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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유관 遠遊冠 Won-yu-gwan, King’s and Prince’s crown

성별
시대
연령
성인,청소년
신분
태그
관모(冠帽),강사포(絳紗袍),조복(朝服),원유관(遠遊冠),통천관(通天冠)
조선시대에 왕이나 세자가 조복의 용도로 강사포(絳紗袍)와 함께 착용한 관모
Crown for the king and crown prince worn with the ceremonial robe, gangsapo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왕의 원유관은『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禮)』에 의하면 검정색 비단[羅]을 소재로 한 9량의 원유관으로서, 매 량에는 황(黃)․창(蒼)․백(白)․주(朱)․흑(黑) 다섯 색상의 옥(玉)을 순서대로 전후 9개씩 총 18개 장식하였다. 여기에 금잠을 꽂고 관 양편에 주영(朱纓)을 하여 턱 아래에 매었다. 원유관은 중국에서 제왕의 관모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 공민왕 19년(1370) 5월, 명(明) 태조로부터 7량의 원유관을 받아 사용하게 된 것이 그 시초이다. 이후 조선 초 세종 20년(1438) 10월에 명으로부터 새로이 원유관을 받아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때의 원유관은 9량이었다. 강사포와 함께 임금의 9량 원유관 제도는 국말까지 존속되었다. 원유관과 유사한 제도인 황제의 통천관은 12량이었는데, 광무 1년 고종황제는 원유관 대신 통천관을 착용하였다. 왕세자용의 원유관은 연산군 6년 12월에 7량 원유관제가 처음 시행되었는데, 『국조속오례의보(國朝續五禮儀補)』권2 가례(嘉禮)에 의하면, ‘왕세자의 원유관은 8량 3채옥으로써, 겉을 모라(毛羅)로 싸고 매 량의 전후에는 세 가지 색상의 옥을 8개씩 장식하며 관의 양편에 주조(朱組)를 매고 금잠을 하였고, 세손의 원유관은 7량 3채옥’으로 기록되어 있다. 광무 1년에 제정된 황태자의 원유관은 9량이다. 현존 유물 증에는 의친왕의 것으로 전하는 원유관 1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