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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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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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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응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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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역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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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권(북한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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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능(직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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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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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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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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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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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으는 일지매> (The Flying Il Ji-mae (Nal-euneun Iljimae), 한국, 1978) <팔불출> (Dull Servant Pal Bul-chul (Palbulchul), 한국, 1980) <풍운아 팔불출> (The Hero, Pal Bul-chul (Pung-un-a palbulchul), 한국, 1981) <사랑이 꽃피는 나무> (The Tree Blooming with Love (Salang-i kkochpineun namu), 한국, 1981) <꿀맛> (Sweet As Honey (Kkulmat), 한국, 1982) <소림신방> (Shaolin Bridal Room (Solimsinbang), 한국, 1982) <불새의 늪> (The Swamp of the Firebird (Bulsae-ui neup), 한국, 1983) <양귀비> (Yang-gwi-bi (Yanggwibi), 한국, 1985) <화랭이> (The Sorcerer (Hwalaeng-i), 한국, 1985) <불춤> (Fire Dance (Bulchum), 한국, 1985) <밤을 먹고 사는 여인> (Woman Who Lives On Nights (Bam-eul meoggo saneun yeo-in), 한국, 1985) <뜨거운 겨울> (Hot Winter (Tteugeowun gyeowul), 한국, 1986) <바람의 아들> (Son of Wind (Baram-ui a-deul), 한국, 1987) <난운> (Misfortune (Nanwun), 한국, 1987) <청춘시대> (Age of Youth (Cheongchun-sidae), 한국, 1988) <못먹어도 고> (Bet, Regardless Of Losing (Mot-meokeodo go), 한국, 1989) <립스틱 그리고 남자의 사랑> (Lipstick and A Man’s Love (Ripseutik geurigo namjaui sarang), 한국,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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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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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응호 Ko Ung-ho 高應虎 (1941~ ) 한국의 영화감독. 고응호는 1941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고호라는 예명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는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고시준비를 하던 도중 영화계로 입문했다. 좀 더 다양한 삶을 보고 사회를 폭넓게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최인현 감독의 영화를 통해서 충무로에 첫 발을 들였다. 고응호는 최인현 감독의 <이상의 날개>(1968). <부각하>(1969), <극동의 무적자>(1970), <명동잔혹사>(1972) 등 10여편의 작품에서 조감독으로 활동했다. 그 외에도 약 150여편의 영화에서 연출부나 조감독으로 참여하면서 연출수업을 받았다. 그는 조감독으로 있으면서 많은 역사영화를 만들었는데, 그것은 이후 그의 영화 연출에 큰 도움이 되었다. 고응호의 감독 데뷔작은 <날으는 일지매>(1978)였다. 영화는 조선 말엽을 배경으로 최부자집의 가보인 금불상을 둘러싸고 그것을 약탈하려는 청의 도적떼들과 왜구들, 그리고 그를 보호하려는 백운도사와 그의 제자인 일지매의 결투를 그린 활극이었다. 그러나 1985년 TV로 방영될 때에도 “허무맹랑한 소재”로 만든 영화라고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날으는 일지매>의 반응은 그리 좋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 이후 고응호는 1980년에 《주간경향》에서 연재되던 강철수의 만화 「팔불출」을 영화화하였고, 다음해인 1981년에 <팔불출>의 속편인 <풍운아 팔불출>을 연이어 연출했다. 그는 <팔불출>의 시나리오 작가로 원작 만화가인 강철수를 기용하면서 만화를 그대로 영상화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팔불출>(1980>은 머슴살이를 하던 팔불출과 주인에게 순결을 빼앗긴 맹순이 집을 나와 떠돌며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었고, <풍운아 팔불출>(1981)은 부동산업자인 ‘팔자수염’의 조수노릇을 하며 서민들을 도와주는 팔불출이 여러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깨달음을 가르쳐주는 일들을 보여주었다. <팔불출>시리즈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고, 고응호는 영화감독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고응호는 도시에서 자란 진호와 시골 출신인 용팔이의 우정을 그린 <사랑이 꽃피는 나무>(1981), 쿵푸의 고수 수향과 택견 전수자인 한웅의 결혼생활을 담은 <소림신방>(1982)를 발표했다. 이후 그는 1982년에 시행된 통행금지 해제에 따라 인기를 끌게 된 심야극장 상영을 노리고 <꿀맛>을 기획, 연출했다. 그는 대부분의 젊은 연인들이 심야데이트를 하기 위해 극장으로 찾는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그들의 기호에 맞춘 영화를 기획한 것이었다. 이희우가 극본을 맡은 <꿀맛>은 세 명의 여고동창생이 함께 운영하는 테니스클럽을 노리고 그녀들을 유혹하는 한 남자와 동창생들의 관계를 코믹하면서도 에로틱하게 그려냈다. <꿀맛> 이후로 심야개봉을 노린 에로티시즘코미디 영화들이 양산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관객을 모우기 위해 너무 에로티시즘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지만, 고응호는 그에 대해 연출력을 통해 작품의 수준을 지킬 수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작은 논란이 있었지만 <꿀맛>은 5만명 이상의 관객을 기록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83년에 고응호가 연출한 작품은 <불새의 늪>이었다. <불새의 늪>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외딴섬에서 무당인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봉은은 산신이 내려 결혼할 수 없는 몸이다. 그 섬에 화가인 서종훈이 찾아와 봉은에게 그림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부탁한다. 그러나 봉은이 누드모델을 했다는 소문이 돌게 되고, 그 소식을 들은 마을청년 동천이 도망가던 그녀를 쫓다가 실족사하게 된다. 며칠 후 마을사람들이 종훈에게 액땜을 하려 하고, 이를 말리던 봉은이 미쳐서 스스로 불길 속에 몸을 던진다는 이야기였다. 고응호는 전통적 무속 세계와 근대적 가치의 충돌을 영화에 그려내며 자신의 열정을 쏟았지만 흥행에 실패했다. 그러나 <불새의 늪>은 인도영화제 본선에 진출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고응호는 영화연출을 계속해나갔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공동연출을 하기도 했다. 고응호는 오가준 감독과 함께 <양귀비>(1985)를, 이작남 감독과는 <밤을 먹고 사는 여인>, <불춤>(1985)를 공동으로 연출했다. 그가 연출했던 <화랭이>(1985)까지 네 편 모두 성인멜로영화였고, 흥행에는 실패했다. 이후에도 그는 액션영화 <뜨거운 겨울>(1986), 청춘영화 <바람의 아들>(1987), 무협 사극 <난운>(1987), 멜로드라마 <못 먹어도 고>(1989) 등 영화연출을 이어갔다. 고응호는 1980년대에 주로 활동했던 영화감독이다. 그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데 능했고, 때로는 해학적으로 때로는 진지한 태도로 서민들을 자신의 영화에 담아냈다. 그러나 80년대는 1970년대의 불황이 계속되던 시기였고, 고응호는 그 속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해야만 했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며 영화계의 어두웠던 한 시기를 이겨내고자 노력했던 감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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