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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타 가르보
영화인명 그레타 가르보
권역명 영미권
직능(직업) 배우
국적 스웨덴
작품 목록 <행복한 기사>(En lyckoriddare, 혹은 A Happy Knight, 스웨덴, 1921) John W. Brunius 연출
<방랑자 피터>(Luffar-Petter, 혹은 Peter the Tramp, 스웨덴, 1922) Erik A. Petschler 연출
<진홍의 천사>(Kärlekens ögon, 혹은 A Scarlet Angel, 스웨덴, 1923) John W. Brunius 연출
<고스타 베를링의 참회>(Gösta Berlings saga, 혹은 The Atonement of Gosta Berling, 스웨덴, 1924) Mauritz Stiller 연출
<활기 없는 거리>(Die freudlose Gasse, 혹은 The Joyless Street, 독일, 1925) Georg Wilhelm Pabst 연출
<격정>(The Torrent, 미국, 1926)
<요부>(The Temptress, 미국, 1926) Fred Niblo 연출
<육체와 악마>(Flesh and the Devil, 미국, 1927) Clarence Brown 연출
<안나 카레니나>(Love, 혹은 Anna Karenina, 미국, 1927) Edmund Goulding 연출
<천상의 여자>(The Divine Woman, 미국, 1928) Victor Sjöström 연출
<신비한 여인>(The Mysterious Lady, 미국, 1928) Fred Niblo 연출
<정부>(A Woman of Affairs, 미국, 1928) Clarence Brown 연출
<와일드 오키드>(Wild Orchids, 미국, 1929) Sidney Franklin 연출
<단일한 기준>(The Single Standard, 미국, 1929) John S. Robertson 연출
<키스>(The Kiss, 미국, 1929) Jacques Feyder 연출
<안나 크리스티>(Anna Christie, 미국, 1930) Clarence Brown 연출
<로맨스>(Romance, 미국, 1930)
<영감>(Inspiration, 미국, 1931) Clarence Brown 연출
<수잔 레녹스>(Susan Lenox, 미국, 1931)
<마타하리>(Mata Hari, 미국, 1931)
<그랜드 호텔>(Grand Hotel, 미국, 1932) Edmund Goulding 연출
<당신이 원하는 대로>(As You Desire Me, 미국, 1932)
<여왕 크리스티나>(Queen Christina, 미국, 1933) Rouben Mamoulian 연출
<페인티드 베일>(The Painted Veil, 미국, 1934) Richard Boleslawski 연출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 미국, 1935) Clarence Brown 연출
<춘희>(Camille, 미국, 1936) George Cukor 연출
<정복자>(Conquest, 미국, 1937) Clarence Brown 연출
<니노치카>(Ninotchka, 미국, 1939) Ernst Lubitsch 연출
<두 얼굴의 여자>(Two-Faced Woman, 미국, 1941) George Cukor 연출
소개 그레타 가르보 Greta GARBO (1905-1990)
스웨덴 출신의 영화배우. 본명이 그레타 구스타프슨(Greta Gustafsson)인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는 1905년 9월 18일 스톡홀름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거리 청소부였는데, 일찍 세상을 떠나서 그녀는 14세의 나이로 일을 구해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탁월한 미모는 주위의 시선을 끌었다. 그녀는 스웨덴의 가장 큰 백화점 PUB 설립자의 아들에게 발탁되어 점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1920년 모자 모델 제의를 받았을 때 그녀는 겨우 15세였다. 이처럼 조숙했던 그녀는 단역배우 일을 구하러 스톡홀름의 영화촬영소들을 찾아갔다. 그녀는 스톡홀름 연극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국제적인 배우기 되기 위해 그녀는 이름의 성을 어느 나라에서도 발음하기 쉽도록 가르보(Garbo)로 바꾸었다. 당시 그녀는 18세였다. 19세에 그녀는 할리우드로 진출했다.
그레타 가르보는 자신의 사생활과 공적 페르소나를 철저하게 분리하는데 성공한 흔치 않은 유명 배우였다. 이 베일에 쌓인 스웨덴 출신의 미녀 배우는 매체의 접근과 공적인 접촉을 철저하게 차단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이러한 신비주의 전략이 그녀의 성공에 핵심적 요인으로 작용을 했던 것이다. 왕립연극학교(Royal Dramatic Theater acting school)에서 연기수업을 받은 그녀는 소규모 무대에 섰다가 영화감독인 모리스 스틸러(Maurice Stiller)에 의해 발탁이 된다. 1924년 19세의 나이로 영화에 데뷔를 했지만 아직 그녀의 진가가 나타나기에는 일렀다. 그러나 이내 기회가 찾아왔다. 파프스트(Georg Wilhelm Pabst) 감독의 <활기 없는 거리>(The Joyless Street, 1924)에서 조연을 맡아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다. 이 작품이후 그녀는 스틸러와 함께 할리우드로 가서 MGM이 제작을 한 <격정>( The Torrent, 1926)이라는 영화에서 주연을 맡게 된 것이다. 영화는 성공을 거두었고 가르보는 서서히 부상하기 시작했다. 차기작인 <요부>(Temptress)에서 그녀는 제목 그대로 요부(妖婦)형의 캐릭터를 맡아 호기심에 가득 찬 관객들을 매료시켰고, 영화는 흥행대박을 터뜨렸다.
그녀의 초기 대표작은 <육체와 악마>(Flesh and the Devil, 1927)라는 영화였는데, 당시 MGM의 간판스타였던 존 길버트(John Gilbert)와 공연을 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죽마고우였던 하르덴(존 길버트)과 울릿치(라스 한센)가 펠리치타(가르보)라는 한 요염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 갈등을 겪는다는 내용인데, 펠리치타는 누구나 첫눈에 빠져들 만큼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였다. 당시 22살이었던 가르보는 뇌쇄적인 눈빛 연기로 두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명연기를 펼쳐보였다. 악마는 고결한 정신(spirit)을 통해서가 아니라 아름다운 육체(flesh)를 통해서 우리에게 접근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만, 간통이라는 주제를 정면에서 다루었다는 점에서 당시로서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작품의 흥행성공으로 그녀는 명실상부한 슈퍼스타가 되었다. 극중 사랑하는 관계였던 가르보와 길버트는 실제로도 뜨거운 사이로 발전을 하지만, 이들의 열애가 결혼으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가르보가 영화에 전념하기 위하여 현실의 행복을 포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개성(individuality)에 강한 집착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늘 혼자 있기를 좋아했고, 그녀의 이러한 초연함은 그녀를 더욱 신비롭게 보이게 했다. 그녀는 <천상의 여자>(The Divine Woman), <신비한 여인>(The Mysterious Lady, 1928), 그리고 <와일드 오키드>(Wild Orchids, 1929) 같은 다수의 무성영화에 출연했는데, 그녀의 출연 자체만으로도 이들 영화는 모두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다. 이들 작품에서 그녀는 때로는 순수한 캐릭터를 맡고 때로는 타락한 캐릭터를 맡았지만, 그러한 것은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관객들이 보기를 원했던 것은 극중 캐릭터가 아니라 가르보 자체였으니까 말이다. 가르보가 <안나 크리스티>(Anna Christie)라는 유성영화(talkie)에 처음 출연할 때, MGM측에서는 “가르보가 말한다(Garbo Talks!)”라는 카피 문구를 내세웠다. 외국 태생인데다가 발음도 딱딱하고 게다가 허스키한 목소리의 소유자였던 가르보였지만, 관객들은 개의치 않았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조차도 매력으로 다가온 것이다. 가르보는 이밖에 몇 편의 범작들에 출연했지만, 그녀가 출연했다는 그 이유만으로 그 영화들은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졌다. 그녀는 <그랜드 호텔>(Grand Hotel, 1932)이라는 영화에서 치명적인 발레리나 역을 맡아 열연함으로써 자신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창출하기도 했는데, 이 영화에서 가르보가 한 유명한 대사인 “난 혼자 있길 원한다. I want to be alone”는 이후 그녀를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다.
이듬해 제작된 <여왕 크리스티나>(Queen Christina, 1933)는 그녀가 출연한 최고의 ‘유성영화’라는 찬사를 받았다. 타이틀 롤을 맡은 그레타 가르보는 아주 매력적인 여왕 역을 무난하게 소화했는데, 실제로 영화의 모델이 됐던 크리스티나는 못생긴 외모에 가까웠고, 아기 때 낙상하여 한쪽 어깨가 기형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였다. 가르보는 극중 캐릭터에 충실했다기보다는 자신의 개성적인 외모와 연기를 통해서 자신만의 스타 페르소나를 창조했던 것이다. 그녀는 1935년 톨스토이 원작의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에서 타이틀 롤을 맡았으며, 몇 년 후 <춘희>(Camille, 1937)라는 영화에서 자신의 페르소나에 거의 완벽하게 부합하는 캐릭터인 카미유 역을 맡아 인상 깊은 연기를 펼쳐보였다. ‘연기’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그레타 가르보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1937년 <정복자> (Conquest)라는 영화를 끝으로 잠시 휴지기에 들어갔던 가르보는 1939년 에른스트 루비치(Ernst Lubitsch) 감독의 코미디영화인 <니노치카>(Ninotchka)로 복귀를 했는데, 당시 카피 문구는 “가르보 웃다!(Garbo Laughs!)”였다. 가르보의 말 한마디, 미소 하나가 작품의 성패를 좌우하는 동인이었던 것이다.
1941년 가르보는 또 한편의 코미디영화인 <두 얼굴의 여자>(Two-Faced Woman)에 도전을 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당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어서 유럽 쪽 배급이 여의치 않자, MGM은 스타 가르보를 미국식 여성으로 개조하려고 했는데, 그러한 시도는 허망한 것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이후 가르보는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작품선정에 나섰으나 이렇다 할 후속작품을 찾지 못하고 시간만 허비하고 말았다. 1949년 그녀는 자신을 지지하는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스크린 테스트에 임했지만, 결실을 맺지 못했다. 그 동안 많은 세월이 흘렀고, 그레타 가르보는 어느덧 왕년의 스타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녀는 곧바로 은퇴를 선언했고, 스위스 및 이탈리아 등지에서 칩거에 들어간다. 전성기 때 활약상에 비해 상복이 없었던 그녀는 1954년 제27회 아카데미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지만, 시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평생 독신으로 여생을 보내던 그녀는 1990년 4월 15일 미국 뉴욕에서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