1945년 4월 가나가와현흥생회로 명칭을 변경했다.
참고문헌
• 「協和事業團體調」 1939,1940
• 神奈川新聞1942.2.21, 1943.8.26, 1944.12.31
•  朴慶植, 「日帝時期における'協和会'について-在日朝鮮人支配の内務・厚生省外郭団体」, 季刊現代史 5, 現代史の会, 1974
•  樋口雄一, 協和会-戦時下朝鮮人統制組織の研究, 社会評論社, 1986
문헌별 참조 내용
「南鮮地方の旱魃に對する在住朝鮮人の動靜」 「內務省警保局 在留朝鮮人運動日誌(1938~1942)」 朴慶植 編 『在日朝鮮人關係資料集成』第四巻·1, 三一書房,1976 : 신내천협화회 횡빈지부 소속회원 216명이 128엔 45전 거출, 소할경찰서에 기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