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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동광초등학교 나환자아동 수용과 관련된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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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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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등 개요와 원인 본 사례는 1958년 4월 대전 동광초등학교는 1학년 신입생 중 12명의 나병환자 자녀들을 입학시켰는데, 학부형들은 나병의 전염을 두려워하며 그들과 한 교실에서 공부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500여명의 아동을 수업도중 귀가시키면서 발생한 갈등이다. 이들은 나병환자자녀들과의 공동수업을 반대하며 등교거부까지 감행하여 학교 측에서는 이에 대한 수습책으로 환자 자녀들의 등교를 중지시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학교 측이 이후에 등교를 중지시켰던 나병환자 자제들을 다시 등교시키자, 이에 반발한 200명의 학부형들이 대전시교육구청에 모여들어 농성시위를 하였다. 이후 등교하는 학생들을 노상에서 귀가시키던 ‘자모회’ 회원과 대전경찰서 신안동파출소의 순경 간 충돌이 발생하면서 사건은 확대되었다. 이후 이러한 미감아(未感兒) 학부형인 나병환자 수용소 ‘애경원’의 160명의 나병환자들이 일반 학부형들의 반발에 대항할 움직임을 보이기도 하였다. 2) 주요 쟁점과 이해당사자 의견 본 사건은 당시 나병환자에 대한 전반적 사회인식을 보여 준 사례로 당시 초등학교 학생 중에 나병환자가 있어 이러한 학생들과 같이 공부할 수 없다고 해서 일어난 것이다. 실제 이들은 조사해 본 결과 미감아(未感兒)들로서 절대로 병을 전염시킬 우려성이 없었음에도 일반 학부형들은 학생들의 등교거부까지 감행시켰었다. 이에 당시 나병환자 수용기관인 애경원에서 생활하던 미감아들의 학부형들과 환자들도 일반학부형들에 대해 대항할 기세를 보이며 애경원 내 수용인원이 동요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일반학부형 집을 찾아다니며 행패를 부려 경찰관까지 출동하였으며, 일반 학부형은 자기 집에서 피신해 외박까지 하게 되었다. 사건 초기 시교육구청은 도당국의 지시로 양방의 귀추만 살펴보고 있었다. 이후 장기간의 휴교 및 출동사태로 사회문제화 되면서 당국으로부터 미감아들을 분리 교육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부모가 나병환자라는 이유로 자신들은 병에 감염되지 않은 미감아이면서도 학교당국으로부터 당분간 휴학형식의 조치를 받았던 18명에 대한 등교문제는 해결되지 못하였다. 그런데도 도 당국에서는 이들의 등교문제는 현재 중앙당국에 문의 중이므로 중앙당국으로부터의 해답이 있기 전에는 속수무책이라는 입장만 밝혔었다. 문교당국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 “보건사회부에서 그 아동을 타지방학교로 전·입학시키기로 되었으므로 해결된 줄 알았는데 아직도 해결이 안 되었다면 보건사회부에서 곧 해결하여 줄 것으로 안다”고 말하였다. 한편 보건사회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그들 미감아동들에 대한 특별조치를 취하도록 문교부와 타협이 되어있었는데 아직까지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문교부가 할 일”이라는 입장으로 관계 당국은 서로 책임미루기 만을 했을 뿐 미감아들의 등교문제는 해결되지 못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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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경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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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4월 초 대전 동광초등학교에 나병환자 자녀가 신입생으로 입학하면서 일반학생 학부형들이 나병환자 자녀와의 격리수업을 요청하였으나 학교 측과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1958년 4월 11일 일반학생 학부형 100여명이 전학을 희망하였다. 5월 26일에는 일반학생 학부형 200여 명이 교육구청 앞에서 시위를 행하였으며, 5월 27일에는 자모회회원이 등교하는 학생들을 노상에서 귀가조치 시켰다. 5월 28일 휴교상태에 도입 50여 일 간 휴교 폐쇄되었다. 문교부에 의하면 동광초등학교에서 벌어진 맹휴(盟休)사건은 보건사회부, 내무부, 문교부 등 관계당국의 조정으로 해결을 보아 6월 20일 일제히 등교하였다고 한다. 미감아동 20명 중 당년도 1958년 신입생만 타교로 분산 수용하고 1953년도부터 재학 중인 학생은 종전과 같이 동교에서 수업을 계속 받도록 해결을 본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동아일보의 1958년 12월 10일자 기사에 따르면, 12월 9일까지도 학교당국으로부터 당분간 휴학형식의 조치를 받았던 미감아들의 등교문제는 해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진행경과 | | 1958. 4. 9. 1958. 4. 10. 1958. 4. 11. 1958. 5. 26. 1958. 5. 27. 1958. 5. 28. 1958. 6. 20. 1958. 8. 30. 1958. 12. 9. | 동광초등학교 학부형들, 나병환자 자녀와의 격리수업 요청 동광초등학교, 나병환자 자녀에 대해 일시 등교중지 조치 일반학부형 100여명, 전학희망. 나병환자 자녀 수용기관인 애경원, 이사회 개최. 학교 측, 나병환자자녀 등교 결정 200여 일반 학부모, 교육구청 시위 등교생들 귀가시키던 자모회 학부형과 저지하던 파출소 순경간 충돌로 자모회 200명 파출소앞 소동 일반학부모 등교거부로 휴교 상태 : 애경원 수용중인 학부형 및 환자 600여명 동요 50여 일간 휴교 후 당국은 분리수용 결정 전교생 등교 분리수용 반대 나병환자 자녀(未感兒) 등교문제 해결보지 못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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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기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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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04-01 ~ 1958-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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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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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민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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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당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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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부, 일반학부모, 애경원(나병환자자제 수용시설)학부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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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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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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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기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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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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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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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갈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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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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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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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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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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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용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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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병환자, 애육원, 미감아, 나환아, 동광초등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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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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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58. 4. 9 경향신문 1958. 4. 15 경향신문 1958. 5. 29 경향신문 1958. 6. 2 경향신문 1958. 6. 23 경향신문 1958. 7. 12 경향신문 1958. 7. 16 경향신문 1958. 9. 4 동아일보 1958. 12. 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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