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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라 카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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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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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라 카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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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역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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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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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능(직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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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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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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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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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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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잘난 사람>(His Nibs, 미국, 1921) <라일리의 삶>(The Life of Reilly, 미국, 1923) <개 조심>(Beware of the Dog, 미국, 1923) <불안한 아내들>(Restless Wives, 미국, 1924) <새로운 선생님>(The New School Teacher, 미국, 1924) <우먼핸들>(Womanhandled, 미국, 1925) <렛츠 겟 메리>(Let’s Get Married, 미국, 1926) <다시 말해줘요>(Say It Again, 미국, 1926) <시끄러워!>(So’s Your Old Man, 미국, 1926) <파라다이스 포 투>(Paradise for Two, 미국, 1927) <러닝 와일드>(Running Wild, 미국, 1927) <그런 말을 누가 믿어!>(Tell It to Sweeney, 미국, 1927) <게이 디펜더>(The Gay Defender, 미국, 1927) <하프 어 브라이브>(Half a Bride, 미국, 1928) <필 마이 펄스>(Feel My Pulse, 미국, 1928) <토요일의 아이들>(Saturday’s Children, 미국, 1929) <빅 뉴스>(Big News, 미국, 1929) <그의 첫 번째 명령>(His First Command, 미국, 1929 <러프 앤 겟 리치>(Laugh and Get Rich, 미국, 1931) <스마트 우먼>(Smart Woman, 미국, 1931) <심포니 오브 식스 밀리언>(Symphony of Six Million, 1932) <허락 가능한 나이>(The Age of Consent, 1932) <반나체의 진실>(The Half Naked Truth, 1932) <백악관 위의 가브리엘>(Gabriel Over the White House, 1933) <장미의 침실>(Bed of Roses, 1932) <용감한 여인>(Gallant Lady, 미국, 1933) <어페어 오브 셀리니>(The Affairs Of Cellini, 미국, 1934) <여자는 누구나 알고 있다>(What Every Woman Knows, 미국, 1934) <프라이빗 월드>(Private Worlds, 미국, 1935) <그녀는 상사와 결혼했네>(She Married Her Boss, 미국, 1935) <마이 맨 갓프리>(My Man Godfrey, 미국, 1936) <스테이지 도어>(Stage Door, 미국, 1937) <5번가 소녀>(Fifth Avenue Girl, 미국, 1939) <환락의 길>(Primrose Path, 미국, 1940) <언피니쉬드 비즈니스>(Unfinished Business, 미국, 1941) <레이디 인 어 잼>(Lady in a Jam, 미국, 1942) <리빙 인 어 빅 웨이>(Living In A Big Way, 미국, 1947) <원 터치 오브 비너스>(One Touch Of Venus, 미국, 1948) 미등재 제작 <파라다이스 포 투>(Paradise for Two, 미국, 1927) <러닝 와일드>(Running Wild, 미국, 1927) <그런 말을 누가 믿어!>(Tell It to Sweeney, 미국, 1927) <필 마이 펄스>(Feel My Pulse, 미국, 1928) <여자는 누구나 알고 있다>(What Every Woman Knows, 미국, 1934) <5번가 소녀>(Fifth Avenue Girl, 미국, 1939) <환락의 길>(Primrose Path, 미국, 1940) <언피니쉬드 비즈니스>(Unfinished Business, 미국, 1941) <레이디 인 어 잼>(Lady in a Jam, 미국,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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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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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라 카바 Gregory La Cava (1892~1952) 미국의 영화감독, 제작자. 그레고리 라 카바는 1892년 3월 10일 미국 펜실베니아 주 토완다(Towanda, Pennsylvania)에서 태어났다. 성장한 그는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Art Institute of Chicago)와 아트 스튜던츠 리그(Art Students' League)에서 공부했다. 1913년 즈음 그는 라울 바레(Raoul Barre) 스튜디오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라울 바레 감독의 <그라우치 체이서>(The Animated Grouch Chasers, 1915) 시리즈의 애니메이터였다. 1915년 말,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William Randolph Hearst, 미국의 유명 신문경영자)는 자신이 만든 신문에 연재만화를 싣기 위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를 건립하고자 했다. 결국 그는 인터네셔널 필름 서비스(International Film Service, IFS)라는 신생 회사에 연락을 했고 라 카바를 그 만화작업을 위해 고용했다. 그곳에서 라 카바의 첫 번째 고용인은 바레 스튜디오에서 공동 작업자였던 프랭크 모세(Frank Moser)였다. 다른 고용인은 시카고(Chicago)에서의 만났던 학우인 그림 냇윅(Grim Natwick). 라 카바는 허스트 신문사의 만화를 발전시켰고 그것이 시리즈가 되게 했다. 그리고 반독립적인 유닛을 각각의 작품에 넣었고 개인적 스타일의 발전을 이끌었다. 또한 라 카바는 다른 스튜디오에서의 무제한적인 예산을 받을 수 있는 막대한 이점을 갖기도 했다. 허스트의 비지니스 감각은 완전히 무너졌는데 허스트-바이타그래프 뉴스 픽토리얼(Hearst-Vitagraph News Pictorial)과 ‘리빙 코믹 스트립스(living comic strips)’를 포함할 때 그랬다. 라 카바가 제작자이자 감독일 때 했던 주요한 실수는 그의 만화가 연재만화에서 너무 쉽게 그려졌을 때였고, 브레이 스튜디오가 오리지널 캐릭터를 가지고 더 효과적인 시리즈를 만들었을 때 말풍선에 의해 방해받았을 때였다. 그는 이 문제를 알아차렸으며 제작 시간과 캐릭터화를 위해 자신의 애니메이터들로 하여금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의 영화를 공부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성취하기 위한 시간은 많지 않았는데, 1918년 7월 허스트 은행가들이 그를 꼼짝 못 하게 했고 IFS가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허스트는 여전히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화화하고자 했는데, 그래서 다양한 스튜디오에서 IFS의 시리즈가 지속할 수 있게 허락을 받았다. 결국 라 카바와 IFS의 대부분의 스텝은 존 테리(John Terry)의 스튜디오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는 오래 있지는 못했다. 대신 이후 골드윈-브레인사에 애니메이터들이 고용되었다. 하지만 라 카 바는 고용되지 못했다. 이미 그 회사는 몇몇 제작자를 갖고 있었고 라 카바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대신 라 카바는 할리우드로 향했다. 1922년 라 카바는 단편 희극 영화의 감독이 됐다. 무성영화 시절 베베 다니엘즈(Bebe Daniels), 리차드 딕스(Richard Dix), W. C. 필즈(W. C. Fields)와 같은 배우와 작업하기도 했다. 그는 무성영화 시절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1930년 유성영화 시절에 만든 코미디물들로 더 유명하다. 특이하게도 그는 자신의 이름을 크레딧에 올리지 않았으며, 자신의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썼다. 라 카바가 유성영화 시절 만들었던 작품은 다음과 같다. <반나체의 진실>(The Half Naked Truth, 1932), <허락 가능한 나이>(The Age of Consent, 1932), <심포니 오브 식스 밀리언>(Symphony of Six Million, 1932), <장미의 침실>(Bed of Roses, 1932), <백악관 위의 가브리엘>(Gabriel Over the White House, 1933), <여자는 누구나 알고 있다>(What Every Woman Knows, 1934), <프라이빗 월드>(Private Worlds, 1935), <그녀는 상사와 결혼했네>(She Married Her Boss, 1935), <마이 맨 갓프리>(My Man Godfrey, 1936), <스테이지 도어>(Stage Door, 1937), <5번가 소녀>(Fifth Avenue Girl, 1939), <환락의 길>(Primrose Path, 1940) 이중 <심포니 오브 식스 밀리언>은 RKO(Radio Keith Orheum, 1928년에 설립된 미국의 영화 제작·배급 회사)에서 제작된 작품으로 패니 허스트(Fannie Hurst)의 원작에 리카르도 코르테즈(Ricardo Cortez)와 아이린 듄(Irene Dunne)이 나왔다. 이와 함께 유성영화 시절 첫 번째 교향음악을 만들었던 막스 스테이너(Max Steiner)의 음악이 들어간 작품이었다. 다음, <허락 가능한 나이>는 대학을 다니는 두 남녀가 연애에 있어서 책임감을 배우는 모습이 담겨있는 영화였다. <마이 맨 갓프리>는 라 카바의 대표작으로 대공황애 인해 경제적ㆍ사회적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는 1930년대 미국 뉴욕을 다뤘다. 주인공 갓프리(Godfrey, 윌리엄 포웰[William Powell]분)는 뉴욕 강변에 위치한 빈민촌에서 생활한다. 그런데 어느 날 코넬리어(Cornelia, 게일 페트릭[Gail Patrick]분)와 아이린(Irene, 캐롤 롬바드[Carole Lombard]분)이라고 불리는 두 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대공황을 비웃듯 유복한 삶을 사는 두 여인은 자선 파티에서 게임, 즉 ‘사람들이 가장 원하지 않는 것’을 가져오는 것을 위해 빈민이자 실직자인 갓프리를 찾아온다. 최하층민 갓프리를 데려간 그들은 결국 게임에서 승리하게 된다. 그와 중에 갓프리가 범상치 않은 존재임을 깨닫게 된 두 여인은 집사로 그를 고용한다. 영특한 갓프리는 부유하지만 어머니가 사기꾼에게 당할 뻔 한다거나 아버지가 경제적ㆍ법률적 어려움을 겪는 식의 여러 문제가 있는 두 여성의 집안을 안정화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와 함께 아이린을 매혹시키기도 하는 그이다. 그런데 갓프리는 알고 보니 하버드를 졸업한 우수한 인재임이 밝혀지고, 호기심에 빈민촌을 들렸다가 두 여인에게 발견되었음이 알려진다. 갓프리의 이러한 실제 모습을 알게 된 집안사람들은 놀라게 되면서도 갖가지 도움을 줬던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스크루볼 코미디물(screwball comedy, 1930년대 미국 대공황 시기에 유행했던 코믹극의 한 종류)로서 이 영화는 갓프리가 겪는 갖가지 일을 재밌게 잘 담아냈는데, 유명한 영화평론가이자 영화사학자인 스티븐 제이 슈나이더(Steven Jay Schneider) 또한 대공황 시기를 적절히 풍자하는 면과 함께 ‘어리석은 대사나 허술한 인물을 집어넣지 않’은 점, ‘기관총 같은 말싸움’과 ‘줄거리를 빠르고 간결하게 전달함’의 특징을 꼽으며 ‘고전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원형’을 이 작품을 언급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라 카바의 다른 영화 <백악관 위의 가브리엘>과 <그녀는 상사와 결혼했네>도 주요하게 언급하며 그의 영화가 지닌 영화적 가치와 함께 정치 사회적 풍자의 기능을 하는 점을 높이 샀다(『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 마지막 <스테이지 도어>는 캐서린 햅번(Katharine Hepburn)이 주연한 영화이자 진저 로저스(Ginger Rogers)와 함께한 3편의 영화 중 천 번째 작품이었다. 영화의 내용은 하숙집에 사는 유명한 여배우들의 꿈과 야망 그리고 회의에 관해서였다. 193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다양한 작품을 만들었던 라 카바이지만 1940년대 이르러서는 다소 주춤한 그였다. 공식적으로 1942년 이후에는 진 켈리(Gene Kelly)가 출연한 <리빙 인 어 빅 웨이>(Living In A Big Way, 1947)만을 만든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런 그는 이후 1952년 캘리포니아에서 사망했다. <마이 맨 갓프리>를 중심으로 하여 현재에 이르러서도 그는 1930~50년대 할리우드 고전 코미디물을 대표하는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서울시네마테크』, 할리우드 고전 코미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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