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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錦 Geum, Compound si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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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錦),평직(平織),능직(綾織),수자직(繻子織),선염(先染)중조직(重組織),자지힐문금(紫地纈紋錦)
선염한 각종 채색실로 무늬를 직조한 중조직(重組織)의 견직물
Compound silk woven with multi-colored threads
금(錦)은 조직법에 따라 경금(經錦)과 위금(緯錦)이 있다. 경금이 먼저 생산되었고, 7세기 이후 페르시아의 영향으로 위금을 생산하게 되었다. 경금은 선염한 색사를 2~3중으로 정경한 후 평직 혹은 능직으로 무늬를 직조한 경중조직(經重組織)이다. 위금은 경금을 90도로 회전시킨 것으로 여러 색의 위사를 사용하여 위중조직으로 무늬를 직조하였다. 위금 무늬의 표면은 주로 능직이나 수자직으로 나타난다. 기원후 2세기경에 쓰여진 『삼국지(三國志)』에 “부여에서는 외국에 (사신으로) 나갈 때는 증수금계를 즐겨 입는다”고 하여 부여 인들이 견직물인 금(錦)을 이미 사용했음을 말해주고 있으며 중국의 여러 문헌자료에도 “동이(東夷)는 … 변(弁)을 쓰고 금의(錦衣)를 입었다”고 하였다. 고구려조(高句麗條)에 “공회 시에는 금(錦), 수(繡)로 만든 옷을 입는다.”고 하여 고구려 사람들의 의생활수준이 상당히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한원(翰苑)』 고구려조에는 “고구려에서 금을 짰는데, 자지힐문금(紫地纈紋錦)을 최상으로 쳤고, 다음은 오색금(五色錦), 그 다음은 운포금(雲布錦)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고대국가에서 금이 활발하게 생산되고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유물은 신라 천마총과 백제 무령왕릉에서 발굴된 경금(經錦)조각들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일본 나라에 있는 정창원(正倉院)에 ‘고려금(高麗錦)’이라고 부르는 통일신라시대의 보상화문금(寶祥花紋錦), ‘한금(韓錦)’이라 부르는 백제의 화조문금 등이 보관되어 있어 우리나라 고대 금직물의 실태를 볼 수 있다.
참고문헌 『後漢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