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정책 갈등사례 DB 구축
과학관 건립계획 갈등
갈등개요

1) 갈등 개요와 원인


문문교부 당국은 6‧25동란에 파괴된 ‘국립과학관’을 새로이 건립하고자 1958년 서울시내 남산 마루턱에 버려진 ‘옛터’에 1,800만환의 예산으로 현안인 ‘국립과학관’ 건립을 위한 정지공사를 착수할 예정이었다. 그동안 ‘국립과학관’은 관계관들의 계획성과 노력 부족 및 의원관계 담당자들의 이해부족으로 번번이 실패하였다. 그러나 다시 추진하기로 계획된 공사와 관련하여 3층 350평의 부속건물은 다음 해인 1959년 중에 3,000만환의 예산으로 건립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문교당국에서 1959년도와 1960년도에 각 3만 달러씩을 원조해 줄 것을 ICA당국에 요청하였고, 필요한 자재는 확보되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사업계획 예정지인 대지의 소유권을 상실하게 되었고, 국립과학관 대지의 일부를 일개 국회의원에게 대여함으로써 과학관 건립이 어렵게 되었다. 이 때문에 과학관 건립계획이 무산되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2) 주요 쟁점과 이해당사자 의견


문교부 당국은 6·25동란에 파괴된 남산소재 ‘국립과학관’을 복구하지 못한 채 수년간 허허벌판으로 내버려 두었던 과학관 대지 2,800평 중 일부가 ‘중앙교육연구소’와 외국어강습소 청사로 제공되고, 그 나머지는 건설이 계획되어 있는 TV방송국 건축대지로 전용하도록 확정되어 과학교육의 중심이 될 ‘국립과학관’ 건립계획이 다시 허공에 뜨고 말았다.
문교당국은 수년전부터 동란에 파괴된 ‘국립과학관’을 재건할 목적으로 정부예산에서 소요예산을 어렵게 마련해 보기도 하였고, 또 ICA의 자금을 얻기 위해 몇 차례나 시도하였으나 관계관들의 계획성이나 노력의 부족, 그리고 의원관계 담당자들의 이해부족으로 번번이 실패하였다. 그 와중에 문교부가 남산에 있는 과학관 대지 2,900평 중 60여 평을 정부기관도 아닌 국회의원 개인에게 대여해 줘 개인건물을 건축할 빌미를 줌으로써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이에 대해 문교부장관은 주차장으로 사용하겠다고 하는 조건으로 대여했던 것이므로 대여조건을 위배한 주택건축 공사는 즉시 중지시키겠다고 말하였다. 이렇듯 말썽 많은 ‘국립과학관’은 대지정리비로 계정된 1,800만환의 예산마저 소멸될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진행경과

문교당국은 과학관 건립추진을 위하여 1959년 ICA자금을 요청한 바 있었으나 관철되지 못하였고, 1959년도와 1960년도에 각각 3만 달러씩을 원조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1958년 12월 8일 대지확보 및 건립계획에 착수하였으나, 대지소유권 문제 등과 관련하여 1959년 설립이 중단되었다. 문교당국은 오랫동안 물색 중이었던 과학관 건립대지를 창경원식물원 옆으로 정하고, 1960년 9월 드디어 착공하게 되었다. 이 과학관은 3,366평에 달하는 대지에 연건평 5,600평의 현대식 7층 건물로 설계되었는데, 건축비 및 시설비를 20억환으로 계산하였고 이듬해에 1억환을 책정하는 등 연차적 계획을 갖추었다.


진행경과


1958. 6. 21.

1958. 12. 8.

1959. 5. 2.

1959. 10. 23.

1960. 9. 2.

문교부, 과학관 건립 위한 ICA 3만 달러 원조 요청-거절당함

국립과학관, 대지 확보 및 건립계획 착수

과학관 건축 위한 대지소유권 상실, 과학관 설립 중단

문교부, 개인 국회의원에게 과학관 대지 60평 대여

과학관 건립대지를 창경원식물원 옆으로 이전, 착공

발생기간 1958-12-01 ~ 1960-09-01
주체 정부-정부
이해당사자 정부, 문교부
지역 서울
행정기능 일반공공행정
성격 이익갈등
해결여부 해결
정권 이승만
주요용어 국립과학관, 창경원식물원, 남산, ICA
참고문헌 동아일보 1958. 6. 21. 3면 동아일보 1958. 12. 8. 2면 동아일보 1959. 4. 16. 3면 동아일보 1959. 5. 2. 3면 동아일보 1959. 10. 23. 3면 동아일보 1959. 11. 23. 3면 경향신문 1960. 9. 2.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