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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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등 개요와 원인 도산서원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1574년(선조 7)에 지어진 서원으로 경북 안동시 도산면(陶山面) 토계리(土溪里)에 위치해 있다. 약 6백종에 4천점이 넘는 장서와 장판(장판) 및 퇴계의 유품과 교전당과 신위를 봉안한 상덕사 및 정문과 주위 흙담이 국보로 지정돼 있었다. 그러나 1968년 1월에 안동댐 건설계획이 발표된 이후 도산서원 일대가 수몰위기에 처하자, 유림(儒林)들은 건설계획을 변경해 줄 것을 요구하며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 1968년 11월에는 전국 유림대표들이 청와대를 항의방문하고, 건설부를 방문하여 도산서원 유적보호를 주장하면서 건설계획을 변경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건설부는 도산서원 전체가 수몰되는 것이 아니지만, 도산서원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였다. 1969년 1월에 정부는 도산서원 일대 6,000여평을 사적 제169호로 지정하고, 성역화작업을 했다. 도산서원 앞에 둑을 쌓아 수몰되지 않도록 조치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되었다.
2) 주요 쟁점과 이해당사자 의견
도산서원과 유림들은 안동댐 건설로 도산서원이 수몰위기에 처하자 건설계획을 변경하는 조치를 취해 이곳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건설부는 댐건설로 도산서원이 수몰되는 것이 아니며, 수몰지역에서 충분히 이격되어 있으므로 도산서원을 성역화하여 보존 및 보호대책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퇴계선생 후선들은 안동댐건설로 사적 70호 도산서원의 입구지역이 수몰선에 들어가 서원팡 통로가 끊기고 풍치를 망치게 됐다고 주장하여 서원입구에 제방을 쌓아 보호해주도록 안동군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에 안동군은 축제공사를 하려면 많은 예산이 들기 때문에 경상북도와 상의해 보겠다고 밝혔다. 또한 수자원개발공사 안동댐현장 사무소측은 수위를 조절할 수 있으나 홍수기의 최고 수위면 열정밑까지 물이 찰 것이라고 말했다. |
진행경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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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안동댐 건설계획이 발표되자 도산서원은 수몰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전국의 유림들은 도산서원을 보호하기 위해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 1968년 11월 19일에는 도산서원의 대표를 비롯하여 전국유림대표 20여명은 건설부를 방문하여 안동댐 건설로 도산서원이 수몰위기에 처해 있다고 항의하면서 건설계획을 변경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들은 당초 안동댐 건설계획에는 수몰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변경된 계획에는 이곳이 수몰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도산서원을 보호하기 위해서 건설계획을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건설부는 계획 중인 댐의 위치로부터 도산서원이 약 40㎞상류에 있으며, 댐이 준공될 경우 만수위로부터 약 50m의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있어 수몰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또한 홍수시에도 수위가 하상(河上)에서 약 20m나 산 중턱에 위치하여 전혀 수몰될 위험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전국 유림들의 서명운동과 진정이 관계기관이 접수되자 문교부는 1969년 1월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임야 및 전답 19필 324.945㎡를 사적 170호로 지정하고 성역화작업에 착수하였다. 박정희대통령의 특별지시로 시작한 성역화작업은 ① 전교당(보물 210호)과 퇴계선생의 신위를 모셔둔 상덕사(보물 211호) 및 정문주위를 흙담을 비롯한 11동의 건축물을 중건하고 ② 6,000여평의 대지에 녹지대를 형성하여 환경을 미화하고 ③ 안동댐의 건설로 물에 잠기지 않도록 둑을 쌓는 것이었다(경향신문, 1969/1/11). 이에 따라 1969년 9월 23일에는 총예산 약 9,600만원(문공부 6,242만원과 경북도 3,000만원)으로 착공하였다. 유물전시관과 각문 등 4동을 신축하고 도산서당, 한존재, 고직사 등 18동과 상덕사와 서재 등 9동을 해체 또는 부분보수하고 주요 건물 30동을 단청하는 보수를 시작하였다. 또한 1969년 10월 6일에는 도산서원정화사업 기공식이 열렸다. 10월 14일에는 박정희대통령과 문공부장관, 상공부장관 등이 방문하여 분향하고 주민들과 대화하면서 안동댐건설로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1970년 7월 21일에는 문화재관리국의 설득에 의하여 문화재관리위원회는 보물 제211호인 상덕사 토병의 지정해제를 허용하고, 8월 5일에는 문화재관리국이 지정해제를 결정하는 등 보수공사 하는 동안 일부 문화재위원이 사퇴하는 등 논란을 빚었다. 1970년 12월 8일에는 도산서원보수정화 준공식이 박정희대통령과 문공부장관 등 관계기관장이 참석한 가운데 도산서원 경내에서 열렸다. 그러나 1972년 5월 30일에 퇴계후손들이 도산서원 앞 열정(迾井)과 입구지역이 수몰되어 미관을 망치게 되었다며 서원입구에 제방을 쌓아달라고 진정하면서 다시 갈등이 시작되었다. 이에 한국수자원개발공사는 도산서원 입구와 진입로 일부가 수몰됨에 따라 진입로를 이설하기 위해 도산서원보호 및 진입로 이설자문위원회를 개최하였다. 이 위원회에서는 도산서원의 보존 및 주변조경의 설계, 시공방침과 진입도로의 노선 결정 등을 심의하였다. 1975년 3월 21일에는 안동군이 신청한 도산서원보호구역내 진입로를 개설하도록 허가를 문화재위원회가 결정하였고, 4월 15일에 착공하여 5월 7일에 완공하였다. 진행경과 | | 1962 1966 1968. 1. 1968. 11. 18. 1968. 11. 19. 1969. 1. 1969. 9. 23. 1969. 10. 6. 1969. 10. 14. 1970. 7. 21. 1970. 12. 8. 1971. 4. 1. 1972. 5. 30. 1972. 11. 10. 1973. 3. 17. | 경제개발5개년계획에 안동다목적댐 건설 포함 안동댐 기초조사 및 타당성조사 실시 안동댐 건설계획 발표 전국 유림대표, 청와대 방문 전국유림대표 20여명, 건설부 항의 방문 도산서원 성역화 계획 착수 도산서원 정화사업 착공 도산서원 정화사업 기공식 대통령, 내무부장관, 문공부, 상공부장관 방문 문화재위원회, 상덕사 토병 보물지정 해제 도산서원보수정화 기공식(대통령 참석) 안동댐 착공 퇴계후손 도산서원 제방보호 진정 안동댐 담수 지작 도산서원 보호 및 진입로 이설자문위원회 개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