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갈등 개요와 원인
1897년 철도가 개통된 이래로 80년이 지난 1970년대 중반에는 철도시설과 운영 등 전반에 걸쳐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하게 되었다. 철도 시설의 노후와 안전무방비 상태로 철도건널목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여 이에 대한 안전대책이 절실하게 요구되었다. 철도건널목사고는 1965년 95건(사망 14명, 부상 126명), 1971년에 171건 발생(사망 62명, 부상 129명)하였다. 1965년에서 1971년 사이 발생건수는 71%로, 사망자는 4배 증가하였다. 이외에도 전복, 충돌, 탈선 등으로 빚어지는 철도사고까지 합치면 철도관련 인명피해는 한 해에 수백 명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었다. 건널목 중에서 사고가 잦은 곳은 차단기가 없는 4종 건널목으로 전체 사고의 42%를 차지하고 있다. 다음으로 차단기와 간수가 배치되어 있는 1종 건널목이 28.7%, 2종 건널목이 19.7% 등 모두 6,070여 곳에 이르고 있으며, 사고 발생이 상대적으로 적은 입체화된 교차로는 겨우 3.7%(228개)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철도건널목은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정부는 건널목 개량촉진법을 마련하였다. 기존철도 위로 도로를 새로 낼 경우 지방자치단체 또는 도로를 건설한 기관이, 도로 위로 철로를 개설할 경우는 철도청이 각각 입체교차로를 만들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관계기관이 적극적인 협조를 하지 않아 실효를 거두지 못하였다. 철도청은 예산 등의 이유로 수백 개소의 위험건널목을 그대로 방치하여, 해마다 원시적인 사고가 되풀이 되고 있었다. 또한 철도건널목 통과차량이나 사람들의 부주의도 사고의 원인이 되고 있어 갈등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2) 주요 쟁점과 이해당사자 의견
수학여행 길의 중학생, 통학 길의 국민학생 등 철도건널목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자, 피해자 측은 사고가 난 지점에 지도교사나 지도학생을 수시로 배치하여 어린이들을 열차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에 철도청에 여러 차례 차단기 설치를 건의했으나 묵살 당했다. 이에 대해 철도청은 사고가 난 지점에 1972년 말 벽을 쌓고 주민의 통행을 금지시켰으나, 주민들이 이를 헐어버리고 계속 건널목으로 이용해 왔다고 주민 쪽에 책임을 돌렸다. 그러나 철도청의 해명은 첫째, 통행이 빈번한 건널목에 일방적으로 벽을 쌓아 교통의 자유를 방해하였고, 둘째, 하루에 수천 명의 어린이가 이 건널목을 건너 등․하교해 왔음에도 학교당국이 상시 철저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었다. 한편 서울민사지법합의17부 이완희부장판사는 철도건널목에서 자동경보기가 울렸더라도 차단기가 내려오지 않았다면 국가가 사고에 대한 손해 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시,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용두리의 홍씨 등 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 판결공판에서 국가는 홍씨 등에게 모두 79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승소판결을 내린 바 있다. 홍씨 등은 1972년 9월 27일 수원역 남쪽에 있는 경부선 남양가도 건널목에서 자동경보기가 울렸지만, 차단기가 내려오지 않아 트럭이 그대로 건널목을 건너다 사고가 났다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었다. 또한 서울민사지법합의7부 신정철부장판사는 철도건널목에 간수를 배치하고 감시소를 설치해야 할 지점에 이를 설치하지 않아 교통사고가 났을 경우, 이에 대한 보상은 철도시설물 소유 및 관리자인 국가의 잘못이므로 국가는 피해를 보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 국가는 원고들에게 1,047만원의 손해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453 새마을아파트로 들어가는 길목에 설치된 철도건널목은 각종 사고의 사각지대였다. 하루 평균 20,000여명의 통행인이 오가는 건널목에는 자동경보기만 설치돼 있고, 간수와 차단기가 없어 사고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다. 자동경보기마저도 잦은 열차 통행으로 하루 종일 경보가 울려 제 구실을 못해 주민들이 피해가 크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철도국에 여러 차례 차단기를 설치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예산이 없다는 핑계로 번번이 거부당했다. 이에 주민들은 1973년 5월부터 자체 경비에 나섰다. 가구당 70원씩을 거둬 건널목 입구에 초소막을 짓고, 주민에게 월 7,000원씩을 지급하여 매일 오전 6시부터 오후 11시 반까지 건널목을 지켰다. 이 같은 자체경비 동안에는 단 1건의 열차사고도 없었다고 주민들은 주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