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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 戰服 Jeonbok, Man's coat

연령
성인,아동
신분
태그
괘자(掛子),답호[搭護],쾌자(快子),전복(戰服)
협수나 두루마기 위에 덧입는 소매 없는 옷
Man’s sleeveless coat
전복(戰服)은 자의(字意)로 보아 전쟁과 관련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상식(朝鮮常識)』(1937)에는 군속(軍屬)이 입게 되면서 생긴 명칭이 ‘전복(戰服)’이라 하였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군관이 착용한 옷 중 협수(狹袖)나 협수주의(狹袖周衣, 두루마기) 위에 덧입었던 소매 없는 옷이다. 전립(戰笠)과 함께 착용한 전복 기록은 선조 26년(1593)의 기록이 처음이다. 전복은 깃과 소매, 섶이 없는 무수대금형(無袖對襟形)이며 양 옆선에 무가 달려 있고 옆과 뒷중심선에 트임이 있는 형태이다. ‘괘자(褂子)’ 혹은 ‘쾌자(快子)’라고 하는 옷과 유사하다. 괘자는 네모지거나[방령] 또는 둥근 대금형 깃이 달려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전복과 유사한 복식으로는 괘자 외에 ‘답호[搭護]’가 있다. 답호는 조선 전기 직령(直領) 계통의 반수(半袖) 형태에서 소매가 없어지고 곧은 깃이 대금형으로 변화되면서 점차 전복과 유사한 형태가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영조의 재궁의대(梓宮衣襨)(1776)에 답호[搭護] 32점, 전복(戰服) 2점, 배자 1점 등의 기록이 있다. 이 기록으로 볼 때, 전복과 답호는 다른 옷이었음을 알 수 있다. 1884년(고종 21) 윤5월 갑신의제개혁(甲申衣制改革) 때 사복(私服) 제도를 고쳤다. 도포(道袍), 직령(直領), 창의(氅衣), 중의(中衣)처럼 소매 넓은 옷을 폐지하고 관리들은 착수의(窄袖衣, 두루마기)에 전복을 입고 사대(絲帶)를 띠도록 하였다. 이후 관리들은 평상복으로 전복을 입게 되었다. 동년 6월에는 전복의 명칭이 아름답지 못하다고 하여 답호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사람들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세속에서 부르는 전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전쟁터에서 입는 옷으로 오해하여 반발이 있자 답호로 바꾼 것이었다. 당시 전복과 답호가 동일한 복식을 지칭하는 용어임을 알 수 있다. 1895년(고종 32) 3월에는 공적인 예복과 사적인 예복에서 답호를 없앴으니 결국 전복 제도가 폐지된 것이다. 간혹 전복[괘자]을 착용하는 어른도 있었으나 점차 착용이 줄어들었고 대신 남아들의 돌복에만 남게 되었다. 현존 전복 유물을 보면 홑으로 만든 것과 겹으로 만든 것이 있으며 겉감의 색상은 흑색이나 남색이 대부분이고 안감은 홍색인 경우가 많다. 앞여밈은 끈으로 하는 경우와 매듭단추로 하는 경우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