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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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등 개요와 원인 본 사건은 YH사건, 혹은 YH무역여공 농성사건이라 불린다. YH무역 여성근로자들이 회사폐업조치에 항의하며 당시에 야당이었던 신민당사에서 농성시위를 벌인 사건이다. 1979년 8월 9일부터 11일까지 총 4일간에 걸친 농성이었으며, 그 기간은 짧지만 후에 당시 신민당총재였던 김영삼의원 제명 파동, 부마민중항쟁, 10․26사태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된다. 또한 본 사건은 최초 무역업체인 YH라는 회사와 근로자들 간의 갈등에서 불거졌으나, 뒤이어 야당인 신민당, 그리고 정부까지 얽히는 등 복잡한 갈등체계로 변화하게 된다. 시위진압 도중에 22살의 여성노동자인 김경숙이 사망하였으며, 다수의 신문기자들과 국회의원이 경찰진압과정에서 폭행을 당하였다. 신민당의 도움에 이어 기독교학생청년회 등 종교단체와 시인 고은과 같은 문인의 지지를 얻었다. 정부는 최초 YH무역사건에 미온적 자세로 대응하였으나, 농성이 일어나자 공권력을 투입하여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어 냈다.
2) 주요 쟁점과 이해당사자 의견
YH무역은 원래는 작은 가발업체에 불과하였다. 1966년 자본금 100만원과 종업원 10명으로 시작하였으나, 가발경기의 호조와 정부의 수출지원책에 힘입어 1970년대 초에는 종업원이 최대 4,000여명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성장하게 된다. 회장이자 창립자였던 장용호는 이러한 성장에 힘입어 미국에서 백화점사업체를 설립하여 외화를 빼돌렸다. 또한 은행(구 조흥은행)빚을 얻어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다. 그러나 1978년 제2차 석유파동 이후 가발산업이 후퇴하고, 수출이 감소하면서 회사재정이 어려워지자 노동자를 500여명으로 줄이는 악수를 두게 되었다. 결국 이듬해인 1979년 4월 폐업을 선언하게 된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6일 2차 폐업을 공고하였다. 1975년 이 회사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는데, 이후 위장휴업, 공장이전에 대한 노사협의 및 인원감소 때 충원 등의 약속받았다. 그러나 1979년 8월 6일 부채와 적자 운영,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 등을 이유로 회사가 일방적으로 폐업을 공고한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러한 회사의 결정에 반발하여 폐업철회와 임금청산, 고용승계를 위한 농성을 시작하였다. 한편 회사 측과 주거래은행인 구 조흥은행, 관계기관에 회사 정상화를 호소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오히려 회사가 기숙사 및 식당까지 폐쇄하는 사태에 이르자 노동자들은 이를 신민당에 호소하였다. 그리고 8월 9일 200여명의 노동자가 신민당당사에서 농성을 시작하였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은행관리기업 인수와 회장 장용호의 소환, 기업 정상화 및 생계대책 강구 등을 요구하며 농성을 하였다. 그러나 8월 11일 새벽 2시에 1,000여명의 경찰이 신민당사에 난입하여 노동자들을 강제 연행하였고, 취재기자 및 신민당소속 국회의원 및 당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노조집행위원장이었던 김경숙은 이때 사망하였고, 172명의 여성근로자와 신민당 당원 26명이 강제로 연행되었다. 신민당은 김경숙의 사망(추락사)이 강제해산 도중 발생하였다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그것과 무관하다고 발표하였다. 본 사건의 의미는 노동자들과 회사 간의 갈등이 정치권과 공권력, 그리고 종교단체 등으로 확대되었다는 점, 그리고 이 사건을 계기로 김영삼 신민당총재가 의원직을 박탈당하고, 부마민주화운동, 10․26사태로까지 이어지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것이다. 비록 4일 간의 농성과 관련자 전원 구속이라는 결과로 사건은 종결되었지만 그 후폭풍은 장시간 지속되었으며, 이로 인해 파생된 다양한 논란과 사건들은 반유신투쟁에 대한 계기가 되었다. |
진행경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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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자본금 100만원과 종업원 10명으로 설립된 소규모 가발 업체인 YH무역은 1970년대 초 대기업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1978년 제2차 석유파동 이후 회사운영의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1979년 4월 폐업을 선언하고 같은 해 8월 6일 2차 폐업을 공고하였다. 1975년에 이 회사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회사 측과 위장휴업과 공장이전에 대한 노사협의 및 인원감소 때의 충원 등을 약속받았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회사가 폐업을 공고하자 1979년 8월 9일 YH무역 노동자 200여명은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이기 시작하였고, 1979년 8월 11일 새벽 2시 경찰의 진압작전으로 농성은 끝이 났다.
진행경과 | | 1966. 1975. 1978. 1979. 4. 1979. 8. 6. 1979. 8. 9. 1979. 8. 11. | 자본금 100만원, 종업원 10명으로 YH무역 설립 YH무역 노동자들, 노동조합 결성 YH무역, 무리한 사업 확장, 외화 빼돌리기, 제2차 석유파동 등의 악재로 회사운영이 어려워지자 노동자들을 500여명으로 감축 YH무역, 폐업 선언 YH무역, 2차 폐업 공고 YH무역 노동자들, 신민당사에서 폐업철회농성 시작 경찰, 새벽 2시에 진압작전으로 농성 진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