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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자 快子 Kweja, Sleeveless coat
태그
괘자[褂子],쾌자(快子),괘의(掛衣),전복(戰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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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戰服)과 유사한 소매 없는 옷
Sleeveless coat; similar shape with jeonbok
무수대금의(無袖對襟衣)로 『조선고유색사전(朝鮮固有色辭典)』에 “옛날의 전복(戰服)의 일종”이라 하여 그 형태는 무가 있고 옆트임과 뒷트임이 있는 전복(戰服)과 유사하다. 쾌자의 최고(最古) 기록은 문효세자(文孝世子, 1782-1786) 국상(1786)시 흉례복에 등장하는데 쾌자는 본래 중국의 의복명으로,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아언각비(雅言覺非)』에서 “快子란 중국음 괘자(褂子)에서 만들어진 음으로, 褂子가 掛子로 잘못 전해진 것” 으로 褂子와 掛子는 동의어임을 어원적으로 고증하였다. 영조 재궁의대(梓宮衣襨)(1776)에 답호[搭護]와 전복(戰服)이 기록되어 있는데, 정조 『재궁의대(梓宮衣襨)』(1800)에 답호와 쾌자(快子)로 기록되어 있어 이시기부터 전복(戰服)대신 쾌자(快子)가 쓰인 것으로 보인다. 문효세자 국상(1786) 염습의대(殮襲衣對)에 곤룡포 다음으로 초록운문단(草綠韻文緞) 쾌자(快子)가 기록되어있는데 순조 재궁의대(梓宮衣襨)에 쾌자(快子)만 기록된 것으로 보아 답호[搭護]대신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조선말기 시대 변천에 따라 쾌자(快子)는 전복(戰服), 답호와 같아진 것으로 보인다. 개화기 장서각 이왕실고서의 의대발기(衣襨發記: 왕과 비, 왕세자와 비의 의류물목)와 의복발기(衣服發記:의대발기 이외의 의류물목)를 보면 궁중 왕가에서는 주의 위에 쾌자를 착용하였고,『만기요람(萬機要覽)』에 보면 군복으로 ‘홍색 3승포 청색 목면쾌자’란 기록이 있다.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의『조선상식(朝鮮相識)』에는 후세에 와서 쾌자를 답호라 하여 하급군속 및 조예의 제복이 되었다고 한다. 쾌자(快子)는 왕 이하 서민 하급군속에 이르기까지 모두 착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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