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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 상과대학 광주이전을 둘러싼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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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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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등 개요와 원인 본 사례는 1954년 도립광주의과대학ㆍ도립광주농과대학ㆍ도립목포상과대학ㆍ대성대학 등 4개 단과대학을 모체로 발족한 전남대학이 목포상과대학을 광주로 이전시키겠다고 밝히자 이에 목포 시민들이 반발하면서 생긴 갈등이다. 1950년 5월 3일 문교부는 서울공업을 비롯한 각 시·도의 실업계 고급중학교 6개교를 당해 년도에 개편할 공립초급대학으로 내정한 바 있었다. 전주명륜대학과 송도약학대학 및 목포상과대학 등 3개교가 해당되었으며 이들 대학은 초급대학으로 가인가(假認可)되어 학생모집을 개시하였다. 당시 당국의 인가는 교육법시행령과 대학설립기준령이 공포되지 않았기에 가인가형식을 취하여 우선 학생모집만을 승인하였다. 곧이어 5월 9일 문교부로부터 목포상과대학 설치에 대한 정식인가가 내려졌다. 이에 목포공립상과대학은 상업학과, 경제학과, 무역학과에 각 5명씩의 인원을 모집하게 되었다. 국립전남대학교는 1951년 10월에 설립되어 1952년 6월에 개교하였다. 1951년 9월 당시 박철수 전라남도지사를 기성회장으로 한 국립전남대학교 건립기성회가 결성되어 이듬해에 기존의 도립광주의과대학ㆍ도립광주농과대학ㆍ도립목포상과대학ㆍ대성대학 등 4개 단과대학을 모체로 발족하였다. 초대총장에 최상채(崔相彩)가 취임하였으며, 의과대학ㆍ농과대학ㆍ상과대학ㆍ문리과대학ㆍ공과대학 등 5개 단과대학과 대학원으로 편성하였다. 1953년 3월에는 제1회 졸업생 48명을 배출하였다. 1954년 전남대 상과대학은 원조물자를 배정받아 연구실 및 강당 신축을 위한 본격적인 공사를 추진하였다. 그러던 중에 전남대학은 교수진에 대한 생활보장 및 학생들의 등록금 감액 등을 이유로 상과대학의 광주이전 입장을 밝혔다. 1958년 상과대학이 위치한 목포시민들은 전남대학 측의 처사에 대하여 이전반대투쟁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시민궐기대회를 여는 등 이전반대에 온힘을 기울였다. 상과대학을 광주로 이전하려는 전남대학교 측과 이를 반대하는 목포주민들 간의 갈등은 2년여 이상 진행되었다. 2) 주요 쟁점과 이해당사자 의견 당시 새로 제정된 교육법 실시에 따라 문교부에서는 실업과 인문을 합한 15개의 교내외 공·사립초급대학을 발족시키고자 목포상대, 광주농대, 동덕여대, 덕성여대, 전주명륜대학, 송도약대 등 6개교와 병행하여 일반대학교 중 10개교에 대하여도 새로 초급학부를 병설하여 학생모집인원을 정식으로 결정하였다. 이로써 목포상과대학이 국립목포상과대학으로 발족되었고, 국립대학교인 전남대학교가 목포상과대학 등을 모체로 발족되어 광주에 설립되면서 전남대학교 측이 본원에 상과대학을 유치할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전남대학교 측은 목포에 있는 상과대학을 광주로 이전하려는 이유로 첫째, 교수진에 대한 생활을 보장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둘째, 학생들의 등록금을 감액할 수 있다는 것을 들면서 이전계획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목포주민들은 전남대학교 측과 타협하지 못한 채 이전반대투쟁위원회를 결성하고 시위데모를 진행하였다. 이러한 갈등이 2년여 동안 진행되면서 국회본회의에서는 목포상과대학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육상황시찰에 나섰으며, 당국에서는 목포상과대학에 대하여 “당분간 현지에 머물도록” 지시하였다. 그러나 문교부는 차후 목포상과대학을 광주로 이전할 계획임을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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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경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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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부는 1950년 5월 3일 새로 개편할 공립초급대학으로 목포공립상과대학을 지목하고 가인가를 내리고 신입생을 모집했다. 그리고 5월 9일 목포상과대학 설치문제를 정식으로 인가하였다. 1952년 1월 국립전남대학교가 발족되었으며, 1954년 7월 상과대학의 연구실 및 강당 신축공사를 추진했다. 그러던 와중에 1958년 전남대학교 측은 상과대학을 광주로 이전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목포주민들은 전남대학측의 처사에 대하여 이전반대투쟁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시민궐기대회를 여는 등 이전반대를 위한 투쟁을 했지만 전남대학은 상과대학 이전을 강행하였다. 이 문제는 결국 국회에도 논의사항으로 상정되어 1959년 5월 27일 정중섭의원 외 10인은 목포상과대학을 광주로 불법 이전한 전말을 듣기 위해 문교부장관의 국회출석동의안을 제출하였다. 1959년 6월 10일 국회본회의에서는 문교위원회의 유청, 윤택중, 홍병각, 민장식, 김경돈의원 등의 광주·목포·여수 등지의 출장을 승인하고, 이들은 17일부터 7일간 현지에 출장하여 목포상과대학 문제를 비롯한 교육상황도 아울러 시찰했다. 그 결과 문교부 당국에서는 목포상과대학에 대하여 당분간 현지에 머물고 있도록 지시하였으나, 목포상과대학은 결국 광주로 이전하였다.
진행경과 | | 1950. 5. 1. 1950. 5. 9. 1954. 7. 16. 1958. 4. 30. 1959. 5. 26. 1959. 6. 10. 1960. 6. 16. | 문교부, 개편 공립초급대학 설치에 목포상과대학 가인가 문교부, 목포상과대학 정식인가 상과대학 연구실 및 강당 신축 전남대, 상과대학 광주로 이전계획. 목포주민들 반대 국회본회의에 목포상과대학 관련논의사항 대두. 문교부장관 국회출석 요구 국회본회의에서 문교위원회 의원들의 출장 허가 문교부, 목포상과대학 이전 중단조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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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기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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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04-01 ~ 1960-06-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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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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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민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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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당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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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부, 목포시, 전남대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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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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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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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기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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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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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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핌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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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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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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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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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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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용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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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상과대학, 전남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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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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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50. 5. 3. 2면 경향신문 1950. 5. 9. 2면 동아일보 1950. 5. 11. 2면 경향신문 1950. 7. 16. 2면 경향신문 1958. 4. 30. 3면 동아일보 1959. 5. 27. 1면 동아일보 1960. 6. 10. 1면 경향신문 1960. 6. 16. 3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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