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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 엽연초생산업무 전매청 이관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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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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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등 개요와 원인 본 사례는 엽연초 생산업무를 전매청으로 환원하기로 한 경제각의 의결에 대해 충주지방의 연초생산업자들이 ‘생산자를 함정에 몰아넣는 일’이라고 반대하면서 발생한 갈등이다. 전매청이 경제각의 의결에서 엽연초 생산업무를 전매청으로 환원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엽연초생산조합에서는 비공식 회합을 갖고 반대투쟁방안 등을 논의하면서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기관 및 국회 등에 진정서 등을 제출하기로 하면서 갈등은 확대되었다. 이러한 엽연초 생산업무 이관은 당시 차균희 농림부장관이 한일농상회담에 참석한 사이에 신관변 전매청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하여 환원지시가 내려졌다. 그러나 1965년 엽연초경작권관리 업무는 농림부에서 전매청으로 이관되었고, 경작·수납·검사업무가 완전히 일원화 되면서 갈등은 일단락되었다. 2) 주요 쟁점과 이해당사자 의견 충주엽연초생산조합에서는 연초관리 관계자 및 이사진이 비공식 회합을 갖고 반대투쟁방안 등을 논의하였다. 이들은 연초생산업무가 전매청으로 환원되면 “연초경작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많은 생산자들이 생산을 포기하는 사태가 야기되어 엽연초 증산은 물론 그 생산계획 자체에도 많은 차질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한 엽연초생산조합법이 연초전매법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법리에 어긋난다고 지적하였으며, 농림부 당국도 이러한 주장에 동조하는 입장이었다. 반면 전매청에서는 담배생산업무의 일원화를 이유로 전매청 이관을 주장하였다. 충주엽연초생산조합에서는 우선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기관 및 국회 등에 진정서를 제출키로 하였는데 이에 참여한 일부 이사들은 많은 생산자들이 생산을 포기하는 사태가 야기되어 엽연초 증산을 물론 그 생산계획 자체에도 많은 차질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전매청으로의 환원을 반대하는 이유로는 농림부에서 관장함으로써 농심의 생산비를 보장할 수 있는 배상금을 받을 수 있으며 엽연초는 잠업과 경합되는 것이므로 농림부가 관장해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비료, 농약 및 생산자금 등을 원활히 공급받을 수 있으며 연초 감정을 제3자인 국립검사소에서 함으로서 공정한 감정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내세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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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경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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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매청은 1964년 7월 20일자 경제각의 의결에서 엽연초 생산업무를 전매청으로 환원하기로 결정하였으나, 엽연초생산조합에서는 비공식 회합을 갖고 반대투쟁방안 등을 논의하면서 대통령을 비롯한 관계기관 및 국회 등에 진정서 등을 제출하기로 하면서 갈등은 확대되었다. 엽연초경작업무의 관할권은 1962년 4월 10일자로 중농정책의 일환으로 전매청으로부터 농림부에 이관되어 비료와 자재를 공급받았으며, 1964년에는 수출을 위한 증산을 장려해오기도 했다. 사실 경작업무의 관할권을 두고 정부 내 농림부와 전매청간에 3년여 간 갈등을 빚어왔다. 이러한 엽연초 생산업무 이관은 당시 차균희농림부장관이 한일농상회담에 참석한 사이에 신관변전매청장이 박정희대통령에게 건의하여 환원지시가 내려졌다. 결국 1965년 4월 15일 엽연초경작권관리 업무는 농림부에서 전매청으로 이관되었고, 경작ㆍ수납ㆍ검사업무가 완전히 일원화 되었다.
진행경과 | | 1962. 4. 10. 1964. 7. 20. 1964. 7. 22. 1965. 4. 15. | 정부, 중농정책의 일환으로 전매청의 엽연초 생산업무를 농림부에 이관. 수출증산 장려(`64) 경제각의, 엽연초 생산업무 전매청 환원 의결 충주엽연초생산조합, 연초관리관계자 및 이사들이 비공식 회합(반대의견 개진) 정부, 엽연초 생산업무 전매청으로 이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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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기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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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04-01 ~ 1965-04-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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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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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민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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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당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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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매청, 농림부, 충주엽연초생산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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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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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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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기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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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해양수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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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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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권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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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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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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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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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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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용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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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연초, 엽연초생산조합, 농림부, 전매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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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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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964. 7. 23. 2면 경향신문 1965. 4. 15. 2면 경향신문 1965. 4. 21. 1면 동아일보 1965. 4. 22. 2면 경향신문 1965. 5. 24. 2면 경향신문 1965. 5. 29. 4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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