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전서총목 상세보기
『고삼분』 1권 내부장본(『古三墳』 一卷 內府藏本)
분류 경부 > 역류
저자 미상
번역

살펴보건대 ‘삼분(三墳)’이라는 명칭은 『좌전』에 보이지만, 주나라와 진(秦)나라 이래의 경전과 제자서, 사서(史書)류의 책들 중 이에 관한 학설을 인용한 것이 하나도 없어서, 단지 한대에서 당대까지만 전혀 기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판본에 대해 조공무의 『군재독서지』에서는 장상영(張商英)이 북양(北陽)의 민간 가옥에서 얻었다고 말하였고, 진진손의 『직재서록해제』에서는 모점(毛漸)이 당주(唐州)에서 얻었다고 말하였으니, 대체로 북송 사람이 지은 것이다.

이 책은 「산분(山墳)」과 「기분(氣墳)」 및 「형분(形墳)」으로 나누어 『연산』을 복희의 『역』으로, 『귀장』을 신농(神農)의 『역』으로, 『건곤(乾坤)』을 황제(黃帝)의 『역』으로 삼아 각각을 넓혀 64괘를 만들고 전(傳)을 붙여 놓았다. 이 명칭들은 모두 훈고가 불가능하다. 또 『하도대성기(河圖代姓紀)』와 『책사정전(策辭政典)』과 같은 부류를 섞어 놓아 천박하고 비루함이 더욱 심하다. 수인씨(燧人氏)를 유소씨(有巢氏)의 아들로, 복희씨를 수인씨의 아들로 적은 부분에 이르면, 예로부터 전해온 위서(僞書)의 치졸함이 이보다 더함이 없다. 따라서 송, 원 이래로 정초(鄭樵)를 제외하고는 한 사람도 이 책을 신뢰한 이가 없다.

명나라 때에 하당(何鏜)이 판각하여 『한위총서(漢魏叢書)』에 삽입하고 또 “송나라 완함(阮咸)이 주석하였다.”라고 적었으니, 위서 중의 위서로 더욱 판별할만한 것이 못된다.

 

안(案): 『춘추좌씨전』에서는, 의상(倚相)이 “「삼분」, 「오전(五典)」, 「팔색(八索)」, 「구구(九丘)」 등을 읽을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으며, 공안국이 「서서(書序)」에서 풀이한 것은 비록 의탁하여 나온 것이긴 하지만, 유희(劉熙)의 『석명(釋名)』에 이르면 확실히 고서(古書)에 속하게 된다. 글의 뜻을 풀이한 것에 따르면, 「삼분」은 「서류(書類)」이지 「역류(易類)」가 아니다. 그러나 위조된 판본이 이미 삼역(三易)에 가탁하였기에 다시 「서류」 속으로 덧붙일 수는 없고, 잠시 『역위(易緯)』의 사례를 따라 그 목록을 여러 학자들이 지은 『역』에 관한 글들의 끝부분에 덧붙여둔다. (모영환)

 

----------------------------------------------------------------------------------------------------

 

이상은 「역류」 317부(部) 2,400권 <원주: 그 중 49부는 권수(卷數)가 없다.>과 「부록」 1부 1권으로, 모두 「존목」에 붙여두었다.

각주
원문

古三墳一卷 內府藏本

案 ‘三墳’之名見於『左傳』, 然周秦以來經傳子史從無一引其說者, 不但漢代至唐咸不著錄也. 此本晁公武『讀書志』以爲張商英得於北陽民舍, 陳振孫『書錄解題』以爲毛漸得於唐州, 蓋北宋人所爲. 其書分「山墳」·「氣墳」·「形墳」, 以『連山』爲伏義之『易』, 『歸藏』爲神農之『易』, 『乾坤』爲黃帝之『易』, 各衍爲六十四卦而繫之以傳. 其名皆不可訓詁. 又雜以『河圖代姓紀』及『策辭政典』之類, 淺陋尤甚. 至以燧人氏爲有巢氏子·伏羲氏爲燧人氏子, 古來僞書之拙莫過於是. 故宋元以來自鄭樵外, 無一人信之者. 至明何鏜刻入『漢魏叢書』, 又題爲 “宋阮咸註”, 僞中之僞, 益不足辨矣.

案: 『左傳』稱倚相 “能讀「三墳」「五典」·「八索」·「九丘」”, 孔安國「書序」所解, 雖出依託, 至劉熙『釋名』則確屬古書. 據所訓釋, 則「三墳」乃‘書類’, 非‘易類’也. 然僞本旣託於三『易』, 不可復附‘書類’中, 姑從『易緯』之例, 附其目於諸家『易』說之末.

 

----------------------------------------------------------------------------------------------------

 

右「易類」三百十七部, 二千四百卷 <內四十九部無卷數>, 「附錄」一部一卷, 皆附「存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