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감과 안감 사이에 솜을 두고 지은 방한용 치마
Padded skirt worn for winter
요즈음은 솜치마를 입지 않지만 조선시대의 유물과 기록 중에는 솜치마[襦赤亇]가 적지 않게 보인다. 인천 석남동 무연고 묘에서 출토된 솜치마 2점이 조선시대 솜치마 유물 중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리고 기록으로는 1632년 『인목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仁穆王后殯殿魂殿都監儀軌)』에 남색 노주주(潞洲紬) 솜치마[襦赤亇] 기록이 보이고 1637년에 사망한 인목왕후의 어머니 광산부부인 노씨의 장례일기에는 습용(襲用)으로 사용한 남색 운문단(雲紋緞) 솜치마[襦裳]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1848년 『순화궁접초(順和宮帖草)』 「사졀복색자장요람」에 “근래는 솜둔 치마는 입지 않고 쟁치마를 일찍 입고 늦게 벗으니”라는 대목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솜치마는 19세기 중엽 이후 서서히 사라진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