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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토성 제방축조공사 갈등
갈등개요

1) 갈등 개요와 원인


매년 장마철마다 20만여 평의 농토가 물에 잠기고 집이 떠내려가는 등 홍수에 시달려 오던 서울 풍납동 주민들은 1967년에 제방공사추진위원회를 조직하여 시가 2억 원에 상당하는 2만여 평의 땅을 현물로 투자하고, 1967년 4월에 서울시의 제방축조허가를 얻어 유성건설로 하여금 제방공사를 착수하였다. 그런데 광진교 아래 위치한 한강변에 1,720m의 제방공사 중 4,000여 만 원의 공사비를 들여 전체공정의 30%가량이 진전되었을 때, 서울시공보실은 이 공사가 문화재보호법시행규칙 제11조제2항에 위배되었다는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 공사중지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1969년 서울시가 풍납동 백제토성이 공사 중에 훼손되어 더 이상 보전가치가 없다고 문공부에 건의하였고, 문공부는 서울시에 사용허가를 내 주면서 사적 제11호 백제토성의 원형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주민들의 풍납토성 복원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었고 서울시에 의해 복원공사가 준공되었다.


2) 주요 쟁점과 이해당사자 의견


1967년 주민들은 해마다 발생하는 홍수에 대한 대책으로 제방축조공사를 계획했고, 시울시의 허가를 통해 공사가 착수에 이르렀다. 그러나 서울시공보실로부터 이 공사가 ‘사적의 보호구역의 지정기준은 성곽인 경우 하부 기저(基底)에서 좌우로 20~50m’라는 문화재보호법시행규칙 제11조제2항에 위배되었으므로 공사를 중지하라는 명령을 받은 후 풍납동 주민들은 공사에 투자한 4,000여만 원과 7만 평의 농토를 잃게 되었다.
한편 서울시는 이미 공사로 인해 마구 파헤쳐진 백제토성이 더 이상 문화재로서 보존할 가치가 없다며 문공부로부터 사적해제 요청을 하였고 문공부는 사용금지명령을 해제하고 시에 대해 사용허가를 내려주었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2억 원을 들여 한강변 제방을 쌓고도 토성에 걸려 길도 못 내고 성안에 갇힌 25만 평의 땅을 인근 주민 1,300여명이 사용하겠다고 문화재관리국에 해마다 진정서를 냈을 때는 불가항력이더니 이번 도로사용은 어찌 허가되었냐고 아우성이었다. 그러나 이후 토성북단에 ‘사적 제11호’라는 안내간판과 높이 60m쯤 되는 ‘광주 풍납리토성’이란 비문만 남은 채 성벽뿐만 아니라 200여 채의 민가와 밭, 공장 등이 들어서 문화재가 엉망이 되었다. 그러자 주민 최한기씨 외 몇몇 주민들은 서울시와 문화재관리국에 철저히 관리 및 보호해 달라고 여러 차례 진정서를 냈으나 아무런 소식이 없었고, 동네 유지 및 주민 몇 명이 돈을 거둬 나무를 심는 등 보호를 위해 자체적인 운동을 했으나 결실을 보지 못하였다.
이들의 풍납토성 복원노력은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며 인근 중·고등학생 및 천호출장소가 토성 주위를 청소하는 등 환경정화에 나서기도 했다. 그 결과 1976년 9월 서울시는 풍납토성 291m에 대해 복원공사를 준공하였다.

진행경과

매년 여름 발생하는 홍수를 막기 위해 서울시 강남구 풍납동 주민들은 1967년 제방공사추진위원회를 조직하였으며, 이들은 1967년 4월 4일 서울시로부터 제방축조허가를 얻어 유성건설로 하여금 제방공사에 착수하였다. 그러나 1968년 12월 서울시공보실은 이 공사가 문화재보호법시행규칙에 위배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밝혀내고, 돌연 공사중지명령을 내렸다.


이로 인해 30%가량 진행된 공사비 4,000여만 원과 7만여 평의 농토를 잃게 된 주민들은 계속해서 서울시와 건설부, 그리고 문화공보부에 진정서를 제출했으나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그런데 1969년 4월 29일 서울시가 이미 훼손된 백제토성에 대해 더 이상 보존의 가치가 없다면 문공부로부터 사적해제요청을 했으며, 1972년 1월 28일 문공부는 사적해제를 결정하였다. 이로 인해 서기 286년 백제 책계왕 때 고구려가 대방을 정벌하자 백제가 이를 구출하고, 고구려의 침공을 막기 위해 축성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 백제토성은 사적 제11호란 안내 간판과 비문만 서 있을 뿐 대부분이 훼손된다되었다.


이후 1973년부터 주민들에 의한 문화재 복원노력이 시작되었고, 영파여자중·고등학교 학생과 천호출장소는 자매결연을 통해 매월 1학급씩 윤번제로 이 토성 주위를 청소하는 등 환경정화에 나섰다. 이들 주민과 사회단체들의 노력과 서울시 및 문화재관리국에 대한 주민들의 계속된 문화재보호진정으로 1976년 9월 22일 풍납리 토성의 복원공사가 준공되었다.


진행경과

1967.

4. 4

1968. 12.

1969. 4. 29

1972. 1. 28.

1975. 5. 3.

1976. 9. 22.

풍납동 주민들, 제방공사추진위원회 조직

서울시, 제방축조 허가

서울시공보실, 공사중지 명령

서울시, 문공부에 백제토성 사적해제 요청

문공부, 사적해제 결정

풍납동 주민들, 풍납토성 복원노력 추진. 영파여중․고 학생 및 천호출장소 자매결연

백제토성 복원 공사 준공


발생기간 1967-04-01 ~ 1976-09-01
주체 정부-민간
이해당사자 서울시, 문화공보부, 풍납동 주민
지역 서울
행정기능 문화체육관광
성격 가치갈등
해결여부 해결
정권 박정희
주요용어 풍납토성, 제방축조공사, 문화재보호법, 백제사적
참고문헌 경향신문 1969. 4. 11. 7면 경향신문 1969. 4. 30. 8면 동아일보 1972. 2. 3. 7면 경향신문 1973. 9. 22. 7면 경향신문 1975. 5. 3. 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