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러시아 문화 토포스 비교 사전 상세보기
도박
범주명 문학과 예술
토포스명(한글) 도박
토포스명(프랑스) jeu (de hasard / d'argent)
토포스명(러시아) азарт
정의 1. 운명적인 것을 믿으면 믿을수록 더 도박에 집착한다.
토포스의 기원과 형성(프랑스)   프랑스어에서 일반적으로 도박 혹은 노름을 뜻하는 말은 '죄(jeu)'이다. 그런데 이 명사는 ‘도박’과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는다. 즉 jeu는 도박을 의미할 때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놀이’, ‘게임’, ‘유희’라는 보다 넓은 의미 내포를 갖는다. 그러니까 jeu가 노름이나 도박을 의미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화용론적 맥락이 전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 결론적으로, 단일한 단어로서 그 자체로 도박이나 노름을 뜻하는 명사는 프랑스어에 존재하지 않는다. 
  맥락과 관계없이 곧바로 그런 의미를 내기 위해서는 결국 부가적인 수식어가 붙어야 하는데, ‘우연’이라는 의미의 명사 hasard가 첨가되어 jeu de hasard라고 말하면 그제야 ‘도박’이나 ‘노름’의 의미와 훨씬 가까워진다. 그렇지만 jeu de hasard 역시 ‘도박’과 완벽하게 상응하는 명사구는 아니다. 돈내기를 하지 않는 게임이더라도, 그 게임을 성립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우연과 요행이 작용하는 경우 얼마든지 jeu de hasard라고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더 직접적으로 ‘돈내기’를 일컫는 말은 jeu 다음에 ‘돈(argent)’이라는 부가어를 붙여 만들어진 jeu d'argent이 있다. 말 그대로 돈을 걸고 하는 놀이 혹은 게임인데, 문제는 jeu de hasard 혹은 jeu d'argent이라는, 또는 그 둘을 합성한 jeu de hasard et d'argent이라는 말들은 그 발화 빈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프랑스인들은 일반적인 ‘놀이’ 혹은 ‘게임’을 의미하는 명사 jeu를 일정한 문맥의 도움을 받아 ‘노름’ 혹은 ‘도박’이라는 의미로 그대로 써 온 셈이다. 그래서 우선, 프랑스어 문화권에서는 ‘놀이’ 혹은 ‘게임’과 ‘노름’ 혹은 ‘도박’ 사이에 존재하는 의미 지형학적 거리가 우리말에서의 그것만큼 멀지는 않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프랑스어 jeu의 어원을 거슬러 오를 때 제일 먼저 만날 수 있는 것은 라틴어 ‘요쿠스(jocus)’이다. 요쿠스는 원래 ‘익살’ 혹은 ‘농담’의 의미를 가지고 쓰였는데, 현재의 프랑스어 jeu 의 의미, 즉 ‘놀이’, ‘재미’, ‘오락’의 뜻을 실어 나르던 또 다른 라틴어 ‘루두스(ludus)’ 혹은 ‘루디(ludi)’로부터 그러한 의미들을 이어받아 이 두 명사들을 대체하기에 이른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라틴어 명사 루두스와 루디는 나름으로 프랑스어에 그 파생어들을 남기고 있는데, ‘놀이의’, ‘유희에 관한’의 의미를 갖는 형용사 ludique, ‘장난감대여소’를 뜻하는 ludothèque 등이 그것들이다. 그러나 라틴어 루두스와 관련하여 일반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표현은 아마도 ‘호모 루덴스’일 것이다. 네덜란드의 석학 호이징가는 1938년에 동명의 저서에서 유럽 문명의 생성과 전개에 기여한 ‘놀이’의 의미와 가치를 분석한 바 있는데, 그 영향력은 상당하여 호모 루덴스를 ‘호모 사피엔스’ 및 ‘호모 에렉투스’ 등과 함께 하나의 굳어진 표현으로 정립시켰다.
  보에티의 저서 『자발적 종속에 관하여』에 따르면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 사이러스 2세는 리디아를 자신의 속국으로 복속시켰는데, 무력이나 파괴에 의한 방법이 아니라 도박장들을 리디아에 개설함으로써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였다. 그곳에 설치된 도박장들은 결국 리디아인들의 저항 의지를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사실 도박은 고대로부터 인간들을 열광시켜 왔다. 이미 이천년 전에 쓰인 힌두교 서적 『마하바라타』에는 주사위 노름에 빠져 파멸해가는 한 노름꾼의 얘기가 등장한다. 또한 매우 일찍부터 종교당국이나 통치 권력은 도박을 규제하려 애쓴 기록들이 남아있다. 그리스나 로마 제국 역시 주사위 도박을 법으로 금지시킨 바 있다. 그리고 기독교, 이슬람, 유태교 등 거의 모든 종교의 지도부는 도박을 억제하려 노력하였다. 역대 프랑스의 국왕들 역시 도박의 관행을 종식시키기 위해 노심초사하였다. 권력들은 인간이 지닌 거의 본능적인 그 열정을 때로는 부분적으로 허용하는가 하면 또 때로는 강경하게 대응하기도 하였다. 도박의 관행 역시 그 방법과 형태를 새로이 개발하면서 늘 사회 안에 존속하였다. 시대에 따라 주사위, 카드, 카지노, 경마, 나아가 정부 주도의 로또 및 스포츠 로또 등, 다양한 방식의 도박이 사람들의 사행심을 부추기고 또 만족시켜왔다. 가령 15~16 세기에는 독일 출신의 프랑스 용병들이 ‘랑스크네’라는 새로운 카드놀이를 전해주어 사람들 사이에 크게 유행하였던 적도 있었다.
  프랑스 혁명기에는 금지 조치가 오히려 완화되어 부분적으로 허용되기도 하여 파리를 비롯한 대도시에 많은 도박장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도박이 정식으로 허용되어 여러 가지 형식의 게임이 동시에 진행되어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은 도박장 이른바 카지노가 프랑스에 처음 들어선 것은 19 세기 초의 일이다.
  20세기에 이르러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정부들은, 요행과 일확천금을 향한 주민들의 끈덕진 추구를 마냥 억누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듯, 도박에 대한 인식과 기본 방침을 수정하여, 최대한 억제하되 일정 부분은 아예 법과 제도의 틀 안으로 끌어들이고자 하였다. 예를 들어 왕정복고기의 프랑스 왕실은 법안을 마련하여 프랑스 영토 내에서 모든 형태의 복권 사업을 불법화하였는데 그로부터 약 100년 후 1933 년 5월 31일자 법률은 선행 법률에 예외조항을 적용시켜서 ‘국민 복권’을 시행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정책적 시도의 가장 대표적인 구체화는 아마도 1976년 창설된 프랑스의 공사 프랑세즈 데 죄일 것이다. 로또 복권을 비롯하여 후에 경마, 경견 등 모든 방식의 제도적 도박을 관장하는 이 공사의 지분 중 72%를 프랑스 정부가 갖고 있다. 프랑스인들에게는 머릿글자 FDJ 만으로도 통하는 이 기관은 프랑스 당국이 도박을 통제하기 위해 얼마나 지속적으로 노력했는지를 잘 말해준다. 
  정부 차원의 이러한 움직임의 효시는 실은 19세기 말에 이미 나타난다. 즉 1891년 프랑스 제 3 공화국은 도박 및 사행 산업에 관한 법안을 마련하여 이른 바 ‘내기 상조'라는 기관을 설립한 바 있다. 이 제도 혹은 기관은 서구의 다른 여러 국가들에게도 모범으로 작용하여, 유사한 형태의 제도가 서유럽 대륙 곳곳에 설립되기도 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다. 
  정부 주도의 이러한 시스템들의 등장에는 국민들의 사행심에 편승해 거기에 일정한 세금을 부여함으로써 정부 재원을 마련하려는 경제적인 혹은 재정적인 의도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토포스의 기원과 형성(러시아)   도박을 의미하는 러시아어는 주로 ‘아자르트 азарт[ajart]’를 사용한다. ‘아자르트’의 일차적 의미는 보통 ‘초조함, 흥분, 열중’등을 뜻한다. 그런데, 이때의 초조함과 흥분, 열중 등은 주로 도박이나 내기에서 결과를 알기 직전의 감정의 상태를 말하며, 자연스럽게 아자르트는 감정의 상태뿐만 아니라 ‘도박’이라는 이차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아자르트’는 ‘기회, 우연’, ‘중세의 주사위 놀이’를 뜻하는 프랑스어 ‘아자르hasard [azaːʀ]’를 음차한 것이며, 프랑스어 ‘아자르’는 ‘주사위 놀이’를 의미하는 아랍어 ‘알 자흐르 الزهر‎ [alzahr]’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어 ‘아자르트’는 18세기 초반 무렵부터 쓰인 것으로 보이는데 1720년에 발표된 <해군법령>에 ‘아자르트’는 ‘가자르드 газард [gajard]’의 형태로 표기되어 있다. 도박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아자르트’는 감정적 표현과의 구별을 위해 단독으로 쓰기 보다는 ‘놀이’의 의미를 지니는 러시아어 ‘이그라 игра[igra]’와 함께 사용되어 ‘아자르트나야 이그라 азартная игра [ajartnaya igra]’의 형태로 주로 사용된다. 
  도박을 의미하는 또 다른 러시아어로는 ‘이그라 игра [igra]’ 가 있는데 ‘이그라’는 ‘춤을 추다, 놀다’를 의미하는 고대슬라브어 ‘이그리 игрь [igri]’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그라’는 영어의 ‘game’과 유사하게 ‘놀이, 유희, 경기, 시합’등을 의미하는데 넓은 의미로서 도박을 뜻하기도 한다. ‘이그라’ 역시 도박의 의미를 나타내고자 할때는 ‘돈을 걸고 하는 게임’이라는 형태로 ‘이그라 나 덴기 игра на деньги [igra na zengi]’, 혹은 ‘주사위로 하는 게임’이라는 형태로 ‘이그라 브 코스티 игра в кости [igra v kocti]’와 같은 식으로 표현하여 ‘도박’의 의미를 보다 분명히 하기도 한다. 
  이그라에서 파생된 ‘이그로크 игрок [igrok]’는 주로 ‘도박꾼, 노름꾼’을 의미하는데 도스토옙스키의 소설『도박꾼』의 러시아어 제목이 바로 ‘이그로크’이다. ‘이그로크’는 주로 전문적인 도박꾼, 노름꾼의 의미가 강하다. 또한 ‘아자르트’에서 사람이라는 러시아어 ‘첼로베크 человек[cherobek]’를 붙여 만든 ‘아자르트니이 첼로베크 азартный человек’는 주로 ‘도박에 빠진 사람, 도박 중독자’를 의미한다. 
  고대 러시아에서도 유럽의 여러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초기의 도박 형태는 주사위 놀이와 비슷한 ‘바브키 бабки[babki]’라는 놀이가 존재했었다. ‘동물의 발굽뼈’를 의미하는 바브키는 주로 사각형 모양의 말발굽뼈를 주사위처럼 굴려 상대방의 바브키를 획득하는 게임으로 알려져 있다. 주사위를 뜻하는 러시아어 ‘코스티 кость [kocti]’는 원래 ‘뼈’를 의미하는데 주사위의 원시적 형태가 동물의 뼈를 사용한 것에서 유래가 되었기에 ‘주사위’라는 의미가 덧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16-17세기 러시아에서는 바브키에서 조금 더 진화된 모습의 주사위 형태인 ‘제르니 зернь [gerni]’라는 도박 게임이 성행되었다. 주사위와 유사한 형태이지만 각 면이 숫자 대신 흰색과 검은색으로 되어 있어 색깔에 따라 점수를 부여하는 형식의 게임이었다. 이 게임을 이용하여 도박이 성행하였기에 당시 알렉세이 미하일로비치 황제가 금지시키기도 하였다. 
  중세 러시아에서 보다 조직적인 형태의 도박은 당시 성행하였던 러시아식 오락적 결투인 ‘쿨라츠느이 보이’를 통해서 이루어지곤 하였다. 키예프 공국의 기독교 수용(988년) 이전부터 존재했다고 하는 이 결투는 천둥과 번개를 다스리는 슬라브족의 신인 페룬을 봉헌하는 의식으로 광장에서 맨주먹으로 하는 싸움을 의미한다. 쿨라츠느이 보이는 일대일 싸움과, ‘벽대벽’이라는 적게는 12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이 참가하는 집단 결투 방식이 있었다. 쿨라츠느이 보이는 기본적으로 민중들이 즐기는 일종의 축제였지만, 상인들이 주도가 되어 1대1 싸움에서 참가자들을 고용하여 판돈을 거는 도박의 형태로 진행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중세 러시아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도박이 성행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가는 이를 엄격히 규제하기도 하였는데 알렉세이 황제는 <법전>을 편찬하면서 도박자들에게는 채찍 형을 가하거나 손가락을 절단시키는 형벌을 규정하여 도박을 엄격히 금지시키기도 하였다.
  본격적으로 러시아에서 도박이 성행하게 된 것은 카드 게임이 도입되면서 부터이다. 13세기부터 유럽에서 생겨나기 시작한 카드 게임은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식으로 구별되어 성행되었고, 러시아는 17세기 초반 폴란드를 통해 도입된 프랑스식 카드를 주로 사용하여 게임을 즐기곤 하였다. 프랑스식 카드는 오늘날 우리가 널리 사용하고 있는 스페이드, 하트, 다이아몬드, 클로버로 구성된 네 종류의 카드를 의미한다. 
  1761년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는 당시 유행처럼 번져가던 카드게임을 이른바 ‘계획적인 게임’과 ‘도박적인 게임’으로 구별하는 법령을 제정하였다. 원칙적으로 여제는 도박을 금지하였지만, 운이 아닌 게임자의 능력과 일정한 기술로 인해 게임의 결과를 계산, 계획할 수 있는 게임을 ‘계획적인 게임’으로 분류하여 이 게임에 해당하는 ‘브릿지’, ‘프레페란스’, ‘휘스트’ 등과 같은 카드 게임은 궁정에서만 허용하였다.
  그러나 ‘룰렛’, ‘슈토스’, ‘경마 도박’ 과 같이 게임자가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고 ‘우연성’에 의해 결과가 좌지우지 되는 게임은 도박으로 규정하여 엄격히 금지시켰다. 그리고 여제의 이러한 구분에 의해 러시아어에서 ‘아자르트’라는 말이 보다 명확하게 ‘도박’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데, 앞서 언급한 ‘우연’을 뜻하는 프랑스어 ‘hasard’를 차용하여 ‘도박’이라는 개념에 ‘우연’이라는 의미를 보다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일련의 정부의 규제에도 불구하고 도박은 근절되지 않고 계속 성행되었는데 특히, 1765년 프랑스에서 카지노가 생기면서 큰 영향을 받았다. 프랑스는 루이 16세 시절 왕실의 제원 조달을 위해 카지노를 개설하였는데 이 후 카지노는 영국, 독일을 중심으로 한 유럽 전역에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당시 이러한 유럽의 분위기는 러시아 사회에도 고스란히 전파되었고다. 특히, 프랑스 문물 수용에 적극적이었던 예카테리나 2세 시절에는 도박에 관한 규제를 완화하기도 하였다. 여제는 귀족들에게 도박을 허용하여 도박장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면서, 도박장에 세금을 부과하여 그 세금으로 고아원을 운영하는 사회사업의 형태로 도박을 일정부분 합법화 시키는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러시아 사회에서는 도박이 매우 성행하게 되었는데 그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1817년 페테르부르크에서 카드를 만드는 공장이 들어서면서였다. 당시의 카드는 주로 프랑스로부터 수입된 고가의 제품이었으나 본국에서 직접 카드를 제작하면서 도박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게다가 당시의 카드는 오늘날과 달리 일회용으로 제작되었기에 그 수입 또한 만만치 않았는데 그 재원 관리는 예카테리나 여제 시절부터 관례화되어 고아원에서 운영하였다. 
  도박의 증가와 더불어 그 규제와 금지 역시 19세기 전반을 걸쳐 끊임없이 지속되었다. 1801년 알렉산드르 1세와 1832년 니콜라이 1세가 엄격한 법령을 제정하여 도박을 금지시키려고 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이르러서 보다 강력한 규제로 인해 (도박하는 자에게는 3000루블의 벌금을 부과하였고, 재범인 경우에는 3-6개월의 감옥 형을 선고하였다.) 어느 정도 약화가 되었고,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도박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토포스의 전개와 사례(프랑스)   사람들 사이를 스며들어 쉽게 끊어내지 못할 매력을 발산하는 돈내기 놀이는 어쩌면 화폐의 역사보다 더 오래전부터 성행해 왔을 것이다. 그러니만큼 도박은 인간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도 하나의 뚜렷한 토포스로 형성되어 왔다. 
  프랑스 문학은, 떨어지는 주사위 소리에 전율을 느끼는, 뒤집혀 보이는 마지막 카드 한 장에 절망하고야 마는 수많은 형상들을 담고 있다. 가령, 발자크의 소설 『고리오 영감』의 라스티냐크는 곤경에 처한 사랑하는 델핀을 운 좋게 도와줄 수 있었는데, 바로 카지노에서 딴 돈 덕분이었다. 또 다른 소설 『나귀가죽』에서는 주인공 젊은 귀족 라파엘이 도박판에서 마지막 한 푼까지 털리고 나서 자살을 결심할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으로부터 스토리가 시작된다. 
  산업화와 그에 따른 자본주의의 본격적 기승이 진행되던 19 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몇몇 인간들은 심각한 도박 중독 증세를 드러내기도 한다는 사실을 에밀 졸라의 소설 『인간 야수』가 보여주는데, 주인공 루보는 사람을 죽이고 나서 빼앗은 돈을 움켜쥐고 곧장 카지노로 달려간다. 
  돈내기의 관행이 그 이전 18 세기에서도 유행했음을 디드로는 소설 『라모의 조카』에서 암시한다. 소설의 도입부에 ‘레장스 카페‘라는 파리의 한 유명한 카페가 제시되는데, 거기에서는 체스 게임이 성행하였다. 한판의 체스를 두 명의 선수가 벌이고 있으면 주위에 빙 둘러선 구경꾼들이 한 수 한 수 두어질 때마다 탄식과 환호의 대화를 주고받는데, 필시 돈들을 걸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도박에서 결정적 순간에 피어오르는 감정들을 가장 잘 드러낸 문학적 형상화들 중 하나가 보들레르의 시 <도박>일 것이다. 그 중 마지막 연은 인용에 충분히 값하고 있다.

“그리고 내 마음은 깜짝 놀랐다. 수많은 가련한 인간들이
쩍 벌리고 있는 심연으로 미친 듯 달려가, 제 자신이 피에 취해
결국 죽음보다는 고통을, 허무보다는 지옥을
택하게 될 것을 부러워하는 나 자신에 대해!” (보들레르, <도박>, 1857)

  위 시에서 시적 화자는 노름꾼이 결코 아니다. 그는 단지 어깨너머로 구경하고 있는데, 시인은 도박의 마력 자체가 그곳에 둘러선 모든 영혼들을 사로잡아 버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17 세기의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들라 투르는 노름판에서 상대를 속이려는 노름꾼들의 모습을 재미있게 형상화한 바 있다. 그는 <크로바 에이스를 든 타짜>,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든 타짜>를 연작으로 그렸다.

  당연하겠지만, 도박의 토포스는 영화 장르에게도 훌륭한 소재를 제공하였다. 프랑스 산 도박 영화들 중 대표적인 것 하나를 언급하자면, 1997년 국내에서도 <사기>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를 떠올릴 수 있다. 여기에는 이자벨 위페르, 미셸 세로 등 비중 있는 프랑스 배우들이 연기하였다.
토포스의 전개와 사례(러시아)   도박은 19세기 전반에 걸쳐 러시아 사회에 두드러지게 발현된 매우 흥미로운 토포스이다. 특히 러시아 작가들은 도박을 소재로 많은 작품들을 썼으며, 실제로 도박 중독자로까지 불렸던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를 비롯하여 많은 작가들이 도박에 열중하곤 하였다. 
  도박 역시 다른 토포스들과 유사하게 18세기 말과 19세기 초에 폭발적으로 확산되었으며 그 근간에는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문물의 본격적인 수용 시기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 중에서도 프랑스를 통해 들어온 무도회와 살롱은 대표적인 귀족들의 여흥거리로 급속히 확산되었다. 무도회와 살롱 문화에서 중심이 되었던 것은 춤과 문학, 예술적인 담소였지만, 카드 게임 역시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19세기 전반 러시아 사회에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카드 게임에 대한 접근성이 매우 용이하였다. 당대 귀족 사회에서 무도회와 살롱은 사교계의 친목 도모나 상류사회로의 출세의 통로라는 독특한 토포스를 형성하였고, 카드 게임은 이러한 교류의 수단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세기 초기에 카드 게임은 돈을 목적으로 하는 도박적 성격보다는 종종 상대방과의 교류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하였기에, 이 시기 카드 게임은 춤이나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처럼 귀족들이 지녀야 할 하나의 필수적인 덕목이자 일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황제의 최측근들조차도 카드 게임의 애호가였다는 점이다. 표트르 대제의 최측근이었던 알렉산드르 멘쉬코프, 안나 이오아노브나 여제의 총신 비론, 엘리자베타 이바노브나의 정부(情夫)들이었던 알렉세이 라주부모프스키와 이반 슈발로프 등이 그러했으며, 특히 예카테리나 여제 시절에는 포툠킨 공작, 시인 데르자빈 등도 카드 게임에 매료되어 있었다. 황실 측근들의 도박의 열중으로 인해 도박은 19세기 초 러시아 사회로 급속도로 확산되었으며 군인, 관리, 남성과 여성, 노인들과 젊은이들 할 것 없이 카드 게임을 즐기게 되었다. 
  당시 상류 귀족층이 도박에 열중한 흥미로운 사례는 알렉산드르 1세 시절의 골르츠인 공작에 관한 일화이다. 평소 도박과 낭비벽이 심했던 골르츠인 공작은 자신의 아내인 마리야 가브릴로바를 사모하고 있었던 라주모프스키 백작과 자신의 아내를 걸고 카드게임을 하여 아내를 잃게 되었다. 마리야 가브릴로바는 골르츠인 공작과 이혼을 하고 라주모프스키 백작과 부득이 결혼을 하게 되었지만, 이 사건은 당대 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흥미로운 점은 마리야 가브릴로바 부인 역시 대단한 도박 애호가였으며 실제 모나코로 룰렛 게임을 하기 위해 여러 차례 방문을 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러시아 귀족 사회에 도박이 깊숙이 침투된 것에는 몇 가지 사회적 현상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도박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속성 중의 하나는 ‘우연성’과 그리고 그 ‘우연성’을 바탕으로 하는 급작스런 ‘성공과 출세’이다. 18세기에서 19세기 초 러시아 사회는 강력한 전제정치를 바탕으로 한 폐쇄적인 귀족, 관료 사회였으며 관리들의 출세나 운명은 자신의 능력이나 규정된 원칙보다는 권력과의 밀접도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였다. 귀족과 관리들은 출세와 성공을 위해서는 권력에 대한 충성과 뇌물이 필수적인 조건으로 인식하였으며, 이것은 자신의 운명을 합리적이며 이성적인 원칙과 규칙보다는 ‘우연’, ‘기회’라는 속성에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특히, 18세기 러시아 황실의 이른바 ‘여제들의 시대’에는 우연한 기회에 여제들에게 총애를 받은 인물들이 출세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면서, 귀족들 사이에서는 우연과 출세를 변덕스런 행운의 여신이 벌이는 예측불능의 게임의 결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하였다 (로트만, 346쪽 참고). 1820년대 모스크바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한 그리보예도프의 『지혜의 슬픔』에서 당대 귀족의 전형이었던 파무소프의 대사를 통해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파무소프: 예를 들면 고인이신 막심 페트로비치 숙부님을 보고 배우라고! 예카테리나 여제 시절에 근무하셨지. [...] 한번은 알현일에 노인네가 쉰 목소리로 어이쿠 하면서 거의 뒤통수가 깨지도록 넘어지신 거야. 그러자 페하께서 미소를 하사하셨지. 일어나서 옷매무새를 고치고 다시 인사를 드리려는데 또 넘어지셨지. 물론 이번에 일부러 그러신 거지. 카드게임에 가장 많이 초대를 받은 사람이 누구였나? 막심 페트로비치! 그분이시지.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던 이가 누구였나? 막심 페트로비치! 그분이시지. 관직에 오르고 은급까지 하사받던 이가 누구였나? 막심 페트로비치! 그분이시지.” (그리보예도프, 『지혜의 슬픔』, 1824)

  ‘우연’을 통해 출세와 성공을 맛보는 당대 분위기는 이후 여러 문학 작품 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카자린: 잘보라구, 나이 든 사람들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도박으로 관등을 얻고, 진흙탕에서 상류 사회와 알음알이가 되었는지를.” (레르몬토프,『가면 무도회』, 1836)

“연이어서 정부들이 늙은 요부들에게 갔지.... 수많은 우리네 양반들께서는 머리가 빙 돌 지경이었지……. 그들은 자신들에게 그토록 득이 되는 ’우연‘을 놓치지 않기 위해 우편마차라도 타고 페테르부르크로 달려가고 싶어 한다네” (노비코프, <풍자 잡지>, 1774년) 

  도박이 19세기 초반 러시아 사회를 지배한 또 다른 원인은 19세기 제정 러시아 전제정치의 혹독한 사회 분위기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다. 도박이 진행되면 도박자는 상당부분 위험성을 감수해야한다. 그러나 그 위험성이 크면 클수록 자신에게 돌아오는 효용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이 경우 이 위험성은 순전히 도박자 개인의 판단과 선택이며, 도박자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즉, 이 당시 도박은 전제정치 체제에서 자신의 운명을 자유롭게 결정하지 못했던 당대 귀족들에게 일종의 도피구이자 탈출구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도박을 통해 개인의 자유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모험성에 매료된 귀족들은 도박판에서 자신만의 삶의 세계를 투영하면서 도박과 삶을 일치시키는 극단적인 현상을 보여준다 (로트만, 348쪽 참고).
  1830년대 제정 러시아 수도였던 페테르부르크의 귀족들의 일상, 특히 무도회, 결투, 도박에 대한 적나라한 묘사와 비판을 담은 레르몬토프의 희곡『가면무도회』의 1막 1장 전체는 도박 장면으로 이루어져있고, 카자린의 대사 속에서 당대 귀족들의 도박에 관한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카자린: 볼테르나 데카르트가 무슨 말을 하든지 간에 나에게 세상은 카드 한 벌과 같네. 삶은 판돈과 같은 거라고. 운명을 돌리면 나는 그 판에서 도박을 하는 거지. 그리고 나는 도박의 원리를 적용하지.” (레르몬토프, 『가면 무도회』, 1836)

  도박자들은 때로 도박의 과정이 어떤 신비한 방식으로 미리 결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것을 운명, 숙명, 혹은 신의 힘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도박이 가지는 운명적, 숙명적 성격은 방아쇠를 머리에 대고 총구를 당기는 이른바, ‘러시안 룰렛’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감옥에서 교도관들이 죄수들을 대상으로 누가 죽을지 내기를 한 것에서 비롯된 러시안 룰렛은 이후 제정 러시아의 군 장교들과 귀족들 사이에 급속도로 번져나갔다. 목숨을 담보로 한 극단적인 형태의 이 도박의 기저에는 혹독한 규율 속에 살아가야 했던 암울한 제정 러시아 시대에 삶과 죽음의 문제는 이미 정해진 운명과 숙명이라는 극단적인 토포스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운명론적 도박은 레르몬토프의 소설『우리 시대의 영웅』의 <숙명론자>편에 잘 드러나 있다. 평소 도박에 병적인 집착을 보이는 육군 중위 불리치는 자신의 목숨을 건 러시안 룰렛 도박을 한다. 

“ “당신은 게임에서 운이 좋군요.” 하고 나는 불리치에게 말했다. “난생 처음입니다.” 그는 만족한 듯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것이 카드놀이의 물주나 쉬토스보다 낫군요.” “그 대신 조금 더 위험하지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당신은 숙명을 믿기 시작했나요?” “믿습니다. 다만 어째서 당신이 꼭 오늘 죽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 (레르몬토프, 『우리시대의 영웅』, 1840)

  그러나 러시안 룰렛에서 살아남은 불리치는 페초린의 예언대로 도박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카자크 병사들에게 잔혹하게 살해당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19세기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러시아의 도박의 토포스는 이전의 양상과는 조금 다른 형태를 보인다. 급속한 산업화와 자본주의화가 시작된 19세기 중반 러시아에서 도박은 귀족들의 고상한 유희나 그들의 운명을 시험하고자 하는 낭만적인 게임의 성격을 벗어나 오로지 돈에 목적을 두는 탐욕의 대상으로 전환되었다. 특히, 19세기 중반에는 전문적인 사기 도박단이 유행처럼 번져나갔는데 이들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지방 소도시들을 순회하면서 어수룩한 지주나 젊은 장교들을 알거지들로 만들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었다. 고골의 희극『도박꾼』(1842)은 이러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산업화와 자본화의 영향으로 대두된 물질만능주의, 알코올중독, 매춘, 빈민 등의 문제로 인한 범죄는 1860년대 페테르부르크의 상징이 되었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도박은 오로지 돈과 승부만이 목적이 되는 피폐한 형태로 전환되었다. 
  이 시기 도박에 관한 분위기는 작가 도스토옙스키의 삶 그 자체와 그의 작품을 통해 매우 잘 드러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는 1863년 파리로 가는 도중 우연히 비스바덴의 카지노에 들른 것으로 도박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거액의 돈을 따게 되었고, 그 후 도박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도박꾼』을 집필하기도 한다. 작가의 분신으로까지 여겨지는 소설의 주인공 알렉세이는 도박이 주는 흥분과 경련에 사로잡혀 광적으로 도박을 즐기지만 그의 궁극적인 목적은 돈이다. 

“도박이 다른 돈벌이 수단보다, 예를 들어 장사보다 더 나쁘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이유인가? <......> 도박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그 모든 탐욕과 추악함이 편하게 느껴졌다.” 
(도스토옙스키, 『도박꾼』, 1866)

  주인공인 알렉세이에게 도박은 자신이 처한 빚과 궁핍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로 인식된다. 따라서 그는 도박의 효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러시아인은 자본을 획득한 재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모하게 자본을 낭비합니다. 룰렛에서는 애를 쓰지 않아도 두 시간 만에 부자가 될 수 있거든요. 우리가 대단한 매력을 느끼는 것은 바로 그 점입니다.” (도스토옙스키, 『도박꾼』, 1866)

도박에 관한 도스토옙스키의 이러한 인식은 그의 소설『미성년』과『유럽인상기』에서도 반복된다. 

“내가 도박을 한 것은 도박 그 자체가 목적이었고, 희열감을 맛보기 위해서나 모험을 즐기기 위해서라든지, 혹은 행운을 시험한다든지……. 돈을 딸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는 등의 변명을 할 생각은 전혀 없다. 나는 오로지 돈이 지독하게 필요했을 뿐이다.”
(도스토옙스키, 『미성년』, 1875)

“나는 즐기려고 노름을 한 것이 아니요. 이것이 바로 유일한 출구였는데 어수룩한 계산 때문에 몽땅 잃고 말았소.” (도스토옙스키, 『유럽인상기』, 1877)


  즉, 19세기 말 러시아 사회에서의 도박은 돈의 가치가 최우선이 되는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당대 러시아인들의 출구 없는 절망적 상황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토포스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비교문화적 설명   도박을 의미하는 프랑스어 ‘죄jeu’는 일차적으로 ‘놀이’, ‘게임’, ‘유희’라는 보다 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프랑스어에서는 도박을 보다 명확히 표현하기 위해 ‘우연’이라는 의미의 명사 ‘아자르 hasard’ 가 첨가되어 ‘죄 드 아자르 jeu de hasard의 형태로 도박을 표기한다. 그런데 도박을 의미하는 러시아어 ‘아자르트 азарт’는 ‘우연’을 뜻하는 프랑스어 ‘아자르’에서 차용되었지만, 직접적인 도박의 의미로 사용된다. 애초에 러시아에서도 도박을 의미하는 용어로서 ‘게임, 놀이’를 뜻하는 ‘이그라’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지만, 도박이 가지는 ‘우연성, 기회성’을 경계하여 예카테리나 여제 시절부터 ‘아자르트’는 ‘돈을 걸고 하는 사행적 도박’을 의미하기 시작하였다. 
  인류의 역사와 거의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도박은 유럽 사회에서는 일찍이 성행하였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에는 국가의 재정 마련을 위해 루이 16세 시절부터 왕실 카지노를 개설하여 전 유럽으로 확산을 시키기도 하였다. 사행성, 탐닉성 등으로 인해 많은 폐해를 본 프랑스는 19세기 후반부터 도박을 국가에서 직접 관리, 통제하여 복권 등의 사업으로 재정 마련의 긍정적 수단으로 삼기도 하였지만, 뒤늦게 도박이 유행하게 된 러시아는 전혀 다른 형태로 도박의 토포스가 진행되었다. 살롱, 결투, 무도회 등과 같이 18세기 말과 19세기 초반에 프랑스 문화에서 강한 영향을 받은 도박은 단기간에 러시아 사회에서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는 매우 흥미로운 토포스이다. 19세기 러시아 작가들의 거의 모든 작품의 중심에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도박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실제로 도박 중독자로까지 불렸던 도스토옙스키를 비롯하여 많은 작가들이 도박에 열중하곤 하였다. 
  러시아 사회에서 도박의 확산은 앞선 언급처럼 유럽 문물에 대한 당대 귀족 사회에 대한 호기심과 선망에서 출발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인 원인 중의 하나는 19세기 제정 러시아 전제정치의 혹독한 사회 분위기와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다. 즉, 19세기 초반 러시아 사회에서의 도박은 당대 사회를 휩쓸었던 결투의 토포스와 더불어 전제정치 사회에서 자신의 운명을 자유롭게 결정하지 못했던 당대 귀족들의 일종의 도피구와 탈출구라는 토포스의 지니게 된다. 도박을 통해 개인의 자유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모험성에 매료된 귀족들은 도박판에서 자신만의 삶의 세계를 투영하면서 도박과 삶을 일치시키는 현상을 보여준다. 
연관 토포스 결투; 무도회; 살롱; 열정; 욕망; 카드게임; 탐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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