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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기ㆍ선군 無竹伊ㆍ旋裙 MujigiㆍSungun, Tiered petticoat
태그
선군(旋裙),속치마[赤亇],무지기[無竹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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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ㆍ조선시대 부녀들이 정장할 때 치마 속에 입은 여러 겹으로 된 속치마
Multi-colored tiered skirt worn by women of the upper class when formally attired
무지기속치마는 무족(無足), 무족의(無足衣), 무족상(無足裳)이라고도 하며,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에 기록되어 있는 고려시대 부인들이 착용한 선군(旋裙)과 같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박규수(朴珪壽)가 헌종 7년(1841)에 완성한『거가잡복고(居家雜服攷)』에 의하면 치마 안에 짧은 치마 십 수개를 단 무족군(無足裙)을 입는데 이는 고려시대에 시작된 것으로 풀을 먹여 뻣뻣하게 하였으며, 그 위에 다시 큰 군롱(裙籠)을 입는다고 하였다. 19세기 『발기(發記)』에는 ‘무족치마’와 함께 ‘웃무족치마’도 보인다. 선군은 중국 송(宋)나라 도읍 경도(京都)의 여기(女妓)가 입기 시작하여 후에 일반 사대부가에서도 착용한 것으로서 부녀들이 나귀를 타고 외출할 때 입었으며, 앞과 뒤가 열려 말타기에 편했다고 했다. 선군은 길이가 다른 여러 개의 치마를 한 허리에 달아서 겉치마의 폭이 풍성히 퍼지도록 하였고, 겉치마는 8폭에 길이가 매우 길어서 걸을 때는 겨드랑이 밑에 끼고 다녔다고 한다. 이로 말미암아 부귀한 집안의 처첩들은 치마 한 벌 만드는 데도 옷감이 7, 8필이나 들었다. 선군은 조선시대에까지 이어져 무지기라고 불리는 3층ㆍ5층 혹은 7층의 속치마로 발전되었다. 조선시대 상류계급에서 정장할 때 치마 밑에 입어 겉치마를 풍성하게 보이도록 하였는데 서양의 페티코트(petticoat)와 같은 역할을 하였다. 조선시대 무지기는 모시 12폭을 가지고 3층의 삼합무지기, 5층의 오합무지기, 7층의 칠합무지기를 만들었으며, 주름은 단까지 주름을 세워 만든 것도 있고, 보통 치마 같이 위에 주름만 잡아 하나의 허리에 층을 합쳐 달기도 하였다. 가장 긴 길이가 무릎 아래 정도이며, 다음 층과의 간격은 5~10cm 정도이다. 나이든 사람은 한 가지 색으로 층층이 물들이고, 젊은 사람은 층층마다 갖가지 채색을 하여 물들였는데, 무지개 같다고 하여 ‘무지기’ 또는 ‘무지기치마’라고 불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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