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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 폐쇄 조치와 관련된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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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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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등 개요와 원인 본 사례는 무인가대학이던 한국대학이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채 학생들을 모집하였고, 문교부당국이 한국대학을 폐쇄하게 됨으로써 한국대학 학생들의 반발에 따른 갈등이다. 문교부는 당시 ‘기존 대학의 정비도 질적 향상을 위해 감행하겠다’고 발표한 후 즉시 무인가대학을 적발한 바 있었는데, 다수의 학생들이 ‘불법입학’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 결과가 초래되었다. 서울시내만 해도 2~3개 대학이 당국의 허가를 얻지 않은 채 학생들을 모집한 바 있었는데, 문교당국은 세종대학이나 한국대학 등에 모집중지를 공문으로 공고하였었다. 그러나 학교당국은 학생들을 부당하게 계속 모집하여 선량한 학생들을 입학수속까지 완료시켰다. 아무런 내막도 모르고 제반 수속을 마친 학생들에게 1954년 6월 5일자로 문교부 장관이 “미안한 일이지만 부정입학을 한 학생과 학교 상호간에 책임져야 될 일”이라고 말한 바, 이 학생들에 대한 조치를 두고 갈등이 발생하였다. 결국 1955년 2월 14일자로 문교부로부터 폐쇄령이 내린 한국대학은 그간의 문제 및 학생조치문제에 거듭 분규를 야기하였다. 잔무처리와 재학생 명단을 제출할 것을 지시받은 당시 김정실학장이 재학생 1,008명의 명단을 문교부에 제출하는가 하면, 한국대학 학생들은 총회를 개최하고 한국대학 교명복구와 학장퇴진 및 학교사수를 결의하고 호소문을 각 관계 처에 제출하였다. 2) 주요 쟁점과 이해당사자 의견 문교부의 한국대학 폐쇄조치에 대한 지적항목은 ① 학칙변경 없이 약학과 학생을 불법 모집하였으며, ② 제도에 없는 통신교육을 실시하고, ③ 전임교수, 부교수 및 전임강사를 채용치 않았다는 것 등이었다. 이는 문교부의 지나친 처사가 아닌가 하는 설이 우세하였다. 그 이유는 ① 폐쇄조치가 대학설치기준령이 발효하기 전에 황급히 취해졌다는 점, ② 전년 9월에 이미 해체를 통고함과 동시에 김정실 외 4명을 임시이사로 임명한 후 김정실씨에게 학장역할을 부여하였다는 점, ③ 폐쇄 후 학생수습문제를 한국대학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김정실씨에게 일임하였다는 점 등이 지적된 것이다. 즉 그 이면에는 ‘모종의 음모’가 개입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교부는 상기의 3개 항목을 지적하면서 ‘재단법인 한국대학은 상부지시를 무시하고 학원 질서를 문란케 하였으므로 학원질서 유지상 폐쇄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반하여 한국대학 측은 첫 번째 폐쇄이유는 당국자의 구두승인 내지는 묵인으로 모집하였고, 두 번째 이유는 공보처의 출판허가를 얻어 한 것으로 문교부와는 하등 관계가 없으며, 세 번째 이유는 야간대학인 만큼 교수들이 겸직을 할지라도 전임교수에는 하등 영향이 없을뿐더러 근로학생을 위하여 오히려 장려해야 할 것이라고 정면으로 반박하며 이에 대한 행정소송을 제기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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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경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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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2월 14일자로 문교부의 폐쇄령이 내려졌으며, 학생들은 15일 문교부 당국의 방침인 타 대학으로의 분산수용을 반대하며 폐쇄조치를 취소해달라고 요청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한국대학이 사직당국과 국회에도 폐쇄에 따른 제반 분규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을 때, 문교부는 3월 28일부로 국제대학 야간부를 인가하는가 하면 한국대학의 학장인 김정실씨를 국제대학의 학장으로 승인함으로써 결국 문교당국에서 종전의 한국대학의 전철을 밟게 하였다. 문교부는 한국대학의 폐쇄조치 이유로 학생의 법정인원 초과모집 및 전임강사가 없다는 등을 지적하였으나, 국제대학의 인가에 있어서도 결국 종전의 한국대학교 재학생 1,000여명을 전원 편입시키기로 되어있는 만큼 문교부가 인가한 국제대학의 법정학생수인 880명을 초과해 수용하게 되는 모순을 또 다시 야기하면서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진행경과 | | 1955. 2. 14. 1955. 3. 12. 1955. 3. 28. 1956. 1. 11. | 문교부, 한국대학 폐쇄령 한국대학, 김정실학장이 재학생 1,008명 명단 문교부에 제출 문교부, 야간국제대학 인가 및 김정실 학장 승인 국회 문교위원회, 문교부장관에 “한국대학 존속” 요구키로 결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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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기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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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06-01 ~ 1956-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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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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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민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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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당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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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교부, 한국대학 측 및 해당 학교 학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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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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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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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기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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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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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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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익갈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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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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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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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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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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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용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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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 대학 폐쇄령, 국제대학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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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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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54. 6. 8. 동아일보 1955. 2. 21. 경향신문 1955. 2. 17. 경향신문 1955. 3. 23. 경향신문 1955. 4. 6. 동아일보 1956. 1. 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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