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러시아 문화 토포스 비교 사전 상세보기
산책
범주명 자연과 공간
토포스명(한글) 산책
토포스명(프랑스) promenade, balade
토포스명(러시아) прогулка, гулянье
정의 1. 행복을 추구할수록 산책을 많이 한다.
토포스의 기원과 형성(프랑스)   ‘산책’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프롬나드 promenade’이다. 그렇지만 이 명사는 ‘산책하다’를 의미하는 동사에서 파생된 말이다. 문제는 ‘산책하다’라는 의미의 동사가 하나의 단어가 아니라 두 개의 단어로 표현된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어 동사 ‘프롬네 promener’는 ‘산책하다’가 아니라 ‘산책시키다’이다. ‘산책하다’의 뜻을 내기 위해서는 ‘자기자신을 산책시키다’라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늘 ‘자신을(se) 산책시키다(promener)’라고 말하며 살아가고 산책한다.
  ‘프롬네 promener’라는 동사 자체도 합성어이다. ‘이끌다(므네 mener)’ 앞에 ‘앞으로(프로 pro)’라는 접두사가 붙어서 생긴 말이다. 가령, “나는 산책합니다”라고 말하기 위해 프랑스 사람들은 “나는 나 자신을 앞으로 이끌어갑니다”라고 말하는 셈이다. 결국, 자동사는 거의 발달하지 않고 타동사들만 주로 발달한 프랑스어 동사군의 특성 때문이다. 
  가끔씩은 타동사 ‘산책시키다’가 안성맞춤으로 필요할 때도 있다. 예컨대, “개를 산책시키다”, “시선을 산책시키다 (이리저리 눈알을 굴리며 훑어보다)”, 방송국 리포터가 주민들의 반응을 취재하느라 “마이크를 산책시키다 (마이크를 이 사람 저 사람에게로 옮겨가며 들이대다)” 따위이다.
  그리고 명사 프롬나드는 산책이라는 뜻 외에 ‘산책로’, ‘거니는 길 혹은 장소’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프랑스의 웬만한 도시의 지도를 보면 뤼(거리), 아브뉘(대로), 불르바르(큰길) 앵빠스(막힌 골목)등과 함께 ‘프롬나드’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일상어에서 ‘거닐기’, ‘산보’ 등의 뜻으로 매우 활용빈도가 높은 말이 하나 더 있는데, ‘발라드 balade’라는 명사이다. 동사형은 ‘발라데 balader (산책시키다)’라는 타동사인데, ‘프롬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동사의 의미로 쓸 때에는 재귀대명사 se를 붙여서 ‘써 발라데’라고 하면 ‘산책하다’의 의미가 된다. 
  이 동사의 기원은 특이하다. 흔히 ‘쇼팽의 발라드’라고 할 때의 그 ‘발라드 ballade(민요시)’에서 출발하는데, 중세 말기 및 근대의 초입에 서커스 단원이나 곡예사들이 발라드를 청중에게 불러 동냥을 구하면서 여기저기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 데서 생겨난 말이다. 즉, 발라드(ballde)를 부르면서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행위가 발라드(balade)가 된 셈이다. 프랑스에서 산책(하다)의 의미로 ‘발라드’ 및 ‘써 발라데’라는 말이 대중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에 들어와서이며, 그 전까지는 ‘프롬나드’와 ‘써 프롬네’가 주로 쓰였다. 
  그 자체로 ‘산책하다, 거닐다’의 자동사적 의미로 쓰인 동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플라네 flaner / 플라느리 flanerie’이다. 그런데 이 말의 의미에는 또 다른 차원의 의미가 스며드는데, 그냥 산책하는 것 이라기보다는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뉘앙스가 강하다. 그래서 우리말로 옮기자면 ‘배회(하다)’도 가능할 정도이다. 이와 유사한 동사로 ‘로데 rôder’가 있는데, 이 동사는 그 의미적 일탈이 더 심하여 ‘어슬렁거리다’의 뜻으로 쓰이는데, 중성적 의미의 ‘산책’과는 상관이 없는 듯도 보이지만, 19세기 프랑스 낭만주의 시문학, 특히 보들레르에 와서는 새로운 토포스적 함의를 갖는다. 즉 보들레르의 시에서 ‘산책하다(se promener)’라고 말할 때 그것은 대부분, 수상쩍지만 날카로운 눈빛으로 군중들 사이를 훑고 지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은 도시 한 가운데서 언제나 불편해하며 또 범박한 일상에 기꺼이 불안을 심어 놓고 지나가는 의심스러운 존재로 스스로를 느끼기 때문이다. 
토포스의 기원과 형성(러시아)   러시아어로 ‘산책’을 뜻하는 단어로는 ‘프로굴카 прогулка[progulka]’와 ‘굴랴니예 гулянье[gulyan'e]’가 있다. 때로는 두 단어가 의미적 차이 없이 동의어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프로굴카’는 좀 더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산책을 지칭하는 반면 ‘굴랴니예’는 주로 집단화된 산책,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산책을 가리킨다. 두 단어는 모두 동사 ‘굴랴티 гулять[gulyat']’로부터 파생한 것들이다. 공통슬라브어 기원의 ‘굴랴티’가 정확히 어디에서 온 것인지, 그 애초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연구자에 따라 형태적 공통성을 지니는 ‘굴 гул[gul]’(둔탁한 소리, 왁자지껄하는 소리)에서 온 것으로 파악하기도 하고 세르보크로아티아어의 гулити(술 취하다)를 토대로 ‘(술을) 마시다’를 그 애초의 의미로 파악하는가 하면 ‘놀이, 놀다’의 의미에서 발전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파스메르 어원사전>). 러시아어로 ‘산책’을 가리키는 또 다른 단어로 ‘프로메나드 променад[promenad]’라는 단어도 있다. ‘프로메나드’는 프랑스어 promenade로부터 차용된 것으로, 프랑스어가 귀족 사회의 일상 언어였던 18~19세기에 널리 사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산책’이라 함은 폐쇄된 공간, 답답한 장소를 벗어나 신선한 공기를 만끽하고 주변의 자연경관을 즐기며 천천히 걷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할 때 이 개념이 농사일과 집안일로 한시도 쉴 틈이 없는 민중 계층보다는 귀족의 일상생활에서 더 발전된 개념이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산책은 시대를 막론하고 상류층의 주요 여가활동 중 하나였지만 러시아 귀족사회에서 산책의 유행이 정점을 이루던 시기는 18세기 말~19세기 초라 할 수 있다. 특히 겨울궁전에서 강변도로를 따라 매일 산책을 즐겼던 것으로 전해지는 알렉산드르 1세 시대(1801~1825)에 산책의 유행이 절정에 달하였으며 이 시기에 수많은 산책로가 새롭게 조성되거나 정비되었다. 
  러시아 귀족층의 산책문화는 서유럽 귀족의 전통을 지향하면서도 러시아의 관습, 기후적 조건들과 접목된 양상으로 발전해나갔다. 귀족들의 산책은 계절에 따라 그 장소와 형태를 달리했다. 겨울에도 햇빛이 잘 드는 거리나 공원에서 산책을 즐기는 이들을 찾아볼 수 있지만 혹독한 추위를 자랑하는 러시아의 겨울은 귀족의 일상생활에서 산책보다는 무도회와 극장으로 방점이 옮겨가도록 만든다. 산책 시즌은 여름이라 할 수 있으며 특히 백야 시즌의 여름밤에 그 진가가 발휘된다. 한껏 멋을 부린 귀부인들과 귀족들은 아름답게 조성된 정원이나 공원을 거닐면서 여름밤을 즐겼으며 이 시즌의 산책은 새벽 4시까지 이어지곤 했다고 한다. 백야가 한창일 때 페테르부르크 거리에선 아주 작은 글씨의 신문을 읽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할 수 있는데 이러한 행위는 백야 시즌에 이 도시가 얼마나 환한지를 드러내주는 하나의 기호로서 작용하는 것이었다(코네츠니이 외, 『푸시킨 시대 페테르부르크의 일상생활』 참조)
  귀족들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산책은, 그러나 산책의 여유를 즐길 틈이 없었던 러시아 민중들 사이에서는 귀족의 그것과 다소 상이한 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들에게 산책은 자연 속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천천히 거닐거나 자연 공간을 둘러보며 담소를 나누는 일상적 여유로서가 아니라 특별한 날, 가령 마슬레니차와 같은 축제 때 집단적으로 즐기는 대규모 행사로서 개념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일반적인 의미의 산책을 지칭하는 ‘프로굴카’가 귀족층의 일상생활 속에서 발전한 개념이라고 한다면 민중의 산책은 대규모 군집을 통한 산책인 ‘굴랴니예’와 보다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나로드노예 굴랴니예(대중적 산책)’은 일종의 페스티벌과 같은 것으로서 고대 러시아 시기부터 널리 퍼져있었던 축제를 맞이하는 전통이다. 이것은 집을 벗어나 열린 공간에서 신선한 공기와 자연을 즐긴다는 점에서 보통의 산책과 공통점을 지니지만 개인적이 아니라 집단적인 산책이라는 점에서 변별된다. ‘나로드노예 굴랴니예’는 대규모의 군중이 운집하여 놀이, 노래, 춤, 음주를 즐기는 집단적 놀이였다. 그 명성이 절정에 달하였던 19세기에는 정교력에 따른 부활절, 성탄절 등의 축일과 마슬레니차와 같은 민중 축제 때 도시민 대부분이 참여하는 대규모의 ‘나로드노예 굴랴니예’가 거행되었다. 
  현대 러시아에서 산책의 토포스는 19세기와 비교해 ‘대중적’, ‘집단적’ 산책 개념은 다소 약화되고 좀 더 개인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지만 여전히 러시아인들의 일상생활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도시의 주택가 곳곳에 조성된 숲과 공원, 그리고 숲과 공원의 필수 구성요소인 산책로에서는 날씨가 좋을 때는 물론이고 영하 20도의 혹한에도 산책을 즐기는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현대 러시아에서 산책은 19세기와 같은 사회적 중요성은 상실하였을지라도 여전히 도시 속의 자연을 즐기고 일상의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훌륭한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잃지 않고 있다.
토포스의 전개와 사례(프랑스)   산책은 일찍부터 프랑스의 언어-문화에서 하나의 일상적 토포스로 자리잡아온 듯하다. 작가 샹탈 토마는 <어떻게 자신의 자유를 견딜 것인가>라는 에세이에서 그것에 대해 꽤나 고상하면서도 내성적인 정의를 내린 바 있는데 “산책이란 본질적으로 자신과 얘기를 나누는 한 방식이다”라고 썼다. 그러나 실은 산책의 문화적 의미와 그 언어적 사용은 매우 다양한 층위에서 이루어져 왔다.
  우선 17세기 고전주의 극작가 라신은 기억할 만한 구절을 자신의 운문 비극 『아탈리』의 2막 9장에 남기는데, ‘산책시키다’라는 타동사의 의미로 쓴 것이다.

“저 불경스런 무리들은 말하네,
웃고 노래하자,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이 쾌락에서 저 쾌락으로 우리의 욕망을 산책시키자 라고“

  또 서한집으로 유명한 같은 시대의 세비녜 후작부인의 글에는 한 문장 안에서 ‘산책하다’와 ‘산책시키다’를 동시에 구사한 흔적이 남아있다. 그녀는 “나는 내 아들에게 분명히 전한다. 그 아이 일에는 나는 전혀 관심이 없으며, 나는 그저 산책이나 할 뿐이고 또 그 아일 산책 보낼 뿐이라는 사실을”이라고 싸늘하게 말한다. 
  18세기의 계몽주의 철학자 루소에 이르러 ‘산책’이라는 주제는 매우 진지하고도 철학적인 분위기에 감싸인다. 말년의 루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라는 명상집을 집필하는데, 10회의 산책으로 구성된다. 그의 『고백록』과 함께 문학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는 그 책에서 산책은 다른 무엇보다도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공간’의 배경으로 기능한다. 10개의 장으로 나눠진 그 사색과 성찰에서 루소는 자기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겪고 사유한 중요한 모멘트들을 회상하면서 다시금 의미를 부여하고 또 재평가하고 있다. 그 중 가장 유명하고 또 자주 언급되는 『다섯 번째 산책』의 한 대목을 보면 루소의 산책을 둘러싼 정황과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해가 떨어지면 나는 섬의 높은 꼭대기에서 내려와 호숫가의 바위에 걸터앉곤 했는데, 아무도 없는 아늑한 곳이었다. 그곳의 찰랑거리는 물결의 소리와 그 잔잔한 움직임은 내 감각을 한 군데로 고정시켜서 내 영혼으로부터 일체의 동요를 씻어내어 주었다. 그리하여 나는 달콤한 몽상에 잠길 수 있었으며 그러다보면 어느새 밤이 내려 앉아 사위가 깜깜해져 있었다.”

  물론 프랑스의 모든 산책이 이렇게 외롭고 명상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산책을 일상의 한 주요한 매듭으로 보고 그것을 둘러싼 여러 문화적 층위와 의미들을 분석하고 정리한 바 있는 장 그르니에의 글에 따르면, 타인들을 만나서 친교를 나누는 장으로서의 산책과 산책로의 기능을 언급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친교의 장으로서의 산책로는 프랑스에서는 주로 봄과 여름에 많이 붐비며 가을과 겨울에는 산책로뿐만 아니라 사냥터나 대저택의 살롱이 그 기능에 동참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전통적으로 산책은 그 행위의 특성상 생업에 매달리는 정도가 덜한 유한계급의 인사들이 즐긴 것도 사실이다. 어떤 형태로든 직접 생산에 참여하는 계층에게서 산책을 누릴 만한 시간적 경제적 여유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을 것임은 쉽게 수긍할 수 있다. 가령, 농민들의 경우 일 년 내내 경작과 축산에 매달리다가 겨울이 되어 시간적 여유가 생기지만 추운 날씨를 뚫고 여유 있게 거닐게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행되는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상황은 미묘하게 달라진다. 우선, 많은 농촌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면서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 익명성이 커지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19세기의 작가들은 ‘군중(foule)’이라 칭하며 그 인간군들 사이를 흐르는 전에 없는 침묵과 긴장에 주목하는 듯하다. 이러한 상태에서의 산책은 그 성격이 전통적인 것과는 많이 달라진다. 
  빅토르 위고가 그의 책 『웃는 인간』 2부 3권 3장에서 묘사하는 밤중의 산책을 따라 가보자.

“밤중에 산책하거나 별빛 아래에서 거닐 때 정신 속에는 어떤 미묘한 것이 움트기 시작하는 법이다. 특히 젊음이란 앞을 알 수 없는 하나의 기다림이 아닌가. 야밤에 기꺼이 나가 돌아다니는 건 다 그 때문이다.”

  그러나 산책의 문화적 의미에 가장 긴장된 자장(磁場)을 불어넣은 것은 현대 시의 비조(鼻祖) 보들레르이다. 자신의 산문시집에 『파리의 우울』이라는 최종적인 제목을 붙이기 전에 그는 우선은 ‘고독한 산보자’ 또는 ‘파리의 배회자’라는 이름을 줄 것을 심각하게 검토했었다. 그 산문시집의 대표작 『군중들』의 첫머리를 들어보면 보들레르가 얼마나 짜릿한 산책을 즐기려 들었는지 궁금해 하게 된다.

“군중 속에서 미역을 감는다는 건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재능이 아니다. 사람들 사이를 헤쳐 나가며 즐긴다는 것은 하나의 예술이다”

  대도시의 익명성 속에 잠겨 은밀한 잠행과 관음을 즐기기, 무수한 영혼들 사이를 스치며 그 정수들을 빨아먹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전제가 바로 ‘배회’이다. 20세기 초의 독일의 천재 발터 벤야민은 <보들레르, 파리의 거리>라는 글에서 ‘군중 속 배회’라는 주제의 문화적 정서적 차원을 넘어, 군중 속에 묻히려는 시인의 이 욕망의 사회경제적 조건을, 또 그 속에 스며든 화폐 자본의 흔적을 적출하고자 했다. 

“마치 마술환등 속에 놓인 것 같은 산책자(혹은 배회자)에게 있어서 대도시의 일상적 삶은 군중이라는 베일을 통과하면서 시들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 마술환등 속에서 군중은 어찌 보면 풍경 같은 것이다. [...] 어쨌거나 그 군중은 대도시 백화점들의 배경과 장식이 되어 주었는데, 백화점들은 쇼윈도우 앞에서의 쇼핑객들의 서성거림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그들의 매상고를 높인다.” 

  맑시스트 평론가 벤야민의 견해에 동의하느냐라는 문제와 상관없이, 산책 혹은 배회가 근대의 대도시에서 어떤 사회 문화적 맥락과 맞닿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의식 자체는 음미할 만한 것이다.
  프랑스의 산책의 토포스에 이러한 진지하고 무거운 의미만 들어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일반인들에게 산책은 언제나 가볍고 여유 있는 생활 요소이다. 우선, ‘프롬나드’라는 명사는 프랑스 언중들에게는 먼저 ‘산책로’ 혹은 ‘가로수가 있는 녹지 공간’이란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파리의 제 12구에 4.7km의 길이로 나 있는 ‘프롬나드 플랑떼’이다. 
  바스티유 광장에서 시작하여 시 경계를 이루는 고속화 도로에까지 이어지는 이 프롬나드 플랑떼는 ‘나무가 심어진 산책로’라는 의미를 갖고 파리의 도심을 가로지른다. 그리고 그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 곧이어 뱅센느 숲이 이어진다. 
  어떤 의미에서는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산책로(프롬나드)는 수도 파리가 아니라 지중해 연안의 휴양 도시 니스에 있다. ‘프롬나드 데 장글래’라는 이름은 말 뜻 그대로는 ‘영국인들의 산책로’인 셈인데, 이는 이 길이 영국인 목사 루이스 웨이가 계획하고 영국 정부의 재정이 참여하여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니스의 프롬나드 데 장글래는 니스를 방문하는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방문하는 명소이다. 엄청나게 넓은 차도 옆에 자전거를 위한 길, 도보를 위한 길, 롤러스케이트가 지나가는 길 등이 나란히 지중해 해변을 수 킬로미터를 달린다. 

  산책을 의미하는 또 하나의 말 ‘발라드/발라데’의 토포스는 20세기 이후의 프랑스인들에게 어쩌면 ‘프롬나드/프롬네’보다 더 친숙하게 다가올 지도 모른다. 지금은 시들었지만 20세기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소유하여 이용했던 소니의 휴대용 음향기기 워크맨을 프랑스사람들은 ‘발라되르(baladeur, 거니는 사람)’라고 불렀다.
그리고 “오~ 샹젤리제”라는 가사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조 다생의 샹송 <샹젤리제 대로> 역시 “나는 산책하고 있었네”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그 첫부분을 들으면 산책이라는 토포스 주위로 형성되는 흥겨운 프랑스의 일상이 저절로 떠오른다.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고 나는 거닐고 있었네
난 아무에게나 안녕 하고 인사하고 싶었다네
아무에게나, 그게 너였다고 쳐, 그럼 아무 말이나 너에게 했다네
그저 말을 걸기만 해도 너랑 친해졌다네”
토포스의 전개와 사례(러시아)   러시아에서 ‘산책’의 토포스를 대표하는 단어는 동사 ‘굴랴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굴랴티’는 ‘산책하다’의 의미뿐만 아니라 ‘일을 하지 않다, 빈둥거리다’의 의미에서부터 ‘(성적으로) 관계하다, 즐기다’의 의미까지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 다의어이다. 그 다의적 의미로 인해 때로 이 단어가 정확히 무엇을 가리키는지 파악하기 쉽지 않은 경우도 있다. 마리아 표도로브나 여제(1759~1828)와 플라토프 백작의 다음의 대화는 ‘굴랴티’ 동사의 다의적 의미를 드러내주는 것으로서, 그리고 ‘산책’에 대한 독특한 러시아적 해석과 관련하여 자주 회자되는 일화이다.

“마리아 표도로브나 여제는 지인들과 차르스코예 셀로에 다녀왔다고 말하는 저명한 백작 플라토프에게 물었다.
«거기서 무얼 했나요? 산책했나요(‘굴랴티’)?»
«아닙니다, 폐하.» 그는 ‘굴랴티’라는 단어를 자기식대로 해석하며 대답했다.
«산책이라 말할 정도는 아니고 단지 우정을 위해 세 명씩 비웠을 뿐입니다.»” (레본티나, 시멜료프, 『러시아 언어적 세계상의 핵심 사상』에서 재인용)

  ‘굴랴티’ 동사의 이러한 해석, 곧 단순한 ‘산책’을 넘어서 음주와 가무, 더 나아가 만취와 폭력까지 동반하는 확대된 의미로의 해석은 때로 러시아적 민족 정서와 관련하여 이야기되기도 한다. 현대 러시아어에서 이 단어가 종종 ‘일하다’의 반의어이자 ‘놀다’의 동의어로 간주되는 것도 ‘굴랴티’에 들어있는 러시아적 특성과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러시아 언어-문화 속의 ‘굴랴티’는 한국을 포함하여 다른 문화권의 ‘산책(하다)’ 개념과는 다소 상이한 연상 영역을 지니는 것이다.
  ‘굴랴티’의 이러한 독특한 개념 영역은 ‘산책’을 뜻하는 두 단어 중 ‘프로굴카’보다는 ‘굴랴니예’와 좀 더 밀접히 관련된다.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산책이라기보다는 특별한 날 집단적인 산책으로서 ‘굴랴니예’는 민중의 생활과 보다 깊은 관련을 맺으며 발전한 개념이지만, 이 대규모 산책 행사에 귀족이 배제되었던 것은 아니다. 민중과 귀족 모두가 참여하는 대중적 산책 행사로 ‘5월의 산책’을 들 수 있다. 이 행사는 표트르 1세가 직접 전두 지휘한 스웨덴 전에서의 승리(1703년 5월)를 기념하기 위해 1711년에 조성된 예카테린고프에서 열리는 대규모 민중 행사였다. 이 대중적 산책 행사에 대해 시인 흐보스토프는 『예카테린고프의 5월의 산책』(1824)이라는 시로 노래하기도 했다. 역시 이 행사를 묘사하고 있는 화가 감펠린의 <예카테린고프에서의 산책>(1824)은 당시 대중적 산책 행사의 규모와 황제에서 민중에 이르기까지 그 참가자들의 다양한 구성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대규모 산책 행사 기간에는 종종 음주와 가무를 동반한 떠들썩한 축연이 며칠 씩 계속되곤 하였다.

  대중적 산책과는 달리,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산책의 토포스는 18~19세기 귀족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러시아에 영국식 풍경 정원이 유행하던 시기의 정원들은 산책을 위해 조성되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정원은 산책하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경관을 펼쳐 보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일례로 건축가 리보프는 모스크바의 베즈보로드코 공의 정원을 풍경식으로 설계하면서 아침용, 점심용, 저녁용 산책로를 각각 따로 조성했다고 한다(리하초프, 『정원의 시학』 참조).
  18~19세기의 귀족 사회에서는 산책이 숙면과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으며 이러한 생각은 푸시킨의 시 『잠』(1816)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친구들이여! 지팡이를 챙겨
숲으로 가 계곡을 걸어보게나.
가파른 언덕의 정상까지 올라 지쳐버린다면
긴 밤 그대들의 잠은 깊고도 깊을 테니!” (푸시킨, 『잠』, 1816)

  또한 『예브게니 오네긴』의 아래 구절은 당시에 산책이 오네긴과 같은 귀족계층의 하루 일과 중 하나였음을 보여준다.

“챙이 넓은 볼리바르 모자를 쓰고
오네긴은 가로수길로 가
그곳의 드넓은 공간 속에서 산책을 한다,
시간 잘 맞는 브레게 시계가 
식사시간을 알릴 때까지.” (푸시킨, 『예브게니 오네긴』, 1823~1831)

  푸시킨 자신도 산책을 상당히 즐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1834년 여름, 페테르부르크의 산책 명소인 여름 정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던 푸시킨은 매일 그곳으로 산책을 가곤 했는데 그때의 일상을 아내 나탈리아에게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여름 정원은 내 텃밭이라오. 아침에 잠에서 깨면 실내복 차림에 신발을 신고 그곳에 간다오. 점심 식사 후에는 그곳에서 잠을 청하고 책을 읽거나 글을 쓰기도 하지. 그곳에 있으면 마치 집에 있는 것 같소.” (푸시킨, <나탈리아에게 보내는 편지>, 1834)

  앞서 인용한 『예브게니 오네긴』 속에 등장한 ‘가로수길’은 산책이 대유행하던 알렉산드르 1세 시대(1805년)에 페테르부르크의 모이카 강에서 폰탄카까지 조성된 길을 가리킨다. 
  한편, 19세기 초까지는 주로 귀족의 특권이었던 산책이 19세기 중반을 즈음하여 점차 평민계급 출신의 인텔리겐치아나 상인 계층의 일상 속으로도 들어가게 된다. 이 시기 페테르부르크의 산책 명소 일순위로 꼽히는 곳은 단연 넵스키 대로였다. 넵스키 대로에서의 산책 정경을 고골은 다음과 같이 묘사한 바 있다.

“넵스키 대로로 나아가자마자 이미 산책의 내음만이 풍성하다. 꼭 해야 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이곳에 오면 모든 일을 잊게 될 것이다. 이곳은 일 때문이 아니어도 사람들이 모이는 유일한 곳이며 이곳으로는 어떤 필요나 페테르부르크 전체에 만연해 있는 상업적 관심 때문에 쫓겨 오지는 않는다.” (고골, 『넵스키 대로』, 1834)

  그 인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19세기에 산책이 단순히 기분 전환과 오락거리로서만 기능했던 것은 아니다. 산책은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동시에 다른 이들을 관찰하기에 더없이 좋은 수단이었으며 또한 사회적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19세기 작가이자 비평가 불가린은 당시 러시아 사회에서 산책이 가지는 이러한 의미에 주목하고 있다.

“넵스키 대로는 세계에서 유일한 겨울 산책 장소이다. 우리는 자기 재단사의 기술을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어디서 점심을 먹을지 어디서 저녁시간을 보낼지 친구들과 의논하기 위해, 우연히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대금업자들에게 우리의 돈독한 관계와 우리의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산책 장소로 간다. [...] 누구나 다른 이들을 보고 또한 자기를 보여주기 위해 그곳으로 간다.” (불가린, <넵스키 대로에서의 산책>, 1824)
비교문화적 설명   결국은 일상생활의 범주에 속하는 ‘산책’이라는 토포스에서 프랑스와 러시아 양국의 차이점을 지적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언어와 문화생활 속에서 그 토포스가 갖는 일정한 함의는 지리적 혹은 역사적 편차들에 의해 크게 영향 받을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산책이라는 행위의 자발성을 염두에 둔다면, 즉 문화적 혹은 사회적 맥락으로부터 일정하게 분리되어있는 산책행위의 본원적 일상성을 생각한다면, 양국은 각기 나름의 지리적 사회적 환경 속에서 산책행위가 이루어졌을 것이고 또 그에 따른 토포스가 형성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문화권의 그 토포스들의 위치가 크게 다를 만한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한가로운 사람들이 혹은 일상에 쫓기는 사람들이라도 간만에 찾아온 한가로운 순간에 주거지 주변의 산책로를 걸으며 잠시 휴식을 취하며 상념에 잠기는 일이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단은 지리적 차이로 인한 기후 조건의 변별성에 대해서는 하나의 변수로 간주할 만할 것이다. 러시아는 프랑스보다는 춥다. 러시아인들의 산책은 늘 서늘한 기운 속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며 그에 비해 프랑스인들의 거닐기는 보다 더 안온하고 포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산책을 할 수 있다는, 지금 산책이 가능하다는 사실 자체가 프랑스보다 러시아에서 좀 더 유쾌하고 고맙게 느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굴랴티’라는 말의 중의성 때문에 러시아에서의 산책은 보다 더 미묘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 중의성 자체가 산책할 수 있는 순간을 고르기가 까다로운 지리적 여건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프랑스의 산책의 토포스는 19세기 산업화와 도시화의 세례를 본격적으로 받은 역사적 상황과 관련하여, 문화적으로 혹은 문학적으로 훨씬 더 다양하게 발현되고 있는 것을 시인 보들레르가 대표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 시인이 했던 그 음습하고 기이한 산책을 대중적으로 권할 수는 없겠지만.
연관 토포스 고독; 귀족; 여가; 정원;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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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자료(러시아) 고골,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 코•외투•광인일기•초상화•네프스키 거리』, 조주관 옮김, 민음사,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