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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탈 국보지정 보존 갈등
갈등개요

1) 갈등 개요와 원인

본 갈등은 1980년 4월 11일 국립박물관에 보관된 하회가면 ‘주지탈’ 2개가 새로이 국보로 추가지정된 후 개인이 국보의 지정 및 보존에 문제가 있다고 밝히며 불거진 사례이다. 하회탈을 국보로 지정하고 보존하는데 문제가 있으며, 소나무로 만든 탈 5개가 분실되었고, 명명(命名)과정에서도 용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지탈이 국보로 지정된 데에는 민속춤 연구가 윤석운씨의 노력에 의한 결과였는데, 그는 문화재관리국의 처사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2) 주요 쟁점과 이해당사자 의견

윤씨는 하회탈과 함께 국보로 지정됐던 병산탈 등 5개의 탈이 조사과정과 그 이후 보관과정에서 분실되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5개의 송제(松製)탈을 1961년에 하회동 인근의 병산동 서원에서 찾아냈는데, 이 가면 5개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이었다. 윤씨는 이에 대해 진정을 냈고, 문화재관리국은 그 5개 중 2개는 국보 제121호의 ‘갑(甲)’ ‘을(乙)’로 지정하고 나머지 소나무로 만든 가면은 하회동사무소에 보관 중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하회동장은 자신이 1978년 4월부터 근무해 온 이후 병산탈이 동사무소에 보관 또는 인수된 일이 없으며, 그 동네 고령자들도 본 일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 국보로 지정됐다고 문화재관리국이 밝힌 갑, 을 2개의 가면은 오리나무로 만든 것으로 윤씨가 발견 당시 병산탈 5개가 모두 소나무 제품이라고 밝히면서 결국 5개 모두가 분실된 상태라고 주장한 것이다.
또한 이 마을주민은 1924년에 5개의 탈을 가지고 공연된 탈춤을 보았다고 중언하였으며, 효부동의 탈 3개를 가지고 실제 공연했다고 증언하고 있어 문화재관리국이 주장하는 5개의 탈은 각기 다른 부락에서 사용하던 별개 종류의 것을 혼합한 것이라고 윤씨는 밝혔다. 그는 또한 하회동의 별신놀이 기능보유자 등과 노인들은 ‘탈’ 혹은 ‘가면’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대감덕달’ ‘광대덕달’ ‘초랭이 덕달’ 등 ‘덕달’이란 명칭을 사용하고 있음을 들며, 명명(命名)과정에서 타지방의 것과 혼동해 ‘가면’이란 용어를 붙인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국보로 지정된 ‘갑’, ‘을’도 현지에서 부르는 이름이 있는데도 ‘갑’과 ‘을’로 호칭되는 것은 현지답사가 미비했던 결과였다고 주장하였다. 국보로 지정된 하회탈은 하회별신놀이의 전통을 간직한 하회동에서 보관해야 한다고 윤씨는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문화재관리국은 “하회탈 및 병산탈은 중요한 지정문화재이므로 원형보존을 위해 국립박물관에 보관토록 했다”는 입장이나 윤씨는 지방사찰 혹은 사당 등에 국보가 보관되고 있음을 보면 하회탈이야 말로 현지주민의 책임아래 보관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진행경과

본 갈등은 1980년 4월 11일 국립박물관에 보관된 하회가면 ‘주지탈’ 2개가 새로이 국보로 추가지정된 후 개인이 국보의 지정 및 보존에 문제가 있다고 밝히며 불거진 사례이다. 하회탈을 국보로 지정하고 보존하는데 문제가 있으며, 소나무로 만든 탈 5개가 분실되었고, 명명(命名)과정에서도 용어를 잘못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공부 문화재관리국은 하회탈 및 병산탈 11개에 지정된 국보 제121호로 국립박물관에 보관된 하회가면 ‘주지탈’ 2개를 추가 지정했다. 주지탈은 탈의 형상이 사람의 얼굴모양이 아니고 손에 끼워서 사용되고 있다는 이유로 그간 국보로 지정되지 않았었다.

이러한 주지탈이 국보로 지정된 데에는 민속춤 연구가 윤석운씨의 노력에 의한 결과였는데, 그는 문화재관리국의 처사가 잘못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진행경과


1980. 4. 11

1980. 4.

정부, 국립박물관에 보관된 하회가면 주지탈 2개를 국보로 추가 지정

윤석운씨(현대민속무용학원장), 문화재관리국의 문화재관리 허점을 지적하며 진정

발생기간 1980-04-01 ~ 1980-04-01
주체 정부-민간
이해당사자 문화재관리국, 문화계전문가(개인)
지역 경북
행정기능 문화체육관광
성격 가치갈등
해결여부 미해결
정권 최규하
주요용어 하회탈, 병산탈, 덕달, 문화재 지정, 주지탈
참고문헌 경향신문 1980. 4. 12. 7면 경향신문 1980. 4. 15. 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