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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 儒巾 Yu-geon, Man’s c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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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포(道袍),유건(儒巾),민자건(民字巾),직령포(直領袍)
조선시대 사대부․성균관 학생․생원 등이 착용한 쓰개
Cap fornoblemen and Confucian scholars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검은 색 베를 사각형의 자루모양으로 만든 후 양 옆을 안쪽으로 깊숙이 접어 넣은 후, 위 솔기 부분을 뒤쪽으로 5~6㎝정도 눕히면서 양 귀를 자연스럽게 잡아 뺀 형상이다. 따라서 앞면은 반듯하게 서 있고 뒷면의 위는 차양처럼 비스듬히 숙어 있게 되며 착용 시는 건의 밑변 좌우에 달린 끈을 턱 아래에 매어 고정한다. 연중행사로 마을마다 향교에서는 일 년에 몇 차례씩 성현에게 차례[茶禮]를 행하는데, 일반의 유지들은 도포(道袍)에 흑립(黑笠)을 착용하지만 유생들만은 유건을 썼다. 유건은 『세종실록(世宗實錄)』 15년(1433) 10월 기록에 처음 등장하는데, 사역원(司譯院)의 학생들 중 전직[前銜] 7품 이하로서 역과(譯科) 출신이 아닌 자는 모두 유건을 착용토록 하고 있어 조선 초기에는 낮은 계층 유생들의 쓰개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세종 20년(1438) 2월, 진사(進士)는 모두 흑단령(黑團領)을 입고 유건(儒巾)을 쓰고서 생원의 예와 같이 사흘 동안 유가(遊街)하게 하도록 하여 급제 시 차림새를 파악할 수 있다. 선조 7년(1574) 11월에는, 국자감(國子監)의 거인(擧人)이나 서정(西庭)에 참례(參禮)하는 무학생(武學生)은 모두 유건(儒巾)과 흑단령(黑團領)을 착용하도록 하여 제도상으로도 착용 범위가 확대되었다. 유건은 원래 중국의 제도이나 광해군 2년(1610) 윤3월의 기록을 보면, 조선의 유생들이 착용한 건은 이미 중국의 제도와 달라졌음을 알 수 있으며, 이익의 『성호사설(星湖僿說)』 인사문 진사 건복조에도 조선의 유건은 민자(民字) 모양의 중국의 유건과 형상이 다름을 적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유건은 광해군대 이전에 이미 후대에 보이는 ‘사(士)’자 모양으로 그 형태가 변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종 10년(1669) 2월에, 유생들의 일상 쓰개로 유건(儒巾)을 착용하도록 정하였는데, 풍속화를 보면 과거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유생들은 유건에 넓은 소매의 직령포(直領袍)를 입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石宙善, 1993, 『冠帽와 首飾』, 서울: 석주선기념박물관.
             『宣祖實錄』
             『世宗莊憲大王實錄』
             『英祖實錄』
             『顯宗實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