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식사전 DB 구축연구 상세보기

향갑노리개 香匣노리개 Hyang-gap-no-ri-gae, Woman’s pendant

성별
시대
연령
성인
신분
태그
노리개,향갑(香匣)노리개,향갑(香匣)
향(香)을 담은 작은 상자를 주체(主體)로 만든 노리개
Pendant with a perfume case
향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고조선시대부터라 여겨진다. <삼국유사> 고조선 단군신화 편에 보면, 환웅이 태백산 꼭대기(현재의 묘향산(妙香山)) 신단(神壇) 나무 밑으로 내려왔다고 기록하고 있어 환웅이 향을 피워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묘향산을 선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원시 종교에서 향을 피우는 것은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 혹은 망자의 세계와 연결 해 주는 행위이다. 그러나 향이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불교의 전래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원시종교에서는 신과 인간의 매개체 역할로서 향이 사용되었으나, 불교에서는 인간이 해탈의 경지로 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촉매로 사용되었다. 고려시대까지는 <선화봉사고려도경>에 남녀 모두가 향낭 차기를 즐겨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향이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노리개와 더불어 여성은 향낭과 향갑을 모두 패용하게 되었다. 향갑노리개는 주로 사각형으로 된 것이 많으며, 향갑의 재료로는 도금된 금속과 은으로 망을 만들거나, 옥을 투각하여 만들었다. 향갑 안에는 갑사로 향을 싸서 넣으며, 이때 갑사의 색이 바깥에 은은히 비치므로 매듭색과 갑사의 색을 같은 것으로 하거나 색 배합을 고려하여 매듭의 끈을 선택하였다. 향갑의 문양은 초화문양이 많으며, 그 외에도 십장생문양을 새겨 넣기도 한다. 향갑노리개는 대삼작노리개, 삼작노리개에 같이 사용하기도 하지만,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역시 단작 노리개이다. 향갑 노리개는 향낭과 같이 속저고리에 매달아 사용하였다. 여인들은 향갑노리개를 몸에 지니고 다니며 은근한 향기가 풍기도록 하였고, 한편으론 곽란[급성위장병]을 일으켰을 때와 같은 경우 구급약으로도 사용하였다. 흔히 볼 수 있는 길상무늬 향갑(香匣)은 한충향(漢沖香)에 공작 꼬리털을 입히고 구슬발처럼 토막토막 이어서 만들었다. 삼단(三段)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각 단에는 모란과 금사로 징검한 쌍희(囍)ㆍ수(壽)등의 길상무늬를 수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