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학 용어사전

하임 헤르조그 חיים הרצו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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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임 헤르조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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חיים הרצוג‎
외국어
Herzog, Chaim
자료정의
이스라엘 정치인이자 이스라엘 제6대 대통령
출생/사망
1918~1997
출생지
본문

하임 헤르조그(Chaim HerZog)는 이스라엘 정치인이자 제6대 이스라엘 대통령이다. 그는 1918년 아일랜드 벨페스트(Belfast)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당시 아일랜드 최고 랍비였던 이츠하크 할레비 헤르조그(Yitzhak HaLevi Herzog)이다. 하임 헤르조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시온주의 운동에 관심이 많았고 더블린의 웨일즈 대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영국의 시온주의 청년 단체인 시온주의 청년 연맹(The Federation of Zionist Youth)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35년 가족들과 함께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한 후에는 당시 유대인 무장 조직이었던 하가나(Haganah)에 참여하였으며, 특히 1936년 아랍 대폭동이 발발했을 때, 동료 하가나 병사들을 이끌고 팔레스타인 유대인 공동체를 지켰다. 그는 하가나 활동을 잠시 중단하고 1938년에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런던대학교(University College of London)에서 법학을 공부하였다. 제2차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군에 자진 입대한 후 영국군 정보국 하에서 독일에 대한 전쟁 정보를 입수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특히 제2차 대전 말기 독일의 유대인 수용소에 대한 첩보를 미리 입수해 수 많은 유대인들을 구출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는 제2차 대전이 종전되고 영국군 소령으로 제대한 후 얼마 있지 않아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다. 그 이유는 유대인 국가 건설에 대한 준비가 시작되었고, 주변 아랍 국가들과의 전쟁이 불가피해져 보였기 때문이었다. 1948년 이스라엘은 독립을 선포하고 독립 전쟁에 돌입하자 헤르조그는 제2차 대전 당시 영국군 정보국에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스라엘 군 정보국장을 맡아 혁혁한 성과를 세웠다. 독립 전쟁 후에도 몇 차례 더 이스라엘 군 정보국장을 역임하였으며, 1950년에는 주 미 대사관 이스라엘 무관으로도 복무하기도 하였다. 1962년 군 소장을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군에서 제대하고 그 뒤 그의 법학 전공을 살려 법률가로 활동하였다. 1967년 6일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다시 군으로 복귀해서 당시 요르단으로부터 점령한 동예루살렘, 유대 및 사마리아 지역의 군 행정 책임자에 임명되었다.

그는 1975년에 유엔주재 이스라엘 대사로 임명되면서 외교관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당시 유엔이 시온주의를 인종주의로 결의한 유엔결의안 3379조를 통과시키자 이에 대해 비판하였다. 1981년에는 크네세트 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치에 입문하였다. 군인, 법률가 및 외교관 등 다양한 경력에 힘입어 1983년 노동당의 지지에 힘입어 리쿠드당이 추천한 메나헴 엘론을 누르고 제6대 이스라엘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 후 그는 대통령직 연임에 성공하면서 1993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하였는데,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누구보다 왕성한 외교활동을 펼쳤다. 그는 외교관의 경험을 살려 이스라엘의 외교 관계를 동아시아 국가까지 확대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으며,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를 방문한 최초의 이스라엘 대통령이기도 했다. 특히 이라크 사담 후세인 대통령을 중동의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위험한 인물로 지목하면서 이라크에 대한 외교적 제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군인, 법률가, 정치인, 대통령 등 공인으로서의 화려한 경험과 이스라엘 독립 시기에 지대한 공헌에 힘 입어 이스라엘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이스라엘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대통령직에 퇴임하였고 1997년에 사망한 후 헤르츨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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