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식사전 DB 구축연구 상세보기

호수 虎鬚 Hosu, Ornament

성별
시대
연령
성인
신분
태그
융복(戎服),호수(虎鬚),전립(戰笠),입식(笠飾),공작미(孔雀尾),정자(頂子)
조선시대 문무관(文武官)이 융복(戎服)차림을 할 때에 입자(笠子)에 꽂아 장식한 입식(笠飾)의 하나
Hat ornament in the shape of barley ears used to decorate ipja
호랑이 수염으로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명칭으로, 원래는 맥수(麥穗) 즉 보리이삭에서 연원한 것이며, 형태는 호랑이 수염을 가느다란 나무 끝에 부착시켜 마치 보리 이삭같이 만든 것이다. 『영조실록(英祖實錄)』 26년(1750) 9월, “호수의 사용은 현종이 온천에 거둥할 때에 시작되었는데, 이때에 백관이 입자(笠子)에 보리이삭을 꽂다가 그 후 호수를 가식하게 되었다”는 기록이 있고, 정조대 『일득록(日得錄)』에는 “현종이 온천에 거둥할 때 보리 풍년이 크게 들었으므로 왕이 크게 기뻐하여 신하들에게 보리 이삭을 꽂아 풍년을 기념하게 하였다. 그 후 군복에 호수를 꽂는 것은 곧 보리 이삭이 남긴 뜻이다. 지금도 금군(禁軍) 중에 가난하여 호수를 갖추지 못하는 자는 보리 이삭으로 대신하니 옛일이 전해진 것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입자에 호수를 장식하는 습속은 현종대(1660~1674) 이후 생긴 것으로써, 그 근원은 보리이삭을 융복의 입자에 꽂아 장식했던 데에서 찾을 수 있다. 『영조실록(英祖實錄)』 5년(1729) 2월, 효장세자(孝章世子)의 묘(墓)에 임곡(臨哭)할 때 시위(侍衛)의 융복에 꽂은 호수(虎鬚)를 제거토록 한 기록이 있고, 같은 해 3월에는 사묘(私廟)에 동가(動駕)할 때 대장(大將)은 호수(虎鬚)와 입식(笠飾)을 갖추도록 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호수는 무관 중에서도 높은 품계에서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정조실록(正祖實錄)』 17년(1793) 10월과 『순조실록(純祖實錄)』 34년(1834) 4월, 융복 제도의 개혁에 대한 논의 중 전립에 호수를 삽식하는 것은 오래된 풍습이므로 존속해야 한다는 기록이 있어 순조 때까지도 호수의 풍습이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