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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제대교사 복직을 둘러싼 갈등
갈등개요

1) 갈등 개요와 원인


1957년 3월 국방부는 현안 중에 있던 초등학교 정교사에 대한 귀휴조치를 단행하였다. 군에 복무중인 정교사 가운데 복무연한 1년을 초과한 자는 귀휴조치를, 그리고 2년 이상인 자는 예비역으로 전역시켜 각각 제대시키기로 3군본부에 통보하였다. 교사가 입영한 자리에는 병무법 제8조에 의거하여 입영한 교사가 퇴영할 때까지 조건부교사를 임시 채용하도록 문교부장관의 훈령이 각 도지사에게 하달되므로 제대교사의 복직은 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변 중 군에 소집되었다가 제대한 교원들의 복직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서 갈등이 발생하였다.
제대교사의 복직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문교부의 추상적인 교사수급계획, 각 지방의 교원자격검정시험의 무계획적 실시, 그리고 사범학교 학급수의 무계획적 증설 등으로 교원이 과잉 배출된 데 있었다. 1961년 1월 교원 배출상황을 살펴보면 18개 사범학교 졸업예정자 3,800명과 1960년 졸업생 800명, 미복직 제대교사 700명 등 5,300명으로 수요에 비해 훨씬 많은 숫자의 교원이 배출되었다.
미복직 제대교사들은 자신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문교부의 약속대로 복직이 이루어지지 않고 계속 연기되자 혈서 플래카드나 단식투쟁과 같은 극한 대립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문교부가 미복직 제대교사들의 복직을 부분적으로 추진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되었다.


2) 주요 쟁점과 이해당사자 의견


미복직 제대교사 갈등의 쟁점은 문교부의 약속과 달리 6·25사변으로 군에 복무했던 교사들의 제대 후 복직이 제때에 이루어지지 않자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미복직 제대교사들이 항의한 것이다.
대구의 미복직 제대교사들은 모두가 임시제대자이므로 일정한 기한 내에 복직을 하지 못하면 다시 입대를 해야 하는 상황인 만큼, 만약 도당국에서 모호한 태도로 나온다면 단식 등 극한투쟁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경북도학무과장학관은 도내 약 300명의 제대교사를 전체 복직시키게 되면 조건부로 임시채용된 교사의 상당수가 도태될 것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복직을 시켜주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약속과는 달리 복직이 차일피일 미뤄지자 제대교사들은 ‘복직요구 데모’를 결행하며 단식투쟁을 감행하였다.

진행경과

1957년 3월 국방부에서 초등학교 정교사에 대한 귀휴조치를 단행함에 따라 제대교사들의 복직문제가 거론되었다. 1960년 9월 문교부가 미복직 제대교사에 대해 연말까지 완전복직계획을 발표하였으나, 해가 바뀌어 새해가 되도록 완전복직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그러자 12월 6일 경북도내 100여명의 미복직 제대교사들은 복직을 요구하는 데모를 결행하였다. 데모가 결행되자 문교부학무과장학관은 12월 20일까지 복직을 시켜주겠다고 확약(確約)하면서 이들을 돌려보냈으나 약속은 또 지켜지지 못했다. 결국 1961년 1월 17일부터 미복직 제대교사들의 단식투쟁이 시작되었다. 
미복직 제대교사들은 대구시내 종로초등학교에서 단식투쟁을 시작하였는데, 침구하나 없는 차가운 교실이라는 열악한 조건에서 병약자들이 속출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이후 시내의 학교로부터 농성장소 제공을 거부당한 제대교사들은 경북여관 등으로 장소를 옮겨가며 복직요구투쟁을 계속하였다. 이들은 혈서로 플래카드를 만드는 등 거세게 투쟁하였으나, 교사수급계획의 혼란으로 2년에 걸쳐 일부분씩 더디게 복직이 이루어졌다.

 

진행경과

1957. 3. 13.

1958. 12. 30.

1958. 1. 10.

1960. 2. 19.

1960. 7. 1.

1960. 9. 6.

1960. 12. 6.

1960. 12. 8.

1961. 1. 17.

1961. 1. 19.

1961. 1. 27.

1961. 1. 28.

국방부, 초등학교 정교사 귀휴조치 단행

문교부, 종군 등 이유로 자격증미교부자대상 전형검정 후 동일자격 부여대책 마련 중

서울시교육위원회, 시내공립중고등학교 강사전원 자격검토, 200여명 정리 계획

문교부, 1962년도 초․중․고 교원수급계획 발표(제대교사의 복직문제 누락)

문교부, 경기도 관내 220명의 제대교사 복직결정

문교부차관, 년말까지 제대교원과 사범학교출신 예비교사 4,881명 완전복직계획 발표

경북도내 600여 제대교사 중 100여명 「복직요구 데모」 결행

경북도학무과장학관, 시위교사에게 20일까지 복직확약 후 귀가 조치

대구지역 미복직 제대교사 82명, 단식농성투쟁 돌입(즉각복직 요구: 종로초교)

문교부, 새학기 교사수급에 일대혼란 예상

대구지역 미복직 제대교사 50여명, 단식투쟁 재차 돌입(장소 : 경북여관)

대구지역 미복직 제대교사 30여명, 경북도청 마당에서 연좌데모에 돌입(혈서 플랭카드)


발생기간 1957-03-01 ~ 1962-12-01
주체 정부-민간
이해당사자 문교부, 제대교사
지역 대구
행정기능 교육
성격 이익갈등
해결여부 해결
정권 윤보선
주요용어 귀휴조치, 제대교사, 미복직, 단식투쟁
참고문헌 동아일보 1957. 3. 14. 3면 경향신문 1958. 12. 30. 1면 동아일보 1960. 2. 19. 3면 동아일보 1960. 7. 1. 3면 경향신문 1960. 9. 6. 3면 경향신문 1960. 12. 6. 3면 경향신문 1961. 1. 19. 3면 동아일보 1961. 1. 27. 3면 동아일보 1961. 1. 28. 3면 경향신문 1962. 10. 27. 6면          경향신문 1962. 11. 16. 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