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마끈
Belt for skirt
『광재물보(廣才物譜)』에 ‘군대’를 ‘치마끈’으로 풀이하고 있다. 치마끈은 ‘군대’라는 명칭 외에 영(纓) 또는 영자(纓子)라는 명칭을 더 흔히 사용하였다. 1627년 소현세자(昭顯世子)의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에는 세자빈의 치마 재료를 열거한 부분에 허리말기와 치마끈을 각각 ‘요(腰)’와 ‘영자(纓子)’로 기록하고 있으며 상궁(尙宮) 등의 치마 재료를 언급한 부분에서는 요영(腰纓), 즉 ‘요(腰)’와 ‘영(纓)’으로 기록하였다. 조선시대 『가례도감의궤』 등에 기록된 치마의 말기와 끈 소재는 대체로 백초(白綃), 백주(白紬) 등을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