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세계 영화인 인명사전 상세보기
김형구
영화인명 김형구
권역명 영화기술
직능(직업) 촬영감독
국적 대한민국
작품 목록 <닥터봉> (Doctor Bong (Dagteo(Doctor) Bong), 한국, 1995, 촬영)
<진짜 사나이> (The Real Man(Jinjja sana-i), 한국, 1996, 촬영)
<박봉곤 가출사건> (The adventure of Mrs. Park (Bak Bonggon gachulsageon), 한국, 1996, 촬영)
<비트> (Beat, 한국, 1997, 촬영)
<태양은 없다> (City of the Rising Sun (Tae-yang-eun eobda), 한국, 1998, 촬영)
<이재수의 난> (The Uprising (I Jaesu-ui nan), 한국, 1998, 촬영)
<아름다운 시절> (Spring in my Hometown (Aleummda-un sijeol), 한국, 1998, 촬영)
<박하사탕> (A Peppermint Candy (Bak-ha-sa-tang), 한국, 1999, 촬영)
<무사> (The Warriors, 한국, 2000, 촬영)
<인터뷰> (Interview (Inteobyu(Interview)), 한국, 2000, 촬영)
<봄날은 간다> (One Fine Spring Day, 한국, 2001, 촬영)
<투게더> (Together, 한국, 2002, 촬영)
<영어완전정복> (Please Teach Me English (Yeong-eo Wanjeon Jeongbok), 한국, 2003, 촬영)
<살인의 추억> (Memories of Murder (Salin-ui Chueok), 한국, 2003, 촬영)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Woman Is the Future of Man (Yeoja-neun Namja-ui Mirae-da), 한국, 2004, 촬영)
<역도산(力道山)> (Rikidozan: a Hero extraordinary (Yeokdosan), 한국, 2004, 촬영)
<극장전> (Tale of Cinema (Geuk-jang-jeon), 한국, 2005, 촬영)
<괴물> (The Host (Goe-mool), 한국, 2006, 촬영)
<해변의 여인> (Woman on the Beach (Haebyeon-ui Yeo-in), 한국, 2006, 촬영)
<폭력써클> (Gangster High (Pok-ryeok Sseo-keul), 한국, 2006, 촬영팀)
<행복> (Happiness (Haeng-bok) , 한국, 2007, 촬영)
<비밀애> (Secret Love (Bimilae), 한국, 2009, 촬영)
<북촌방향> (The Day He Arrives (Bukchonbanghyang), 한국, 2011, 촬영)
<마스터 클래스의 산책> (A Journey with Korean Masters (Maseuteo Keullaeseuui Sanchaek), 한국, 2011, 촬영)
<부러진 화살> (Unbowed (Bureojin Hwasal), 한국, 2011, 촬영)
<주리> (Jury (Ju-ri), 한국, 2012, 단편, 촬영)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Nobody’s Daughter Haewon (Nuguui Ttal-do Anin Haewon), 한국, 2012, 촬영)
<더 파이브> (The Five (Deo Fa-i-veu), 한국, 2012, 촬영)
소개 김형구 Kim Hyung-koo 金炯求 (1960 ~ )
한국의 촬영감독. 김형구는 1960년에 출생했으며 사진을 좋아하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중앙대학교 사진학과에 입학했다. 그는 대학시절 영화동아리인 ‘영화마당 우리’에서 활동하면서 영화에 대한 매력을 느꼈다. 이후 1987년에 한국영화아카데미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영화촬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아카데미를 수료한 뒤 유영길 촬영 감독 밑에서 박광수 감독의 <칠수와 만수>(1988), 장선우 감독의 <성공시대>(1988), 이명세 감독의 <개그맨>(1989)에 참여하며 충무로에 첫발을 들였다. 그러나 이후의 영화작업에서 중도하차되는 등의 일을 겪어야 했다. 김형구는 결국 충무로의 촬영시스템을 거부하고 1990년 미국 AFI(American Film Institute)로 유학을 떠났다. 김형구는 미국에서 충무로의 도제시스템이 아닌 DP 시스템(촬영감독의 지휘 아래 카메라와 조명이 구성되는 방식)을 배웠고, 이는 이후 그의 영화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김형구는 미국에서 영화공부를 마치고 다시 한국의 영화현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이광훈 감독의 <닥터 봉>(1995)을 통해 촬영감독으로 데뷔했다. 당시에는 촬영감독협회 인준 없이 촬영감독이 될 수 없었는데, <닥터봉> 촬영 당시 촬영감독협회가 도제 시스템을 거치지 않은 김형구의 입봉을 거부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김형구는 <닥터 봉>의 촬영을 완수했고,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덕분에 그는 충무로에서 촬영 감독으로 인정을 받았고 계속해서 영화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김형구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이름을 알릴 수 있었던 것은 김성수 감독과의 작업을 통해서였다. 김형구는 유학생활을 마친 뒤 김성수 감독의 단편영화 <비명도시>(1993)를 촬영하면서 그와 인연을 맺었다. 그들은 이후 4년만에 다시 만나 김성수 감독의 <비트>(1997)를 완성해냈다. <비트>는 당시 인기작이었던 허영만의 동명만화를 영화화한 것으로, 김형구는 만화의 그림들을 스크린에 훌륭하게 옮겨담았다. 영화는 화려한 영상들로 실감나는 액션씬을 보여주었고, 평단과 대중들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김형구는 <비트>에서 방황하는 청춘들의 모습을 스텝 프린팅이라는 기법을 통해 표현해냈다. 스텝 프린팅이란 저속 촬영을 이용하여 액션 장면에서 모션 블러를 만들어 동작의 잔상들이 이어지게 하는 방식으로, 특히 중국의 왕가위 감독이 자주 쓰는 기법이었다. 국내에서는 김형구가 거의 최초로 스텝 프린팅 기법을 영화에 차용해 일종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그는 이후에도 김성수 감독의 <태양은 없다>(1999)와 <무사>(2001)에 참여해서 다양한 촬영기법들을 시도했다. 삼류복서인 ‘도철’과 깡패인 ‘홍기’의 과절과 희망, 그리고 그들의 우정을 담은 <태양은 없다>에서 김형구는 저속촬영으로 인물들의 느린 움직임을 강조했다. 이 기법은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두 청춘의 모습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무사>는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한 고려 무사들의 여정을 담은 작품으로, 중국대륙 10,000km를 횡단하며 영화를 촬영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무사>에서는 개각도 촬영을 시도하기도 했다. 김형구는 <비트>로 제17회 영평상 촬영상을, <태양은 없다>로 제22회 황금촬영상 동상, <무사>를 통해 제25회 황금촬영상 금상과 제22회 청룡영화상 촬영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가장 주목받는 신예 촬영감독으로 부상했다.
김형구는 빠르고 화려한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영상을 담아내는 것에도 능숙했다. 그가 사진학과 출신으로 영상 뿐만 아니라 스크린에 담길 ‘그림’을 구성하는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1998)이나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 허진호 감독의 <봄날은 간다>(2001)가 이를 증명해 준다. <아름다운 시절>은 한국전쟁 직후의 고통과 아픔을 그린 영화로, 자연광을 사용해 사실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장면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김형구는 동시에 극단적인 롱테이크와 롱쇼트를 사용해 민족의 아픔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주었다. 이창동 감독과 작업했던 <박하사탕>은 ‘김영호’의 삶을 통해서 고통스러웠던 80년대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이 영화에서 그는 고정된 쇼트에 리듬감을 더해서 관객들이 카메라를 인식하지 못하고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김형구는 이 영화로 촬영상을 수상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봄날은 간다>는 겨울에 시작해 봄에 끝나버리는 두 남녀의 사랑을 담은 영화였다. 그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흐릿한 배경을 이용해 공허한 공간감을 부여해 멀어지는 연인의 모습과 이별을 감내해야 하는 남자의 비애감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영화평론가 김소희는 <봄날은 간다>에서 그의 카메라를 두고 “새로운 스펙타클의 창조”라고 상찬했다.
그가 다시 한 번 뜨거운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촬영하면서였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영화화한 이 작품에서, 김형구는 ‘흐린 날에만 비오는 장면을 찍어야 한다’는 봉준호 감독의 원칙을 지킬 정도로 열심히 촬영에 임했다. 그는 당시 시대적 상황을 표현하기 위해 블리치 바이패스 기법(필름 현상 시 필름에 은 입자를 남기는 수법)을 사용해서 색채감을 최대한 자제했다. 그리고 이 기법으로 인해 콘트라스트가 부각되는 것을 막기 위해 듀프 네거티브(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을 반전한 마스터 포지티브를 다시 네거티브로 바꾼 것)를 따로 만들어 은입자 농도를 조절할 수 있게 했다. 이 촬영 방식은 이후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홍성남 평론가는 <살인의 추억>을 두고 암울했던 1980년대의 공기를 시각적으로 포착해냈다는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김형구는 <살인의 추억>을 통해서 청룡영화상과 춘사영화상, 대한민국 영화대상에서 촬영상을 수상했다.
2006년 발표된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서도 김형구는 자신이 가진 촬영기법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같은 한강의 모습과 대낮에 등장하는 괴물의 충격적인 질주, 괴물을 쫓는 가족들을 따르는 카메라의 힘찬 움직임들이 모두 김형구의 촬영기법에서부터 만들어졌다. 그의 촬영기법은 영화의 특수효과와 잘 어울어졌으며, 미국의 특수효과팀조차도 놀아워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다. 그는 <괴물>을 통해서 제5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촬영상, 제1회 아시아 영화상 촬영상을 수상했다.
김형구는 2004년부터 홍상수 감독과도 함께 호흡을 맞추었다. 홍상수 감독의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2004), <극장전>(2005), <해변의 여인>(2006), <북촌방향>(2011),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이 김형구가 작업한 영화였다. 그는 자연광을 쓰는 홍상구 감독의 특성에 맞추어서 영화를 촬영했다. 홍상수 영화에서의 그의 카메라는, 스크린 안에 영화적 공간의 풍경 뿐만 아니라 그곳의 공기와 분위기를 모두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의찬 평론가는 연출자와 호흡을 맞출 줄 아는 촬영감독이라고 평가했다. 그와 오래 작업해왔던 김성수 감독은 김형구를 두고 내면에 굉장한 에너지와 모험심이 있고, 카메라 테크닉을 응용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난 촬영감독이라고 말했다. 김형구는 단순히 카메라의 촬영 기법만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조명과 함께 스크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조성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드라마에 대한 훌륭한 이해를 토대로 촬영하는 감독으로도 유명하다. 그래서 그는 감독이 원하는 영상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함께 작업하는 감독들에게 영감을 주는 훌륭한 파트너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2000년대의 굵직한 작품들 대부분이 김형구의 카메라에서 완성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김형구는 지금의 충무로를 지탱하고 있는 가장 힘있는 촬영감독 중 한 명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