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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부두노조간 작업권 분쟁
갈등개요

1) 갈등 개요와 원인

 
본 사례는 1954년 6월 3일 조선운수 측의 기업주가 바뀌면서 제3부두노조에 부당한 노동행위를 자행해 제3부두노조와 조선운수노조간의 작업권 쟁탈분쟁에 관한 갈등이다.
노사갈등은 이념갈등과 맥을 같이 하면서도 현실적으로 부의 분배문제에 직접 연결되는 차원으로서 계급적 성격을 뚜렷이 갖고 있다. 개발주도형국가체제 아래에서 성장위주의 경제정책과 독재적 정치체제로 인해 노조활동이 철저히 봉쇄당했기 때문에 노사갈등은 초기에 간헐적으로 표출되다가 6·29이후 억제되었던 욕구가 폭발적으로 분출되어 급진적인 노사 간 갈등의 진통을 경험하게 된다. 이때까지 한국사회의 노동조건은 열악하고 저임금수준에서 노동3권 역시 보장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결과적으로 노사갈등은 분출되자마자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폭력적으로 발전하기도 하였다.
노사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은 경제성장에 따른 부의 축적과 이에 대한 재분배에 관한 갈등이지만, 기저에는 사측의 권위적인 태도와 사고가 지배적으로 작용하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자를 인간으로 보기보다는 효율적 생산성을 위한 하나의 기계적요소로 보는 테일러이즘적인 경영철학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독립한 지 20년도 채 되지 않은 정부의 무능함도 노사갈등의 심각성에 영향을 주었다.
본 갈등은 1954년 7월 12일 소집된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사회부가 돌연 조선운수노조 해체를 건의함으로써 심화되었다. 사회부 당국의 이와 같은 건의는 결국 조선운수 측에서 미취업중인 제3부두 노조간부를 무조건 취업시키라는 지시를 회의직전까지도 이행하지 않았을 뿐 더러 조선운수노총, 자유노련 3자간에 서명된 협정에 대해서도 아무런 보고가 없어 결국 종결되었다.
 
2) 주요 쟁점과 이해당사자 의견
 
본 사례의 부산 제3부두노조와 기업주인 조선운수와의 분쟁에 대하여 사회부 고위층의 견해는 정책상으로 해결하자는 데 있었다. 즉 기업주가 변경되어도 노동조합의 근로기득권은 인정되며, 이와 같은 예는 선진국의 관례에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조선운수노조를 인정하게 되면 앞으로도 노동조합운동에 혼란을 가져온다는 점 등에 비추어 제3부두노조를 법조문대로 해석하여 해결하자는 견해를 고집하였다. 이는 조정을 담당한 사회부 내에 있어서 국장과 과장간의 대립된 견해로써 분쟁해결을 지연시켰다.
 
진행경과

1954년 6월 3일 발생한 부산 제3부두노조와 기업주인 조선운수와의 분쟁은 급기야 1954 년 7월 2일에는 난투극으로까지 진행되었다. 노총최고위원의 내부조정으로 갈등은 일시 진정되었으나, 7월 12일 작업교체 시 노무자출입에 따른 사고방지를 위해 조선운수노조가 감찰대원 12명을 제3부두 입구에 세우자 제3부두노조 측이 이들의 철수를 요구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또 다시 양 노조간 폭력사건이 발생되어 조선운수노조 위원장이 부상을 입게 되었다. 

이에 분쟁해결을 위해 1954년 8월 5일 사회부가 문제처리를 중앙노동위원회에 회부할 것임을 밝히는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일단락되는 듯 하였으나, 실제 사회부의 의견이 반영되지는 못하였다. 

 

진행경과


1954. 6. 3.

1954. 7. 2.

1954. 7. 12.

1954. 8. 5.

부산 제3부두 노조와 조선운수 간 분쟁

부산 제3부두 노조와 조선운수 간 난투극 발생

양측 감찰대원 간 구타 발생

사회부 당국 견해 발표

발생기간 1954-06-01 ~ 1954-12-01
주체 정부-민간
이해당사자 사회부, 부산 부두노조
지역 부산
행정기능 사회복지
성격 사무권한
해결여부 해결
정권 이승만
주요용어 노조갈등, 부산 부두노조 작업권, 제3부두노조, 조선운수노조
참고문헌 동아일보 1954. 7. 16 경향신문 1954. 7. 26 동아일보 1954. 8. 6 경향신문 1954. 12.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