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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중 서울∼수원 구간의 승용차 통행 제한과 관련된 갈등
갈등개요
1) 갈등 개요와 원인
 
이 사례는 1991년 10월 15일 교통부가 경인고속도로의 서울∼인천 구간과 경부고속도로 중 서울∼수원 구간에 대하여 아침 7시부터 밤 10시 까지 한 명 또는 두 명이 탄 승용차는 진입하기 못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하자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출퇴근하는 수도권 시민들이 반발하면서 발생된 갈등이다.
교통부는 1991년 10월 15일 수도권 고속도로의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의 8차선 확장 공사가 끝나는 1992년 12월 까지 경인 고속도로의 서울∼인천 구간과 경부고속도로 중 서울∼수원 구간에 대하여 아침 7시부터 밤 10시 까지 두 명 이하가 탑승한 승용차는 진입하기 못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이와 같은 교통부의 검토 방안이 언론에 보도되자 1991년 10월 17일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중 서울∼수원 구간을 이용하여 출·퇴근하는 경기·인천 지역 시민들은 강력히 반발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교통부는 1991년 10월 18일 교통부 차관주재로 관계기관(총리실·기획원·내무부·상공부·건설부·경찰청) 국장들이 참석한 회의를 열고 교통부가 마련한 2인 이하 승용차의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중 서울∼수원 구간 진입 통제 방안을 1991년 12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러자 1991년 11월 11일 고속도로 진입 통행 제한 조치에 수도권 국회의원인 이병학 의원과 서정화 의원 등이 교통부에 고속도로 통행 제한 조치의 재고를 강력히 요구하였다. 하지만 1991년 11월 14일 국무총리행정조정실장은 고속도로 통행 제한 조치와 관련된 관계 부처 차관 간담회를 갖고 고속도로 통행 제한 강행 방침을 재확인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수도권 시민들과 수도권 국회의원들의 반발에 1991년 11월 19일 교통부는 경인고속도로는 통행 제한 방침을 백지화하고 경부고속도로의 서울∼수원 구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12까지 서울 및 수도권  인터체인지의 진입 및 출입을 1991년 12월 2일부터 전면 통제하여 차량 통행량을 조정한다고 최종 확정하였다. 이와 같은 교통부의 차량 통행 방침 확정과 함께 교통부와 경기·인천 지역 시민 및 수도권 의원들의 갈등은 끝났다.
 
2) 주요쟁점과 이해당사자 의견
 
이 갈등의 주요쟁점은  1991년 10월 15일 교통부가 경인고속도로의 서울∼인천 구간과 경부고속도로 중 서울∼수원 구간에 대하여 아침 7시부터 밤 10시 까지 한 명 또는 두 명이 탄 승용차는 진입하기 못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하자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출퇴근하는 수도권 시민들이 반발하면서 교통부와 수도권 시민 및 수도권 국회의원 사이에 발생된 갈등이다.
주요당사자는 교통부, 서울∼수원 구간을 이용하여 출퇴근하는 경기·인천 지역 시민, 수도권 국회의원 이다.
교통부는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중 서울∼수원 구간의 극심한 교통체증으로 수출 물량 선적의 문제가 지속되고 있으며, 고속버스를 이용하여 서울로 진·출입 하는 여객 수송 문제가 심각하다며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의 서울∼대전 구간의 8차선 확장 공사가 끝나는 1992년 12월 까지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중 서울∼수원 구간에 한 명 또는 두 명이 탄 승용차는 진입하기 못하게 하는 방안을 시행하면 여객수송능력의 25%, 화물수송능력의 34%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서울∼수원 구간을 이용하여 출퇴근하는 경기·인천 지역 시민들은 고속도로 진입 금지는수도권 인구분산정책에 역행하는 정책으로, 수도권 시민과 직장인들에게 서울로 출·퇴근을 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하는 탁상 행정이라며 교통부의 2인 이하 승용차의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중 서울∼수원 구간 진입 통제 정책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수도권 국회의원들은 이미 경부고속도로와 경인고속도로는 고속도로로써의 기능을 상실한 만큼 새로운 고속도로 건설이 시습한데도 이 부분에 대한 투자는 미룬 채 임시방편인 통행제한을 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교통부의  고속도로 통행 제한 조치는 제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진행경과
교통부는 1991년 10월 15일 수도권 고속도로의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의 서울∼대전 구간의 8차선 확장 공사가 끝나는 1992년 12월 까지 경인고속도로의 서울∼인천 구간과 경부고속도로 중 서울∼수원 구간에 대하여 아침 7시부터 밤 10시 까지 한 명 또는 두 명이 탄 승용차는 진입하기 못하게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이와 같은 교통부의 검토방안이 언론에 보도되자 1991년 10월 17일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중 서울∼수원 구간을 이용하여 출·퇴근하는 경기·인천 지역 시민들은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현실을 무시한 탁상 행정이라며 강력히 반발하였다. 
하지만 이와 같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교통부는 1991년 10월 18일 교통부 차관주재로 관계기관(총리실·기획원·내무부·상공부·건설부·경찰청) 국장들이 참석한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경인·경수지역 교통소통 대책 회의’를 열고 교통부가 마련한 2인 이하 승용차의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중 서울∼수원 구간 진입 통제 방안을 1991년 12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교통부는 승용차의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중 서울∼수원 구간의 진입 통제를 계기로 1991년 10월 22일부터 승용차 함께 타기 운동을 본격적으로 활성화시키기로 하였다.
그러자 1991년 11월 11일 고속도로 진입 통행 제한 조치에 지역구가 수원인 민자당 이병학 의원과 인천인 서정화 의원 등이 교통부에 고속도로 통행 제한 조치의 재고를 강력히 요구하였다. 하지만 1991년 11월 14일 심대평 국무총리행정조정실장은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중 서울∼수원 구간의 통행 제한 마련을 위한 관련 부처 차관 간담회를 갖고 고속도로 통행 제한 강행 방침을 재확인하였다. 그러나 계속되는 수도권 시민들과 수도권 국회의원들의 반발에 1991년 11월 19일 교통부는 경인고속도로는 통행 제한 방침을 백지화하고 경부고속도로의 서울∼수원 구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12까지 하행선의 경우 잠원·반포·서초·양재·판교 5개 인터체인지를, 상행선의 경우 판교·양재·서초 인터체인지의 고속도로 진입 및 출입을 1991년 12월 2일부터 전면 통제하여 차량 통행량을 조정한다고 최종 확정하였다. 이와 같은 교통부의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중 서울∼수원 구간의 차량 통행 방침 확정과 함께 교통부와 경기·인천 지역 시민 및 수도권 의원들의 갈등은 끝났다.

 
 

진행경과

 

1991. 10. 15

교통부, 경인·경수 고속도로 오전7∼오후10시 2명 이하 탑승 승용차 진입 금지 검토

1991. 10. 17

경기·인천 지역 시민, 교통부의 승용차 통제 검토방안에 강력 반발

1991. 10. 18

교통부, 2인 이하 승용차의 고속도로진입통제방안 확정 발표

1991. 10. 22

교통부, 승용차 함께 타기 운동 활성화 운동 시작

1991. 11. 11

수도권 의원, 교통부에 고속도로 통행 제한 조치 재고 요청

1991. 11. 14

관계부처 차관 간담회, 통행 제한 강행 방침 재확인

1991. 11. 19

교통부, 경인고속도로 백지화·경부고속도로 진출입 제한 방침 확정

1991. 12. 02

교통부,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중 서울∼수원 구간의 차량 통행 방침 시행

발생기간 1991-10-01 ~ 1991-12-01
주체 정부-민간
이해당사자 교통부, 승용차를 이용하여 서울로 출퇴근 하는 수도권 시민, 수도권 국회의원
지역 경기 인천
행정기능 수송 및 교통
성격 가치갈등
해결여부 해결
정권 노태우
주요용어 경인고속도로, 경부고속도로, 교통부, 차량통행제한
참고문헌 동아일보, 1991년 10월 16일자, 1면. 경향신문, 1991년 10월 16일자, 15면. 매일경제, 1991년 10월 16일자, 19면. 경향신문, 1991년 10월 17일자, 3면. 한겨레, 1991년 10월 17일자, 14면. 동아일보, 1991년 10월 17일자, 20면. 매일경제, 1991년 10월 19일자, 2면. 동아일보, 1991년 10월 19일자, 5면. 매일경제, 1991년 10월 22일자, 19면. 동아일보, 1991년 11월 11일자, 2면. 동아일보, 1991년 11월 14일자, 2면. 경향신문, 1991년 11월 17일자, 2면. 동아일보, 1991년 11월 19일자, 23면. 동아일보, 1991년 12월 1일자, 1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