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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미아리공동묘지 이전 갈등
갈등개요

1) 갈등 개요와 원인


본 사례는 서울시 성북구에 자리 잡고 있는 미아리공동묘지를 도시계획에 따른 미관상 또는 공중위생상 철거되어야 한다는 시의 정책에 반발하여 묘주 및 이장대상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고, 예산충당의 문제 또한 발생하여 생긴 갈등이다.
서울시 성북구의 미아리공동묘지에는 약 8만위(位)를 헤아리는 묘들이 빼곡히 들어차있었으며, 묘지부근까지 인가가 날로 늘고 있어 도시계획에 따른 미관상 또는 공중위생상 철거되지 않으면 안 될 형편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철거에 있어 가장 난점으로 예상되었던 것이 이장후보지 선정문제와 묘주 및 이장지 주민들의 반대였다. 소요예산과 관련해서도 별도로 예산이 계상되어 있지 않아 예산충당의 문제 또한 발생하였다.


2) 주요 쟁점과 이해당사자 의견


공동묘지 이장 후보지문제와 관련해서는 서울에서 1년에 8,0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실정이었는데, 시에서는 이를 매장할 후보지로서 망우리묘지 옆의 30만 평 규모의 귀속임야를 공동묘지로 사용할 복안을 갖고 있었다. 우선 미아리묘지 중 낮은 지대의 3만여 위를 옮길 후보지로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을 지목하였으며, 그 밖에도 신림, 시흥군 신사, 서대문구 남가좌동, 홍은동 등 묘지에도 다소 분산이장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다.
소요예산문제와 관련해서는 3만 위를 이전하려면 인건비, 발굴비, 매장수송비 및 새로운 이장지에 대한 도로신설 등의 막대한 경비가 소요될 것으로 추정되었으나, 별도의 예산이 계상되지는 않았지만 약 2억여환의 예비비로 충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묘주 및 주민의 반대와 관련해서는 묘를 옮기는 문제는 연고자의 유무를 막론하고 우리나라 고유의 조상숭배 관념으로 보아 여론이 비등할 것이며, 특히 연고자들은 이를 맹렬히 반대하고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또 이장하게 되더라도 대부분 소요경비를 부담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며, 특히 새로이 이장될 후보지역의 주민들의 맹렬한 반대와 진정소동을 일으킬 것을 관계 당국에서 미리 보고 진행시켜 나갔다. 이에 묘주들은 강제 이장을 피하기 위해 미리 이장시켜 나갔다.
 

진행경과

미아리공동묘지의 철거문제는 오래전부터 관계당국에 의해 비밀리에 추진되어 왔는데, 1957년 9월 27일 박승목시의원의 건의안 제안을 계기로 의회측에서도 집행부계획을 적극 뒷받침하면서 진행되었다. 동년 12월에 이전후보지로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반포리에 위치한 용지를 선정하면서 옮겨지는 단계에 이르렀다. 1958년 6월 5일 연고자들에 대한 이장공고일이 종료되면서 3만위의 무덤을 집단이장하였다. 7월을 기점으로 이장하지 않은 분묘가 13,000위였으며, 1958년 11월 16일에 이장계획의 마지막 공사로서 발굴이장작업이 개시되면서 근 30년의 역사를 가진 미아리공동묘지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진행경과


1957. 9. 27.

1957. 12.

1957. 12. 6.

1958. 6. 5.

1958. 11. 16.

박승목시의원, 미아리공동묘지 이전건의안 제안

서울시, 이전후보지로 광주군 언주면 반포리 선정

서울시, 분묘자 연고자들에 이장 공고

서울시, 6개월간의 이장공고기간 종료 및 집단이장 강행

서울시, 이장계획 마지막 공사로서 무연고 묘의 발굴이장 개시

발생기간 1957-09-01 ~ 1958-11-01
주체 정부-민간
이해당사자 서울시, 묘주, 주민
지역 서울
행정기능 지역개발
성격 이익갈등
해결여부 해결
정권 이승만
주요용어 묘지이전, 미아리 공동묘지, 무연고자분
참고문헌 경향신문 1957. 9. 28. 경향신문 1958. 4. 8. 경향신문 1958. 6. 1. 경향신문 1958. 7. 8. 동아일보 1958. 1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