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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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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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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범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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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역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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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권(북한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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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능(직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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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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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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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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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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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성> (Polaris (Bukgeukseong), 한국, 1962) <유랑극장> (The Wandering Troupe (Yurang Geugjang), 한국, 1963) <창살없는 감옥> (The Prison without Bars (Changsal-depneun Gam-ok), 한국, 1963) <검은 꽃잎이 질때> (When Black Flowers Fade (Geomeun Kkonnipi Jilttae), 한국, 1963) <안개낀 거리> (Foggy Street (Angaekkin Geori), 한국, 1963) <소만국경> (The Border between Russia & Manchuria (Somangukgyeong), 한국, 1964) <동굴속의 애욕> (The Passion in the Cave (Donggulsogui Aeyok), 한국, 1964) <당신만을 위하여> (Only for You (Dangsinman-eul Wiha-yeo), 한국, 1964, 감독, 각색) <밤은 말이 없다> (The Night Makes No Response (Bam-eun Mal-i Eopda), 1965) <탈출명령> (A Rescue Order (Talchul Myeongryeong), 한국, 1966) <여자 베트콩 18호> (Female Viet Cong No. 18 (Yeojabeteukong Sippalho), 한국, 1967) <울려고 내가 왔나> (Did I Come to Cry (Ullyeogo Naega Wanna), 한국, 1967) <칼맑스의 제자들> (Students of Karl Marx (Karl Marx-ui Jejadeul), 한국, 1968) <내가 반역자냐> (I’m Not a Traitor (Naega Banyeogjanya), 한국, 1968) <대검객> (Great Swordsman (Daegeomgaek), 한국, 1968) <서울야화> (A Story of Seoul (Seoul Yahwa), 한국, 1969) <석양의 하르빈> (Harbin at Sun(Seog-yang-ui Haleubin(Harbin)) , 한국, 1970) <항구의 왼손잽이> (The international crime organization(Gugje-amsaldan), 한국, 1971) <국제암살단> (The international crime organization(Gugje-amsaldan), 한국, 1971) <일대영웅> (A great hero (Ildae-yeong-ung), 한국, 1973) <남사당> (A troupe of strolling actors (Namsadang), 한국, 1974, 기획) <마지막 다섯손가락> (The Last Five Fingers (Majimag daseossongalag), 한국, 1974, 기획) <풍운의 권객> (A soldier of fortune(Pung-un-ui gwongaeg), 한국, 1974) <황혼의 만하탄> (Manhattan at sunset(Hwanghon-ui Manhatan(Manhattan)), 한국, 1974) <밀행> (Secret Going (Milhaeng), 한국, 1975, 기획) <태풍을 일으킨 사나이> (A Man Causing a Typhoon. (Taepung-eul il-eukin sana-i), 한국, 1975, 기획) <육체의 약속> (Promises (Yugche-ui yagsog), 한국, 1975, 기획) <애수의 샌프란시스코> (Sad San Francisco (Aesu-ui Saenpeulansiseuko(San Francisco)), 한국, 1975, 기획) <걷지말고 뛰어라> (Don’t Walk But Run! (Geodjimalgo ttwi-eola), 한국, 1976, 기획) <진짜 진짜 잊지마> (Never Never Forget Me (Jinjja Jinjja Ijjima), 한국. 1976, 기획) <사망탑> (Death Tower (Samangtab), 한국, 1980) <괴시(怪屍)> (A Monstrous Corpse (Goesi), 한국, 1981) <팔대취권> (Paldaechi Fighting Skill (Paldaechwigwon), 한국, 1981) <몽녀한> (Grudge of the Sleepwalking Woman (Mongnyeohan), 한국, 1983) <칠소여복성> (Seven Brave Policewomen (Chilsoyeobokseong), 한국, 19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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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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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범구 Gang Beom-gu 康範九 (1924~ ) 한국의 영화감독 및 촬영기사. 강범구는 1924년 7월 15일 황해도 벽성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해방 이후 혼자 월남하여 서울에서 살다가 한국전쟁 시기 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강범구는 부산에서 1953년에 개최된 제3회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에서 국민대 연극부의 연극 <순동이>(유치진 작, 박상호 연출)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 끝난 뒤 다시 서울로 돌아가 국민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하여 연극부에서 활동했다. 강범구가 영화계에 입문한 것은 박상호 감독을 통해서였다. 그는 박상호 감독의 <해정>(1956)의 촬영부 시작으로, 유현목 감독의 <유전의 애수>(1956)와 <잃어버린 청춘>(1957)에서도 촬영부에서 일했다. 강범구가 처음 촬영감독을 맡은 영화는 신상옥 감독의 <지옥화>(1958)였다. 그는 이 영화를 시작으로 <어느 여대생의 고백>(1958), <지평선>(1961) 등 1961년까지 12편의 영화를 촬영했다. 강범구의 감독 데뷔작은 1962년에 발표된 <북극성>(1962)이었다. <북극성>은 불행한 삶을 살아오던 청년이 범죄를 저지르지만, 인자한 할머니와의 만남을 통해 개과천선하게 된다는 통속적인 액션영화였다. 강범구의 대표작으로는 <유랑극장>(1963)과 <검은 꽃잎이 질 때>(1963)가 있다. <유랑극장>의 남자주인공은 음대를 중퇴하고 불량하게 살고 있는 가수지망생이다. 그는 유랑극단의 단원이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가수가 되려면 우선 인간이 되어야 함을 깨닫고 가수로 성공하게 된다. 제작당시 뮤지컬 영화로 알려졌지만, 개봉 이후에는 ‘음악적 분위기의 멜러물’(경향신문), ‘악극조의 멜로드라마’(조선일보), ‘뮤지컬 풍의 통속극’(한국일보)으로 평가받았다. <유랑극장>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영화음악을 수록한 레코드가 발매될 만큼 많은 관심을 받았다. <검은 꽃잎이 질 때>는 동명의 추리방송극을 영화화한 것으로, 반공영화에 가까운 첩보영화였다. 남파된 북한의 간첩일당이 남한의 정보기관에 발각되고, 무고한 양민을 방패삼아 월북하려한다. 그러나 남한 정보기관이 그들을 일망타진하고 양민들을 구출해낸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검은 꽃잎 질 때>는 당시 ‘본격적인 스릴러 영화’ 혹은 ‘추리극’으로 호평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강범구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안개 낀 거리>(1963)를 들 수 있다. 형사 황해는 살인사건의 범인이 한국전쟁 당시 자신의 생명을 구해주었던 전우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자신의 전우는 하수인이었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교사범(敎唆犯)을 체포하기 위해 활약한다는 영화였다. 강범구는 평론가들로부터 <안개 낀 거리>에서 범인과 형사의 격투가 벌어지는 기차신이 볼 만하며 화면처리가 선명하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 외 강범구의 작품으로는 <소만국경>(1964), <탈출명령>(1966), <울려고 내가 왔나>(1967), <대검객>(1968), <석양의 하르빈>(1970), <항구의 왼손잡이>(1971), <황혼의 맨하탄>(1947), <풍운의 권객>(1974), <괴시>(1981), <몽녀한>(1983) 등이 있다. 이 중 <괴시>(1981)가 독특하다. 이 영화는 한·미·중이 함께 실시한 초음파실험에 의해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 괴물이 된다는 내용인데, 이러한 이유 때문에 <괴시>는 우리나라 최초의 좀비영화로 인식되고 있다. 영화에서는 태권도로 괴물을 물리치는 등의 한국적인 특징이 나타나기도 했다. 강범구는 영화연출뿐만 아니라, 한국영화계가 대만과 홍콩과의 협력관계를 만드는 데도 많은 기여했다. 그의 영화 <탈출명령>(1966)은 한국 최초 한국․대만 합작 영화였고, <일대영웅>(1974)은 한국과 홍콩의 합작 영화였다. 강범구의 초기영화들이 대만으로 수출되면서 그는 중화권과의 영화 교류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강범구는 자신의 영화수출 뿐만 아니라, 1974년 설립된 영화 진흥공사 홍콩 법인과 연계하여 한국영화의 대만 수출 업무에도 관여하였다. 강범구는 1990년대 중반까지 중화권 외화 수입을 중개하며 한국에 많은 중화권 외화를 소개해주기도 했다. 강범구는 1950년대 후반 새롭게 등장한 액션영화들이 1960년대 폭발적인 전성기를 누릴 수 있도록 한 한국적 액션영화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이었다. 강범구는 당시 ‘노력형 감독’으로 평가받으면서 거친 외모와 달리 섬세한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데뷔 초기에는 주로 반공영화나 액션영화를 만들었고, 후기로 들어서면서 공포영화나 무협영화들을 주로 연출했다. 특히 강범구는 스릴러 액션영화에 능했는데, 그는 빠른 호흡을 통해서 동시대 관객들의 감각을 충족시켜주었다. 또한 한국 영화를 중화권에 알린 주요 감독 중 한명이라는 점에서 한국 영화사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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