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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바지 把持. (Sok)baji, Woman's drawers

성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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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신분
태그
속옷,홑바지[把持],단속곳[短小袴],속속곳,봉지(奉只),개당고(開襠袴),고쟁이,고(袴),치마[赤亇],겹바지[把持],속바지[把持],누비바지[把持],솜바지[把持],세가닥바지[把持]
여성 속옷의 일종으로 단속곳 아래 속속곳 위에 착용한 바지
Woman's underpants
바지라는 용어는 조선 전기의 문신 정인지(鄭麟趾, 1396-1478)가 파지(把持)라고 기록한 것이 최초이다. 영조(英祖) 때의 『국혼정례(國婚定例)』, 『상방정례(尙方定例)』에도 파지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조선 후기의『발기(發記)』에 바지라는 기록이 처음 보인다. 왕과 왕비의 바지는 특별히 봉디(또는 봉지)라 하였다. 여성용 바지는 고(袴)로서의 바지가 아니라 치마 안에 입던 속옷으로서의 바지를 의미한다. 조선 초기『악학궤범(樂學軌範)』 악공복(樂工服)에 나타난 말군(襪裙)을 보면, 통이 넓고 뒤가 갈라지며 허리끈과 어깨에 걸치는 끈이 달려있는데, 이것을 양반가의 부녀자들이 바지 대신 입고 그 위에 치마를 입음으로써 귀천을 가렸다. 그러나 점차 귀천 없이 모두 착용함에 따라 여자용 속옷의 하나가 되었다. 이 속바지는 단속곳 밑에 속속곳 위에 입었고, 남자 바지와는 달리 밑이 따로 떨어져 있는 ‘개당고(開襠袴)’의 형태로서 허리끈이 달려있다. 이렇게 밑을 따로 떨어지게 한 것은 용변을 편하게 보기 위해서였는데, 당시 여인이 용변을 볼 때에는 단속곳의 한 쪽 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바지 밑을 벌린 다음 속속곳 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보았다. 바지는 옛날에는 노소(老小)를 막론하고 모두 입었던 것으로 재봉형식에 따라 홑바지ㆍ겹바지ㆍ솜바지ㆍ누비바지로 나뉘고 있으며, 특히 여름용 삼베로 만든 홑바지를 고쟁이라고 부른다. 겨울에는 명주ㆍ은주ㆍ삼팔ㆍ산동주ㆍ자미사ㆍ숙주ㆍ호박단 등으로 안에 솜을 넣어 지어 솜바지를 입었고, 봄ㆍ가을에는 겨울 감에다 솜을 빼고 겹으로 지은 겹바지를 착용하였으며, 또 숙고사 등에 얇게 솜을 넣어 초봄ㆍ늦가을에 입기도 하였는데, 누비로도 많이 해 입었다. 바지는 조선전기에 바지통이 직선형인 통 배래인 것이 흔하지만 조선후기 18세기 이후에는 바지통의 밑이 좁아져서 붕어배래로 바뀌며, 일반적으로는 이 바지 위에 치마를 입으나 좀 더 잘 갖추어 입으려면 그 위에 단속곳을 덧입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