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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 두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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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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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 두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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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역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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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권(동아시아 제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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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능(직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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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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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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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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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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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Baazi, A Game of Chance, 인도, 1951, 감독/시나리오) <그물>(Jaal, The Net, 인도, 1952, 감독/시나리오) <사기꾼>(Baaz, The Hawk, 인도, 1953, 감독/시나리오/배우) <유부녀>(Suhagan, The Married Woman, 인도, 1954, 배우) <어크로스 더 하트>(Aar-Paar, Across the Heart, 인도, 1954, 감독/배우) <미스터 앤 미시스 55>(Mr. & Mrs. 55, 인도, 1955, 감독/배우) <감정>(Sailaab, Flood of Emotion, 인도, 1956) <갈증>(Pyaasa, The Thirsty One, 인도, 1957, 감독/배우) <12시>(12 O’Clock, 인도, 1958, 배우) <종이꽃>(Kaagaz Ke Phool, Paper Flowers, 인도, 1959, 감독/배우) <보름달>(Chaudhvin Ka Chand, Full Moon, 인도, 1961, 프로듀서/배우) <사우테라 비하이>(Sautela Bhai, 인도, 1962, 배우) <왕, 여왕 그리고 노예>(Sahib Bibi Aur Ghulam, King, Queen and Slave, 인도, 1962, 프로듀서/배우) <브하로사>(Bharosa, 인도, 1963, 배우) <바후라니>(Bahurani, 인도, 1963, 배우) <수하간>(Suhagan, 인도, 1964, 배우) <산지 우르 사베라>(Sanjh Aur Savera, 인도, 1964, 배우) <피크닉>(Picnic, 인도, 1964,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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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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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 두트 Guru DUTT (1925-1964) 인도의 영화감독, 배우. 1925년 인도 남부 카르나타카(Karnataka)주 방갈로르(bangalore)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은행재단 학교의 교장선생님이었고, 프리랜서 번역가이자 작가로 활동한 모친은 열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그를 낳았다. 엄격한 부친과 육아가 서툰 모친 사이에서 혼란스러운 유년기를 보낸 두트는 부모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게다가 사고로 형의 죽음을 목격한 후 성격은 더욱 내성적이되었고, 사고 후 부모는 본명 바산트 쿠마르 쉬바산카르 파두쿠네(Vasanth Kumar Shivashankar Padukone) 대신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며 구루 두트라는 이름으로 개명시켰다. 어릴 적부터 춤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41년부터 인도 근대무용의 창시자 우다이 상카르(Uday Shankar)가 설립한 알모라 예술 아카데미(Art Academy at Almora)에서 무용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세계 2차 대전의 영향으로 1944년 알모라 예술 아카데미가 문을 닫게 되자, 푸네(Pune)에 위치한 프라브핫 영화사(Prabhat Film Company)에 안무가로 입사하면서 영화계에 입문했다. 그곳에서 비쉬람 비데카르(Vishram Bedekar) 감독의 <락흐라니>(Lakhrani, 1945), 산토시(P. L. Santoshi) 감독의 <훔 엑 하인>(Hum Ek Hain, 1946) 등의 작품에서 단역 배우, 조감독, 안무가로 활동했다. 1947년 가족이 거주하던 뭄바이(Mumbai)로 옮겨와 지역의 영자주간지 『The Illustrated Weekly of India』에 단편 소설을 연재하면서 시나리오 집필을 시작했다. 그러던 중 프라핫 시절부터 친교를 맺었던 데브 아난드(Dev ANAND)의 주선으로 나브케탄 영화사(Navketan Films)에 들어갔고, 1951년 자신이 쓴 시나리오로 감독 데뷔작 <도박>(A Game of Chance)을 완성했다. <도박>은 필름 누아르의 영향을 받은 도시 범죄물이었다. 가난한 집안 출신의 남자는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헤매다 도박에 인생을 걸게 되고 도박장을 열어 많은 돈을 번다. 지적이고 교양 있는 여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그녀는 경찰인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훗날 그녀의 경찰 남편은 아내의 옛 애인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검거하고 이 과정에서 오해와 갈등을 겪는다. <도박>이 상업적으로 성공하면서 구르 두트는 <그물>(The Net, 1952), <어크로스 더 하트>(Across the Heart, 1954) 등 도시를 배경으로 한 범죄 스릴러 영화를 잇달아 만들었는데, 이 영화들에 쓰인 혁신적인 클로즈 업으로 인도 식 필름 누아르를 이끈 선구자로 평가받게 되었다. 한편 그는 푸네에서 지내던 시절부터 사회비판적 성향의 인도극작가협회(Indian People's Theatre Association : IPTA) 사람들과 교류했는데, 마음 맞는 사람들과 팀을 만들어 활동하기를 원했다. 이런 바람의 결과 1954년 속칭 ‘구루 두트 팀(Guru Dutt team)’이라 불리는 모임을 결성했는데, 여기에는 촬영가 무르티(V.K. Murthy), 배우 와히트 레만(Waheeda Rehman), 조니 워커(Johnny Walker), 감독 라지 코슬라(Raj Khosla), 아브라 알비(Abrar Alvi) 등이 함께 했다. 구루 두트는 이들과의 협업으로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구르 두트 팀 일원들은 훗날 발리우드의 유명 영화인들이 되었다. 구루 두트는 팀 조직 후, <갈증>(The Thirsty One, 1957)을 연출했다. 이미 P.C. 바루아(P.C. Barua), 비말 로이(Bimal Roy)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바 있는, 인도의 유명 작가 사랏찬드라 챠테르지(Saratchandra Chatterjee)의 소설 『데브다스』(Devdas)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신분의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를 우울하면서도 로맨틱하게 그렸다. 두트는 세상을 원망하는 주인공 시인 역할로 직접 출연했으며, 강렬한 빛과 그림자가 대비되는 짙은 콘스라스트, 영화의 메시지를 잘 살려낸 아름다운 음악이 결합되어 흥행과 비평 모두 크게 성공했다. 이 영화는 훗날 프랑스, 독일, 일본 등에서 재개봉되어 주목을 받았으며, 2005년 미국의 시사지 『타임』(TIME)이 선정한 100대 영화(All-Time 100 Movies Time)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상업영화계에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한 구르 두트는 1959년 자전적 영화인 <종이꽃>(Paper Flowers)을 만들었다. 인도영화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예전 스튜디오를 다시 찾아간 퇴물 감독과 스타 여배우를 둘러싼 이야기로 낭만적이고 애상적인 영상을 선보였다. 인도영화 역사상 최초로 시네마스코프(cinemascope)로 만들어진 이 영화에서 두트는 주인공 감독 역으로 출연하는 등 자신의 영화 세계를 마음껏 펼쳤으나, 관객들은 지나치게 컬트적이라며 영화를 외면했다. <종이꽃>이 흥행에서 참패한 후 두트는 영화 연출에서 손을 뗐다. 이후 배우로서 몇 편의 영화에 참여했지만, 아내와의 별거, 신경쇠약, 과음으로 삶이 망가졌다. 결국 1964년 39세를 일기로, 알코올 중독과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구루 두트는 다작이 일반적인 발리우드에서 8편의 작품만을 남겼다. 영화를 연출할 때는 시간과 비용에 신경을 쓰지 않고 완벽한 작품이 되기를 희망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불가항력적 사회 환경에 고통을 받는 예술가나 불안함을 가진 젊은이들, 그리고 제도에 억압받는 여성들이었다. 그의 작품은 사회 비판적인 인도 예술영화의 움직임 속에서 상업적인 요소를 혼합하여 새로운 경향을 제시했다. 필름 누아르의 인도적 변주라는 측면에서 '인도의 오슨 웰즈(Orson Wells)'라 불리며, 고도로 양식화된 멜로드라마 스타일을 보여주어 '인도의 더글러스 서크(Douglas Sirk)'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2010년 미국의 방송사 CNN은 25인의 아시아 탑 배우(top 25 Asian actors of all time)에 그를 선정하는 등 배우로써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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