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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춘천·원주지역 고등학교 경쟁입시 부활정책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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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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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등 개요와 원인 이 사례는 1990년 강원도교육청이 춘천·원주지역 고교입시평준화제도를 폐지하고 고교경쟁입시정책을 추진하자 이 지역 사립고등학교 학생·학부모·교사들이 반대한 갈등이다. 1979년과 1980년에 고교입시평준화정책이 시행된 춘천과 원주는 이후 10년 동안 대입성적이 나빠지면서 지역 내 면학분위기가 해이해지고, 중학생 학력마저 낮아지는 위기상황을 맞고 있었다. 강원도는 고교입시평준화가 역점을 두고 있는 향토인재 육성시책에 걸림돌이라는 판단아래 고교입시평준화를 깨기로 결정하고 1989년 7월 5일 청와대 지역균형발전기획단 주관 간담회를 강원도청 상황실로 유치, 장시간에 걸쳐 고교입시평준화 폐지를 토론했다. 1990년 2월 28일 고교입시평준화 폐지를 반대하던 제10대 교육감의 정년퇴임에 이어 3월 2일 제11대 김병두 교육감이 취임했다. 그러나 노골적으로 반대하던 교육감이 물러나고 고교입시평준화 폐지 쪽으로 분위기가 가닥이 잡히면서 일부 학교의 가두시위가 극렬해지기 시작했다. 지역안정을 걱정하는 어느 기관장은 지역대책회의(도단위 주요기관장 회의)소집을 강하게 요구했고 또 다른 기관장은 ‘평준화 해제 1년 유보’를 요구했다. 1990년 8월 초 문교부는 고교 평준화제도개선책을 발표하면서 춘천·원주·천안·이리 이들 4개 도시를 고교평준화제도 적용지역에서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을 교육감에게 위임했다. 이 같은 발표가 나온 이후 춘천에서는 학부모와 고교생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고교입시부활반대’를 외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1990년 8월 31일 강원고·유봉고·성수고 어머니회원 200여 명이 강원도교육위원회 앞마당에 몰려가 농성을 벌였고 1990년 9월 4일에는 이 3개 사립고교 학생 4천여 명이 오전 10시 경부터 9시간여 동안 도로점거 등 시위를 벌였다. 강원도교육위원회가 1990년 9월 21일 고교경쟁입시 부활계획을 확정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자 춘천시내 3개 사립고교 1·2학년생들은 이날 일제히 등교를 거부했다. 그러나 강원도 교육위원회는 이러한 격렬한 반대시위와 농성속에서도 예정된 수순을 밟는 듯 1990년 9월 21일 교육위원회는 본회의장에서 ‘해제신청’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당일 문교부에 전달했다. 이어 1990년 9월 24일 문교부가 평준화 해제를 확정함으로써 1992학년도부터 춘천과 원주 지역 모든 고등학교의 경쟁입시가 부활됐다. 2) 주요쟁점과 이해당사자 의견 이 갈등의 주요쟁점은 고등학교 경쟁입시 부활정책에 대한 갈등이다. 주요 이해당사자는 문교부 및 강원도교육청과 춘천·원주지역 사립고교 학생·학부모·교사들이다. 문교부는 평준화제도가 시행 17년 동안 여러 가지 교육적 성과를 거두었으나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며 평준화제도 하에서는 학교 내 학생 간의 학력격차가 심해져 수업능률이 떨어져 우수학생들의 학업성취욕이 약화되고 학습부진학생들도 학습결손이 누적됐다고 밝혔다. 또한 우수한 학생들에게 평준화라는 뚜껑을 덮어 눌러 학업성취의욕을 떨어뜨리는 학력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왔다고 말했다. 강원도교육청은 고교평준화제도 시행 이후 학력이 하향 평준화돼 지역 여론을 수렴한 교육발전위원회의 건의에 따라 고교평준화제도의 해제를 결정한 후 문교부에 보고해 춘천·원주지역의 경쟁입시가 부활된 것이라며 철회 불가능방침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사립고교 학부모와 동문·재학생들은 학생들과 주민여론 수렴을 위해 만들어진 교육발전위원회 위원 대부분이 강원교육청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교육계 인사들로 구성됐고 교육발전위원회가 실시한 설문조사도 대상자와 설문내용이 한쪽으로 치우쳐 주민들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집단시위를 벌였다. 또한 이들은 강원도교육청과 교육발전위원회가 인재양성을 고교경쟁입시 부활 이유로 들고 있으나 실제로는 과거 이 지역 공립지방명문고교 출신 인사들이 좁은 지역사회에서 학연을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계속 유지할 목적으로 경쟁입시 부활을 건의·결정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와 함께 고교경쟁입시가 부활되면 망국적인 과외열풍이 중학교까지 확산돼 학부모들의 경제적 부담의 증가는 물론 학생들도 입시지옥에 빠져들게 된다며 경쟁입시 철폐를 주장했다. 또 평준화 이후 사립고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경쟁입시가 부활될 경우 2·3류 고교출신자로 격하되는 불이익을 당해서도 안된다며 경쟁입시 부활정책 철회를 요구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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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경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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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부는 1990년 8월 11일 춘천과 원주를 고교입시평준화 해제 후보지역으로 지정, 통보했다. 이에 강원도교육청은 공청회와 여론조사 등의 시행을 주관할 민간주도의 교육발전위원회의 구성에 착수해 15명 안팎의 위원회를 구성했다. 1990년 8월 21일 1차 회의에서는 여론조사 등 세부 추진방안을 협의했고, 9월 3일 2차 회의에서는 주제발표 및 찬반토론을 벌였다. 한편 문교부가 춘천·원주지역 고교입시를 1991학년도부터 부활키로 했다고 알려지자 이들 지역 학생과 학부모들의 고교평준화해제반대운동이 확산됐다. 한국사학법인연합회 강원도회(회장 장윤)는 1990년 8월 27일 고교평준화해제 반대성명을 발표했고 춘천시 강원고등학교 학생 1,200여명과 강원중학교 학생 900여 명은 1990년 8월 30일 고교입시부활을 반대하는 붉은색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자율학습을 거부한 채 이날 오후 6시 모두 하교했다. 춘천시내 강원·유봉·성수고등학교 등 3개 고등학교 어머니회 소속 학부모 250여 명은 1990년 8월 31일 오후 2시반 경 강원도교육위원회에 몰려가 ‘강원 교육후퇴 시킬 입시부활 절대반대’등의 플랫카드와 피켓 10여 개를 들고 교육감 면담을 요청하다 2시간여 만에 해산했다. 또 원주시내 진광·내성·삼육·상지고등학교 등 4개 사립 중고교 교사 300여 명도 이날 오후 5시 원주시교육청에 몰려가 ‘특권층 제조하는 입시부활 철폐하라’는 플랫카드를 들고 문교부가 벌써 춘천·원주지역 고교입시를 부활키로 결정해 놓고 여론수렴을 한다며 공청회 개최 등 눈속임행사를 벌이고 있다며 문교부장관의 해명을 요구하다 1시간 만에 돌아갔다. 춘천시 강원·유봉·성수고등학교 등 3개 사립고등학교 1·2학년생 대부분이 1990년 9월 21일 오전부터 고교경쟁입시부활에 반대해 무기한 등교거부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들 중 10% 정도는 등교했고 3학년생들은 모두 정상등교 했다. 이에 앞서 이들 3개 고등학교학생 3,500여 명은 1990년 9월 20일 오전 10시부터 중앙로와 강원도교육위원회 청사 앞 도로를 점거해 고교경쟁입시부활 반대농성을 벌이다 전면 등교거부를 결의한 후 저녁 8시 반경 해산했다. 춘천시내 3개 사립고등학교 1·2학년생들이 고교 경쟁입시 부활에 반대하며 등교를 거부하고 있는 가운데 강원도교육위원회는 1990년 9월 21일 강원도교육위원회 회의실에서 교육위원회의를 열고 1992학년도부터 춘천·원주지역에서 고교경쟁입시제도를 시행하기로 결정했다. 강원도교육위원회(의장 이상용 강원도지사)는 이날 전체 교육위원 7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회의에서 학생들의 능력과 적성에 따라 학교선택권을 주어야 한다며 1992학년도부터 춘천·원주지역에서 고교 경쟁입시를 부활할 것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당일 문교부에 전달했다. 이어 강원도교육위원회는 1990년 9월 24일 문교부장관의 최종승인을 받아 춘천·원주지역의 고교경쟁입시제도를 1992학년부터 시행키로 확정했다. 한편 1991년 10월 강원도 원주에서는 고교평준화해제를 둘러싼 시비가 뒤늦게 재연됐다. 진광고·상지여고 등 원주지역 3개 사립고교생 1,500여명은 1991년 10월 12일 오후 1시 원주시내 남부시장 앞 인도에서 고교입시부활철폐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어 진광고등학교 1·2학년 학생 600여 명은 고교입시부활철폐를 요구하며 1991년 10월 14일 오전 10시25분 시작되는 2교시부터 수업을 거부, 교실에서 농성을 벌였다. 학생들은 1992년부터 춘천시와 함께 실시하기로 결정된 고교경쟁입시 부활에 대해 원주시민들의 여론을 다시 수렴해 평준화 해제 여부를 다시 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강원도교육청 관계자는 1992년도 춘천·원주지역 평준화해제 문제는 해당 지역 조례 개정 등 법률적 마무리까지 끝난 상태인데 뒤늦게 동문회나 사립고교 교직원들이 다시 문제를 제기,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 같다며 이는 재고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강원도 원주지역 사립 고교생들의 경쟁입시부활반대시위가 수그러들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학부모와 동문들까지 경쟁입시정책을 철회할 때까지 싸우겠다고 결의하고 나서는 등 파문이 커졌다. 그러나 강원도교육청은 이미 법으로 확정된 정책을 바꿀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맞섰고 1991년 12월 강원도 춘천·원주지역에서는 1992학년도 고교입시가 치러져 고교경쟁입시가 부활됐다. 진행경과 | | 1990. 8. 11. | 문교부, 춘천·원주, 고교입시평준화 해제 후보지역 지정·통보 | 1990. 8. 21. | 교육발전위원회 1차회의, 여론조사 등 세부추진방안 협의 | 1990. 8. 27. | 한국사학법인연합회 강원도회, 고교경쟁입시 부활 반대성명 발표 | 1990. 8. 30 | 춘천시 강원중고교학생, 고교경쟁입시부활 반대 붉은 리본 부착 및 자율학습거부 | 1990. 8. 31. | 강원·유봉·성수고교 어머니회, 고교경쟁입시 부활 반대 시위 | 1990. 8. 31. | 원주시내 4개 사립중고교 교사, 고교경쟁입시 부활반대 및 문교부장관해명 요구 | 1990. 9. 2. | 교육발전위원회 2차회의, 주제발표 및 찬반토론 | 1990. 9. 21. | 춘천시 3개 사립고교생, 무기한 수업거부 돌입 | 1990. 9. 21. | 교육발전위원회, 1992학년도 고교경쟁입시제도 시행 만장일치 통과 | 1990. 9. 24. | 문교부장관, 춘천·원주 1992학년도 고교경쟁입시제도 시행 최종 승인 | 1991. 10. 12. | 원주시 3개 사립고교생, 고교입시부활철폐 요구 시위 | 1991. 10. 14. | 진광고 1·2년생, 고교입시부활철폐 요구 수업거부 및 교실농성 | 1991. 12. | 강원도교육청, 1992학년도 고교경쟁입학시험 실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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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기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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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08-01 ~ 1991-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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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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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민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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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당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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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부 및 강원도교육청, 춘천·원주지역 사립고교 학생·학부모·교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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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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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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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기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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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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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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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갈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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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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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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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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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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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용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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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발전위원회, 고교평준화제도, 고교경쟁입시제도, 한국사학법인연합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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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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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라이브러리, http://newslibrary.naver.com(검색일: 2013년 9월 10일) 연합뉴스, http://yonhapnews.naver.com(검색일: 2013년 9월 10일) 강원도민일보, http://www.kado.net(검색일: 2013년 9월 10일) 경향신문, 1990년 8월 31일자, 15면 동아일보, 1990년 9월 1일자, 18면 동아일보, 1990년 9월 21일자, 15면 한겨레신문, 1990년 9월 22일자, 14면 한겨레신문, 1990년 9월 25일자, 14면 동아일보, 1990년 10월 9일자, 15면 한겨레신문, 1991년 11월 1일자, 13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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