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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갈등
갈등개요

1) 갈등 개요와 원인


이 사례는 문공부가 황룡사 9층 목탑의 모양을 본 뜬 황룡사지 전시관을 짓겠다고 발표하자 건축계가 유적지 품위를 손상시킨다며 강하게 반발한 갈등이다.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14년(553)부터 선덕여왕 14년(645)에 이르기까지 총 93년간에 걸친 국가사업으로 조성된 대찰이었다. 황룡사는 또 신라의 3가지 보물 중 천사옥대(天賜玉帶)를 제외한 2가지 보물 황룡사 9층 목탑과 장육존상을 보유했을 정도로 그 비중이 높은 사찰이었다.
황룡사는 처음 중문·목탑·금당·강당이 남북으로 길게 배치된 1탑식 배치였으나 장육존상과 목탑 등이 조성된 후 금당 좌우에 작은 금당이 배치된 1탑 3금당식으로 바뀌었고 탑의 좌우에 종루와 경루가 대칭을 이루어 배치됐으며 사방은 복도와 같은 회랑으로 둘러싸여 독특한 가람배치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왔다. 황룡사 장육삼존불, 진평왕 옥대와 함께 ‘신라3보’중 하나로 손꼽히는 황룡사 9층탑은 서기 644년 선덕왕 14년에 세워졌다. 그러나 황룡사는 고려 고종 25년(1238)에 몽고의 침입으로 모두 불타 사라졌으며 그 흔적만 남았다.
그 동안 교계는 민족문화유산과 신라불교의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황룡사 복원을 추진해 왔으나 황룡사에 대한 기록이 없어 구체적인 복원 계획을 마련하지 못했다. 특히 9층 목탑의 경우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등에만 언급돼 있을 뿐 구조 양식과 모양 등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어 복원을 두고 문화재 위원간의 이견이 분분했다.
문공부는 1989년 12월 14일 황룡사 9층 목탑을 본뜬 황룡사 전시관을 황룡사지 동남쪽 바로 옆에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건축계 관계자들은 유적지 품위를 손상시킨다며 반대했다.
오랫동안 논란이 계속된 가운데 2009년 10월 경주시는 홍보전시관을 지상1층(일부 증충)철골구조로 건립하기로 했다.


2) 주요쟁점과 이해당사자 의견


이 갈등의 주요쟁점은 황룡사 9층 목탑을 본뜬 전시관 계획에 대한 갈등이다. 
주요 이해당사자는 문공부 및 경상북도 경주시와 건축계 관계자들이다.
서울시립대의 안영배 교수(건축공학)는 복원이 아닌 흉내 낸 건물을 유적지 현장에 짓는 것은 국제 건축 관례에도 어긋나는 일이며 더구나 황룡사 9층 목탑의 원형 추정이 제대로 안되는 상황에서 다른 재료로 탑모형을 짓는 일은 관광자원을 억지로 마련키 위해 고적을 새로 만드는 일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또 건축가 함인선(청년건축가협의회 부의장)씨는 설계도 되기 전에 외형과 건축재료까지 지정하는 것은 관의 생각대로 그려줄 설계를 원하는 것으로 10여 년 전 옛 중앙박물관 건물이 정부에서 설계지침까지 정해 현대 건축사상 최악의 건물로 국제적 망신거리가 됐던 일을 연상시킨다면서 계획추진에 앞서 지역 주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더 듣도록 권고했다.
문공부는 계획을 예정대로 추진하되 건축재료 선택에 대해서만 전문가 등의 의견을 더 묻겠다며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과 함께 앞으로 미륵사지 전시관(익산)건립 등 유적지 전시관 건립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진행경과
문공부는 1989년 12월 14일 4만여 점의 황룡사지 출토유물 및 경주지역 중요문화재를 전시하고 관광효과를 높여 국민교육 도장으로 활용한다는 목적으로 2백억 원을 들여 황룡사지 동남쪽 바로 옆에 부지 5,000평, 연건평 1,450평, 높이 80m의 황룡사지 전시관을 1992년 착공해 1997년 완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문공부가 짓기로 한 황룡사지 전시관은 외형은 9층 목조탑을 본뜨고 내부는 현대 건축기법을 사용하며 구성 재료는 예산절감과 건축기술, 풍압, 내진 등의 문제를 들어 목재보다 철물골조와 알루미늄판 등을 사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또 이 건물의 용도는 지하층 및 2, 3층은 전시실, 1층은 공개홀, 4~6층은 휴식공간, 7~9층은 전망대로 쓸 예정이었다.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계획이 발표되자 많은 건축 전문가들이 당시 민속박물관 건물로 쓰기 위해 수리중인 옛 중앙박물관 건물 건립의 경우를 예로 들며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옛 중앙박물관 건물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전통논의가 한창이던 1972년 전국 각지의 유명 고건축물을 본 떠 지으라는 정부의 지침에 따라 불국사의 다보탑·석가탑과 부석사의 무량수전, 법주사의 팔상전 등의 형태를 1.5배로 확대해 진열하는 양식으로 겉모습을 지었다. 그 뒤 이 건물은 내부기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이 탑모형을 건물위에 올려놓은 외형 등으로 많은 논란을 빚었고 중앙박물관이 자리를 옮겨 간 뒤 국립민속박물관 건물로 쓸 예정이었으나 건물 연결 부분에 물이 새는 곳이 많아 17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수리하던 중이었다.
서울시립대의 안영배 교수(건축공학)는 복원이 아닌 흉내 낸 건물을 유적지 현장에 짓는 것은 국제 건축 관례에도 어긋나는 일이며 더구나 황룡사 9층 목탑의 원형 추정이 제대로 안되는 상황에서 다른 재료로 탑모형을 짓는 일은 관광자원을 억지로 마련키 위해 고적을 새로 만드는 일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또 건축가 함인선(청년건축가협의회 부의장)씨는 설계도 되기 전에 외형과 건축재료까지 지정하는 것은 관의 생각대로 그려줄 설계를 원하는 것으로 10여 년 전 옛 중앙박물관 건물이 정부에서 설계지침까지 정해 현대 건축사상 최악의 건물로 국제적 망신거리가 됐던 일을 연상시킨다면서 계획추진에 앞서 지역 주민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더 듣도록 권고했다. 박물관 관계자들도 변태적 전시관 건립보다 기존 박물관 기능의 확충이 더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문공부는 계획을 예정대로 추진하되 건축재료 선택에 대해서만 전문가 등의 의견을 더 묻겠다며 황룡사지 전시관 건립과 함께 앞으로 미륵사지 전시관(익산)건립 등 유적지 전시관 건립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경상북도는 1998년 1월 18일 274억 원을 들여 경주시 구황동 옛 황룡사 터에 당시 세워졌던 9층 목탑형을 닮은 전시관을 짓기로 하고 문화재관리국에 승인을 요청했다. 이 전시관은 터 5,000평에 지하1층, 지상9층, 높이 80m로 규모로 지어지며 2008년 완공될 계획이었다. 경상북도는 이 전시관에 1978년 황룡사를 발굴할 때 출토된 각종 유물 4만여점과 황룡사, 안압지, 반월성, 포석정 등의 유적 모형을 만들어 전시하기로 했다.
경주시는 2009년 9월 문화재청으로부터 황룡사 복원 홍보전시관 예정부지 발굴허가가 남에 따라 10월부터 12월까지 황룡사지 서쪽 사역 밖(기존 주차장 북편)에 있는 홍보전시관 부지 발굴을 진행한다고 10월 5일 밝혔다.
황룡사 홍보전시관은 부지 발굴이 마무리되면 세부계획과 기본설계에 들어가고, 실시설계를 거쳐 발주될 계획이었다. 홍보전시관은 45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1천650㎡(500평) 부지에 황룡사 9층 목탑을 본 뜻 건물이 아니라 지상 1층(일부 중층)철골구조로 건립하기로 했다.
 
 

진행경과

 

1989. 12. 4.

문공부, 황룡사 9층 목탑을 본 뜬 황룡사 전시관 건립 발표

1998. 1. 18.

경상북도, 황룡사 9층 목탑을 본 뜬 황룡사 전시관 건립 발표.

2009. 9.

문화재청, 황룡사 복원 홍보전시관 예정부지 발굴허가

2009. 10. 5.

경주시, 지상 1층 철골구조로 황룡사 홍보전시관 건립 발표

발생기간 1989-12-01 ~ 2009-10-01
주체 정부-민간
이해당사자 문공부, 경상북도, 경주시, 건축계
지역 경북
행정기능 문화체육관광
성격 이익갈등
해결여부 해결
정권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주요용어 황룡사지, 9층 목탑, 홍보전시관, 1층 철골구조
참고문헌 뉴스라이브러리, http://newslibrary.naver.com(검색일: 2013년 9월 3일) 법보신문, http://www.beopbo.com(검색일: 2013년 9월 3일) 경북일보, http://www.kyongbuk.co.kr(검색일: 2013년 9월 3일) 한겨레신문, 1989년 12월 9일자 7면  한겨레신문, 1998년 10월 19일자 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