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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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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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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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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역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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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권(북한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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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능(직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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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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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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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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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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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 침대〉(The Ginko Bed, 한국, 1996) 〈지상만가〉(Lament, 한국, 1997, 각본) 〈쉬리〉(Swiri, 한국, 1999) 〈단적비연수〉(The Legend of Gingko, 한국, 2000, 제작) 〈베사메무쵸〉(Kiss me Much, 한국, 2001, 제작, 기획)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 한국, 2002, 제작) 〈블루〉(Blue, 한국, 2003, 각본) 〈태극기 휘날리며〉(Taegukgi, 한국, 2004) 〈마이웨이〉(My Way, 한국, 2011) 〈미스터 고 3D〉(Mr. go, 한국, 2013, 제작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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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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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규 GANG Je-gyu 姜帝圭 (1962~ ) 한국의 영화감독. 강제규는 1962년 경상남도 마산에서 출생하였고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졸업하였다. 1984년 충무로에서 활동을 시작했고, 1990년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의 시나리오 작업에 참여했으며, 1991년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의 시나리오로 백상 예술대상 각본상과 한국시나리오 대상을 수상하였다. 이후에도 그는 1994년 〈장미의 나날〉과 1994년 〈게임의 법칙〉의 시나리오를 집필하기도 했다. 강제규의 감독 데뷔작은 1996년 발표된 〈은행나무 침대〉였다. 이 작품은 천년의 시공간을 잇는 사랑 이야기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암시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 주목되는 것은 SF기술이었는데, 한국 영화로서는 드물게 어색하지 않은 SF기술을 선보이면서, 후속작의 가능성을 밝힌 바 있다. 〈은행나무침대〉는 당시 관객 동원 전국 150만 명으로 그 해 흥행 1위를 기록했고, 강제규는 많은 영화제에서 신인 감독상(대종상과 춘사영화상 각본상)을 수상하며 감독으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은행나무침대〉에 이어 강제규의 명성과 위상을 높인 작품은 1998년 개봉한 〈쉬리〉였다. 이 작품은 전작보다 한층 강화된 영화 스케일과 영상미로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효시로 평가되기도 한다.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못한 남남북녀의 사랑과 한국 분단의 역사적 아픔을 호소한 작품으로, 한국 관객들에게 분단과 역사의 응어리를 전한 작품으로 호평을 받았다. 또한 〈쉬리〉는 영화 제작 상의 관행과 시스템을 바꾼 영화로 볼 수 있다. 당시 〈쉬리〉는 약 31억 원의 당시로서는 엄청난 제작비와 2년에 걸친 시나리오 작업, 엑스트라 포함 3천여 명의 인원이 동원되면서 제작 기간 동안 관심을 받았던 작품이었다. 비록 대자본이 영화와 결합하면서 완성될 수 있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지만, 새로운 영화 제작 방식을 선보이고 미래 한국 영화의 성공 가능성을 암시하는 전범이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강제규는 ‘강제규 필름’을 설립하여, 여러 편의 영화를 기획․제작하였다. 2000년 그는 기획․제작자로 변신하여 〈은행나무침대〉의 속편 격인 〈단적비연수〉를 제작하였고, 2001년 〈베사메무쵸〉(기획)와 2002년 〈오버 더 레인보우〉(제작) 등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시기 강제규는 한국 영화의 제작․기획․배급 시스템에 관심으로 가지고, 새로운 스타일의 시스템을 도입․개편하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했다. 그가 다시 감독으로 주목을 받은 작품은 〈태극기 휘날리며〉(2004)였다. 이 작품을 통해 강제규는 한국형 블록버스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영화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다. 그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을 겨냥하는 블록버스터를 만들고자 했고, 이러한 그의 노력은 제작비 147억원의 전쟁영화를 창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영화는 6.25 전쟁이라는 한국의 역사적 비극을 바탕으로, 형제애의 소중함과 뜨거움을 강조하는 서사 구조를 지닌 작품이었다. 특히 이 영화는 1000만 이상의 유효 관객을 확보하면서 한국 영화의 경쟁력과 시장 구조가 상당하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증명한 사례이기도 했다. 2004년 미국에서 〈Brotherhood〉라는 제목으로 개봉하여 소개된 바 있으며,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 부문 후보작으로도 출품되었다. 한국영화계에서는 촬영상과 기술상, 미술상, 심사위원특별상, 신인남우상 등을 수상하면서 연이은 흥행을 기록한 영화이며 동시에 우수한 대작으로 인식되고 있다. 강제규의 〈쉬리〉와 〈태극기 휘날리며〉는 작품 제작과 제작 시스템 그리고 관객 동원의 측면에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후 강제규는 2011년 12월 300억원의 제작비를 투여한 〈마이웨이〉를 발표하면서 한국근현대사의 비극적 상황을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으나, 과거의 성과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강제규는 한국 최고의 흥행 감독 중 하나로, 한국형 블록버스터인 〈쉬리〉(1998)를 연출하면서 대중들에게 깊이 각인된 감독이었다. 한국에서도 할리우드 스타일의 대담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당시로서는 큰 이슈에 가까웠고, 영화를 보지 않았던 중장년층에게도 영화를 가까이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597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쉬리〉는 ‘한국이기에 가능하고 한국만이 가진 유일한 역사적 소재’를 참신하게 풀어냈기에 한국 관객들은 진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으며, 〈태극기 휘날리며〉에 다시 역사적 상황과 분단의 아픔이 투영되면서 한국형 블록버스트의 전형을 창출하는 사례를 남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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