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베이스 소개
 이 연구는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협정 이후 판문점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회의, 사건, 충돌, 이동에 대한 문서, 사진 및 동영상을 수집하여 체계적인 정리를 하고 향후 이 연구를 수행할 연구자들에게 관련 주제에 대한 이해를 제고하기 위한 자료를 제공할 목적으로 수행되었다.

  전쟁이 지속되던 시기에 비해서 전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관심이 부족했기 때문에,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전후 판문점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을뿐더러 여러 곳에 산재되어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전후 판문점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서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원문을 제공하여 향후 연구에 도움을 주는 것이 한국전쟁의 정전체제와 남북한의 교류 및 갈등관계 해소를 조망하는데 매우 유용한 작업으로 인식이 되고 있다.
구축된 데이터베이스는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문서, 사진, 동영상들을 포함하는데, 가장 가치있게 수집한 자료들은 한국정부, 특히 통일부와 외교부에 보관되어 있는 판문점 관련 자료들이다. 이들은 대체로 접근성이 떨어지는 오프라인 수준의 문서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은 상태로 있는 회색문서들도 다수 구입했다.

  국내 국사편찬위원회, 국가기록원에 보관되어 있는 가치있는 문서, 사진, 동영상들도 발굴하여 종합적인 관리를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군사정전위원회, 중립국감시위원회, 비서장회의 등 정전체제 유지를 위한 다양한 회의록을 수집하여 정리할 수 있었다. 국회도서관 및 군사편찬연구소에 소장되어 있는 공개된 정부자료들도 다수 수집했다.

  학술적인 차원의 자료들도 수집했다. 관련 주제의 국내 일반대학 석박사학위논문과 국방대학교의 학위논문도 다수 수집했다. 각종 학술지 및 일반저널에 게재되어 있는 논문들도 수집을 했으며, 국내외 출판사에서 발간된 일반서적과 일간지에 게재된 관련 기사들도 수집했다.
전체문서들 중 순수하게 한국어로 된 문서가 57퍼센트이며, 나머지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또는 한국어와 다른 언어가 혼합되어 작성된 문서들이다. 연구진은 미국, 일본, 중국에 출장하여 자료를 수집했다. 국내 전문가들의 조언과 자료제공을 받기 위하여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위촉하여 연구 활성화에 도움을 받았으며, 적어도 연구기간 매년 1차례의 워크숍을 개최하여 외부 전문가들과 소통하고 연구진행을 원활하게 하도록 시도했다.
기대효과/활용방안
 본 연구가 초점을 맞춘 한국전쟁 이후 판문점에서 발생한 다양한 회의, 사건, 교류, 충돌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정전협정 준수에 대한 이슈이다. 정전 이후 유엔측과 공산측 대표들은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와 비서장회의를 통해서 정전협정 위반문제를 둘러싸고 수많은 논쟁을 벌였다. 이러한 논쟁은 실제적인 위반 여부에도 불구하고 양측이 정전협정 체제를 유지하도록 하는데 기여했다. 중립국감시위원회 회의도 지속적으로 개최되면서 양측의 정전협정 준수여부를 확인하고 시정사항을 제시했다.

  둘째, 정전협정 내용에 있는 구체적인 사항, 즉 포로송환,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 남북한의 군사력 건설 문제에 대해서도 판문점 문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특히 포로송환 문제는 남한에 억류되었던 포로들 중에 섞여 있는 반공포로와 공산군포로를 격리, 송환, 석방, 제3국 이주 등의 문제가 중요한 이슈였다. 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와 군사력건설 문제는 제2의 한국전쟁 재발을 막는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제였다.

  셋째, 정전협정 이후 판문점에서는 남북관계와 관련한 다양한 회의가 개최되었다. 남북한의 긴장상태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서울이나 평양에서 회담이 개최되기는 어려웠고, 주로 중간지대인 판문점에서 회담과 접촉이 이루어졌다. 판문점에서 개최된 회담으로는 국회회담, 경제회담, 체육회담, 적십자회담 등이 있으며, 특히 남북한 고위급회담과 정상회담의 예비회담이 판문점에서 개최되었다.

  넷째, 판문점을 통한 이동이다. 2000년대 이전에는 물자와 사람의 이동, 통신연락이 판문점을 통해 이루어졌다. 1967년 3월 22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사 부사장이었던 이수근이 판문점을 통해 귀순했다. 1989년 6월 정부의 허가없이 북한을 방문했던 임수경이 문규현 신부와 함께 그해 8월 15일 판문점을 통해 귀환했다.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은 소 1,001마리를 100대의 트럭에 실어서 판문점을 거쳐서 북한으로 보냈다.

  다섯째, 판문점에서 발생한 사건 및 사고이다. 정전협정 체결 후 비무장지대와 판문점에서 다양한 종류의 충돌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건은 1976년 8월 18일 오전 11시경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내 돌아오지 않는 다리 근방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유엔사 경비병들을 북한군 수십 명이 도끼 및 흉기로 구타 및 살해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주한미군이 증강되는 등 일촉즉발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여섯째, 정전체제의 평화체제로의 전환문제와 관련된 판문점의 위상이다. 종전이 아니라 정전이었기 때문에 한국전쟁을 종식시키는 문제가 남아 있다. 궁극적으로는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정전협정을 대체해서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시켜야 할 것이며, 이와 관련한 논의와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일곱째, 판문점 방문 및 관광이다. 판문점은 세계 주요 인사들이 방한할 때 방문하는 장소가 되었다. 미국 대통령들도 방한시 판문점 지역을 방문하는데, 현재의 오바마 대통령도 한국방문시 판문점 지역을 방문했다. 정전 이후 60년 이상이 지나면서 판문점을 방문하는 관광객들도 많이 늘고 있으며, 이들이 촬영한 사진과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판문점의 모습을 쉽게 볼 수가 있다.

  본 연구를 통해 구축한 데이터베이스의 가장 큰 특징은 수집된 거의 모든 자료에 대해 관련 주제 분야 전문가가 ‘요약문’을 직접 작성했다는 것이다. 이는 정보 검색 시, 문서의 모든 부분을 다 읽지 않아도 내용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고, 관련 분야 배경 지식이 많지 않은 인원에게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특히나, 수집된 자료가 판문점 관련 회의록, 보고서 등 사료적 가치가 큰 것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어, 웹 서비스로 제공했을 때의 활용 가치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최초로 공개되는 자료가 8,365면에 이르는 점도 연구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흥미 있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부가적으로 데이터베이스 입력 시, 각 자료마다 ‘주제어’, ‘국문 키워드’, ‘영문 키워드’를 부여하고 있어, 전문(full-text) 파일로 구성된 상황에서 검색 및 브라우징을 구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사업명 : 인문사회연구분야 토대기초연구지원
연구과제명 : 정전 이후 판문점 관련 사료 수집 및 정리 [기초학문자료센터(KRM)과제 정보 ]
연구책임자 : 이지연
연구수행기관 : 연세대학교
연구기간 : 3 년 (2012년 09월 01일 ~ 2015년 08월 3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