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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무복식 劍舞服飾 Gum-mu, A type of Korean traditional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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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괘자[褂子],협수(夾袖),검무복식(劍舞服飾),전복(戰服),전립(戰笠),전대(戰帶)
삼국시대에 연원한 춤으로 방울이 달린 칼을 들고 추는 춤
Dance performed with swords decorated with bells originated from the Three Kingdom period (18 BC-654 AD)
향악정재로서 출처는 창제된 것으로 헌종 14년(1848) 『무신진찬의궤(戊申進饌儀軌)』에 잡무곡(雜舞曲)에 이르기를 “건무(巾舞)다. 항장(項莊)이 검무(劍舞)를 추자 항백(項佰)이 소매로 막으며 항장에게 ‘공막(公莫)’이라고 말하였는데, 후에 검무가 되었다고 한다. 또 검기무(劍器舞)라고도 하는데, 향악정재에 사용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동경잡기(東京雜記)』에 의하면 “신라왕을 위하여 백제왕을 죽인 황창랑을 슬퍼하여 신라 사람들이 황창랑의 얼굴과 가면을 만들어 춤을 추어 검무가 시작되었다”라고 한다. 그러나 고구려 미천왕(美川王, 300-331) 시기 팔청리 고분벽화 등에서도 검무를 볼 수 있듯이 신라를 기원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검무는 고려사악지나 악학궤범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조선 초기에 검무는 궁중정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으며, 민간에서 계층을 초월하여 널리 확산되었던 연희가 궁중으로 편입된 것으로 정조 19년(1795)『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에서 최초로 확인된다. 정조 을묘년(乙卯年, 1795) 봉수당(奉壽堂) 진찬의궤(進饌儀軌) 정재도(呈才圖)에는 2인의 여기가 전립(戰笠)에 전복(戰服)을 입고 맞서서 춤을 추며, 헌종 무신년(戊申年, 1848) 진찬의궤(進饌儀軌)에는 여기 4인이 전립을 쓰고 전복을 입은 채 각각 검 2자루를 쥐고 2대로 나누어 서로 맞대하며 춤을 춘다 하였다. 순조 기축년(己丑年, 1829) 진찬의궤의 여령은 전립(戰笠)을 쓰고, 자적사괘자(紫的紗掛子)ㆍ전대(戰帶)를 띠며, 헌종 무신년(戊申年, 1848)에는 금향협수(金香夾袖)가 첨가되고, 고종 정축년(丁丑年, 1877) 이후에는 전립을 쓰고, 아청괘자(鴉靑掛子)ㆍ금향협수(金香夾袖)ㆍ남전대(藍戰帶)를 갖춘다. 이는 무관의 군복제도에 근거한 남장 차림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