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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교의 설계변경과 관련된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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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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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등 개요와 원인 이 사례는 1980년 5월 16일 국내 최초의 사장교로 착공된 서강대교의 설계를 서울시가 1987년 11월 12일 바꾸기로 발표하자 서울시 시민과 전문가 집단(구조공학전공)이 반대하면서 발생된 갈등이다. 서강대교는 1980년 6월 7일 국내 최초의 사장교로 착공되었으나 1982년 1월 8일 서울시의 심각한 예산부족으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그 뒤 올림픽 관련 사업 등 우선순위사업에 밀려 서강대교 공사비는 해마다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다. 따라서 서울시는 1987년 11월 12일 사장교로 계획되었던 서강대교를 예산이 적게 드는 평면교량으로 설계를 바꿔 공사를 재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1987년 11월 16일 서울시 시민과 구조공학전공 전문가들은 교량은 문화유산이라고 지적하며 기존교각을 철거할 경우 오히려 예산을 낭비하는 결과라고 밝히며 운치 있는 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전문가 집단과 시민들의 반발에 1990년 11월 23일 서울시는 서강대교 설계를전문가 자문과 현상공모를 통해 최종 결정하기로 하고 1991년 1월 25일 서강대교 기본계획안(설계) 현상공모를 발표하였다. 서울시는 1991년 4월 2일 선정 작품의 장․단점을 비교 검토해 교량형식을 최종 확정 하기로 하고 1991년 6월 1일 트러스교로 공사를 재개하기로 발표하였다. 결국 1992년 1월 25일 서강대교 공사가 재개되면서 서울시와 시민․전문가 집단(구조공학전공)의 갈등이 끝났다 2) 주요쟁점과 이해당사자 의견 이 갈등의 주요쟁점은 1980년 5월 16일 국내 최초의 사장교로 착공된 서강대교의 설계를 서울시가 1987년 11월 12일 바꾸기로 발표하자 서울시 시민과 전문가 집단(구조공학전공)이 평면교량으로의 설계를 반대하면서 서울시와 서울시 시민․전문가 집단(구조공학전공) 사이에 발생된 갈등이다. 서울시는 설계변경 추진의 이유로 사장교의 건설은 예산이 낭비 되며, 1980년 5월 16일 착공 당시와는 달리, 올림픽대교의 건설로 사장교는 한강 다리로 선보였으므로, 예산을 절감하며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 있는 평면 교량으로 서강대교의 공사를 재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서울시 시민들은 올림픽을 치르며 선진국 진입을 자처하는 시점에 예산 절감과 공사기간을 단축시키기 위해 한강에 또 하나의 시멘트 덩어리를 세우는 것은 잘못된 발상이라고 지적하고, 선진 어느 나라나 교량은 상징이자 문화유산이라며 단순히 기능만을 강조하거나 값싼 다리만을 지을 때는 지났다고 주장하였다. 구조공학전공 전문가들은 당초 설계를 사장교로 하였으며, 17개의 교각을 이미 사장교 방식으로 세워놓고 교량의 설계를 바꾸는 것은 교각 1개당 건립비용 5억을 낭비하는 결과라고 밝히며 설계 변경은 더 큰 예산낭비라고 주장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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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경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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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교는 1980년 6월 7일 국내 최초의 사장교로 착공되었으나 1982년 1월 8일 서울시의 심각한 예산부족으로 17개의 교각만 세운 상태로 공사가 중단 되었다. 그 뒤 1983년 4월 22일과 1987년 7월 1일 공사 재개가 확정 되었으나 1982년부터 잠실주경기장․올림픽대로 등 올림픽 관련 사업 등 우선순위사업에 밀려 서강대교 공사비는 해마다 예산에 반영되지 않았다. 이와 같이 서강대교의 공사가 중단된 것은 당초 다리형태를 사장교로 계획하여 공사 진행 과정에서 공사비가 많이 든다는 의견이 제시되어 예산낭비란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울시는 1987년 11월 12일 사장교로 계획되었던 서강대교를 예산이 적게 드는 평면교량으로 설계를 바꿔 공사를 재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1987년 11월 16일 서울시 시민들은 교량은 문화유산이라고 지적하며 단순히 예산을 아끼기 위하여 설계를 바꾸는 것은 독선적인 행정이라며 고위당국자들을 비판하였다. 또한 구조공학전공 전문가들도 토목공학 건축물의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교량은 그 나라의 상징물일 뿐만 아니라 문화유산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며, 기존교각을 철거할 경우 교각 1개당 건립비용 5억을 낭비하는 결과라고 밝히며 서강대교가 국회의사당과 밤섬 옆을 지나는 다리임을 감안하여 운치 있는 다리를 놓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서울시는 전문가 집단과 시민들의 반발에 1990년 11월 23일 서강대교를 당초 설계대로 사장교로 할지 트러스교나 아치교 등 다른 형태로 할 것인지 전문가 자문과 현상공모를 통해 최종 결정하기로 하고 1991년 1월 25일 서강대교 기본계획안(설계) 현상공모를 발표하였다. 서울시는 1991년 4월 2일 우수작 2편과 가작 4편을 선정 발표하였다. 이에 따라 삼우기술단의 포커스형 사장교 및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의 닐슨아치교의 장․단점을 비교 검토해 교량형식을 최종확정 하기로 하였다. 종합적인 검토 결과 1991년 6월 1일 서울시는 서강대교의 공사와 관련 기존 교량을 철거하는 평면 교량 및 예산소모가 큰 사장교 방안을 전면 백지화 하고 도시경관과 예산절감을 할 수 있는 트러스교로 공사를 재개하기로 발표하였다. 결국 1992년 1월 25일 서강대교 공사가 10년 만에 재개되면서 서울시와 시민․전문가 집단(구조공학전공)의 갈등이 끝났다. 진행경과 | | 1980.05.16 | 서울시 국내 첫 사장교 서강대교 착공 확정 | 1980.06.07 | 서강대교 착공식 | 1982.01.08 | 서울시 예산 부족으로 서강대교 공사 중단 | 1983.04.22 | 서울시 서강대교 공사 1984년 재개 확정 발표 | 1985.07.01 | 서울시 서강대교 공사 1987년 재개 확정 발표 | 1987.11.12 | 서울시 서강대교 설계 전면 재검토, 평면 교량으로 설계 바꿔 공사 재개 발표 | 1987.11.16 | 서강대교 사장교 설계변경 시민, 전문가 집단(구조공학전공) 반발 | 1990.11.23 | 서울시 서강대교 설계 전문가 자문과 현상공모를 통해 결정하기로 발표 | 1991.01.25 | 서울시 서강대교 기본계획안(설계) 현상공모 | 1991.04.01 | 서울시 서강대교 기본계획안(설계) 현상공모 우수작2편, 가작 4편 발표 | 1991.06.01 | 서울시 서강대교 트러스교 건립 확정 | 1992.01.25 | 서강대교 공사 재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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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생기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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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05-01 ~ 1992-01-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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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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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민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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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당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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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시민, 전문가 집단(구조공학전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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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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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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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기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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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송 및 교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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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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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갈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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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여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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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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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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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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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용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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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공학전공, 사장교, 서울특별시, 시민, 전문가 집단, 트러스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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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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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980. 5. 16. 6면. 동아일보 1980. 6. 7. 6면. 동아일보 1982. 1. 8. 10면. 경향신문 1983. 4. 22. 10면. 경향신문 1985. 7. 1. 10면. 동아일보 1987. 11. 12. 9면. 경향신문 1987. 11. 16. 9면. 한겨레 1990. 11. 23. 13면. 매일경제 1991. 1. 25. 18면. 경향신문 1991. 4. 2. 12면. 동아일보 1991. 6. 1. 16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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