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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태평지무복식 保太平之舞服飾 Bo-tae-pyeongji-mu, A type of Korean traditional dance

성별
시대
연령
청소년
신분
태그
상(裳),대(帶),보태평지무복식(保太平之舞服飾)
선조(宣祖)의 문덕(文德)을 찬미하는 내용의 일무(佾舞).
Dance performed to eulogize the ancestor’s dignity and virtue during which dancers form one or more lines
출처는 조선시대 세종(世宗) 29년(1447)에 창제된 것으로 종묘제례악무(宗廟祭禮樂舞)의 하나이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승되고 있다. 보태평지무는 처음에 회례악무(會禮樂舞)로 창작되었으나 세조(世祖) 9년(1463)에 최항(催恒)에게 명하여 세종 때 가사 내용의 뜻을 그대로 살려 간추렸고, 세조 10년(1464) 친제(親制) 때에 종묘제례악무로 채택하였다. 보태평은 문무(文舞)로 영신(迎神)ㆍ전폐(典幣)ㆍ초헌(初獻)에 춤을 추고, 무보(舞譜)는 『악학궤범(樂學軌範)』과 영조(英祖) 무렵으로 추정되는『시용무보(詩用舞譜)』에 전한다. 악학궤범 권 2에 기록된 보태평지무 복식은 악공38인 중 춤 36인, 둑(纛) 2인은 모두 진현관(進賢冠)을 쓰고 남주의(藍紬衣)에 적상조연(赤裳皂緣, 검은 선을 두른 붉은 치마)을 착용하며, 적말대(赤抹帶)를 띠고 백포말(白布襪)에 오피리(烏皮履)를 신는다. 악학궤범 권5에 기록된 보태평은 향악정재로서 회례연 연향 때 여기(女妓)가 추는 춤이며, 여러 가지 진법에 비추어 종묘제향(宗廟祭享)의 보태평지무와 다르다. 지금은 연향 때 여기가 추었던 보태평은 전해오지 않고 있다. 보태평의 여기 36인은 모두 단장(丹粧)을 입고 잡식(雜飾)을 하고 약(籥)과 적(翟)을 들고 손을 여미고 선다. 단장은 홍라(紅羅) 또는 사(紗)로 만든 단의(丹衣)에 금화문(金花紋)을 박은 갖가지 색의 끈 8가닥을 드리운 홍단상(紅段裳), 금화문을 박은 홍초대(紅綃帶)를 갖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