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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치마 Sokchi-ma, Underskirt or petticoat

성별
시대
연령
성인
신분
태그
상(裳),군(裙),속옷,단속곳[短小袴],속속곳,속치마[赤亇],바지[把持],치마[赤亇],다리속곳,대슘치마[赤亇],무지기치마[赤亇]
겉치마 밑에 받쳐서 입는 치마
Underskirt or petticoat
치마는 삼국시대 문헌에 상(裳) 또는 군(裙)으로 표기되어 있고, 세종 2년(1420) 원경왕후(元敬王后)의 천전의(遷奠儀)에는 ‘쳐마(赤亇)’로 기록되어 있으며, 최세진(崔世珍, 1468-1542)이 지은 『훈몽자회(訓蒙字會)』에는 “츄마 상(裳)은 남복(男服)이며, 츄마 군(裙)은 여복(女服)“라고 하였다. 조선후기 정조 19년(1795)에 쓰인『한중만록(閑中漫錄)』에는 혜경궁 홍씨(惠慶宮洪氏)의 삼간택(三揀擇)때 정경왕후가 내린 물목에 “치마“라고 표기되어 있다. 치마를 입을 때는 옷맵시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그 밑에 반드시 속옷을 받쳐 입었는데, 한복용으로 오늘날과 같은 속치마를 착용한 것은 개화기 무렵으로 1920년대 이전까지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여전히 전통적인 속옷을 입었다. 하의에는 팬티 역할을 하는 다리속곳을 입고 속속곳ㆍ바지ㆍ단속곳 등 두 가랑이로 된 속옷을 치마 밑에 입어 속치마를 대신하였다. 이 밖에도 양반가의 부녀자들은 정장 시에 장식적인 목적으로 대슘치마, 무지기치마를 착용하였다. 1920년대 이후 서양식 셔츠가 들어오면서 바지와 단속곳 대신 ‘사루마다(猿股,さるまた)’라는 블루머 형태의 무명 속바지를 입었고, 그 위에 인조견으로 만든 속치마를 덧입었는데 어깨허리(조끼허리)를 단 통치마형이었다. 처음에는 개량형 짧은 치마 속에 입었으나 후에는 전통적인 치마에도 착용하게 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