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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해양고 이전과 관련된 갈등
갈등개요

1) 갈등 개요와 원인


본 사례는 전라남도 목포에 위치한 목포해양고등학교 전교생 450명이 인천으로 상경하면서 발생한 갈등이다. 목포해양고등학교는 1950년 개교한 목포해양대가 1952년 목포상선고에서 1956년 목포해양고로 개편된 학교로 해양교육 전문의 순 국비(國費)학교이다.
1960년 6월 1일 목포해양고등학교 전교생 450명이 하오 8시 30분 목포발 서울행 기차편으로 상경하였는데, 이 학교 학생들이 목포를 떠난 이유는 목포유지들의 학교에 대한 협조가 부족하고 지리적 조건이 인천이 더 좋기 때문인 것으로 말하였으나, 실제로는 인천시의회의장이 인천으로 오면 기숙사와 식비를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또한, 학생들은 동교를 인천으로 옮겨달라고 문교당국에 건의하였다.
이에 해양고교생들 복귀를 위한 동창회와 학부형들이 연석회의를 거쳐 1960년 6월 15일 해양고교생들이 학교에 복귀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되었다.


2) 주요 쟁점과 이해당사자 의견


목포해양고등학교 학생들은 ‘당초 7억 환의 정부예산으로 목포에 학교를 설립할 예정이었으나 현지유지들이 협력을 해주지 않는다고 하여 학생 자신들이 인천으로 옮겨오게 된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천리길 데모’를 감행하면서 학교이전의 이유로서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우리나라의 유일한 해양고등학교가 과거 10년 동안 조금도 발전하지 못하였으므로 중앙에 가까운 인천으로 옮기기로 학생들이 결의하였다고 지적하였다. 이들 학생을 맞은 인천시청과 시의회에서는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경기도청에 연락하고 일단 시민관에 수용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
목포해양고등학교에서는 학생전원을 다시 목포로 복귀시키기 위하여 동창회와 학부형 연석회의를 가졌으며, 학년별로 대표를 선출하여 인천에 있는 학생들에게 복귀권고를 할 것과 끝까지 거부를 하는 학생들에 대하여는 그 학생들의 부족수만큼 보결생을 뽑기로 결정하였다.

진행경과

1960년 6월 1일 목포해양고등학교 전교생 450명이 하오 8시 30분 목포발 서울행 기차편으로 상경하여 동교를 인천으로 옮겨달라고 문교당국에 건의하였다. 

이에 1960년 6월 6일 목포해양고 동창회와 학부형 연석회의를 통해 해양고교생들의 학교 복귀를 독려하였다. 

결국 갈등 끝에 14일간 단식 등으로 교사이전을 요구하며 투쟁해오던 해양고교생 400여명은 1960년 6월 15일 상오 귀향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귀향은 학교 이전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일단 귀향하여 동맹휴학 등으로 교사이전이 실현될 때까지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결국 학생들은 그들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목포로 돌아왔다.

1950년 개교한 목포해양대는 1952년 목포상선고와 1956년 목포해양고를 거쳐 1973년 목포해양전문학교로 개편했다. 1994년 목포해양대로 교명을 바꾼 뒤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그동안 15,000여명의 동문을 배출했다.

 

진행경과


1960. 6. 1.

1960. 6. 6.

1960. 6. 15.

목포해양고 전교생 450명, 교사(校舍)이전을 요구하며 8시 30분 서울행 기차편으로 인천행

해양고교생들 복귀를 위한 동창회와 학부형 연석회의

해양고교생 학교복귀

발생기간 1960-06-01 ~ 1960-06-01
주체 정부-민간
이해당사자 문교부, 목포해양고교생
지역 인천 전남
행정기능 교육
성격 이익갈등
해결여부 해결
정권 이승만
주요용어 목포해양고, 폭포상설고, 천리길 데모
참고문헌 동아일보 1960. 6. 2. 3면 동아일보 1960. 6. 3. 3면 동아일보 1960. 6. 8. 3면 경향신문 1960. 6. 15. 3면 동아일보 1960. 6. 17. 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