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유라시아 문화코드 사전

핵심코드명(한글)
가족
핵심코드명(러시아어)
семья
핵심코드명(그 외 언어)
отбасы(카자흐어); oila(우즈베크어)
메타범주명(한글)
인간과 정서
연관 파생코드
가정교육; 도모스트로이; 손님
개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사회에서 오랜 세월 지배적이었던 전통적인 가족 형태는 가부장적 대가족의 기반을 지닌다. 집안에서 가장의 권위는 절대적이었으며 연령과 성에 따른 위계관계가 공고했다. 10세기 말 러시아에 전래된 기독교도 가부장적 가족 관계를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 종교적 규범은 가정 내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구분하고 자녀의 도리를 규율하였으며 가장에 대한 절대적 복종을 가르쳤다.
비교적 안정적인 형태로 유지되던 러시아의 가족 체계는 17세기에서 18세기를 거쳐 두드러진 변화를 보였다. 특히 서유럽의 직접적 영향 아래 있었던 귀족 가족의 모습이 이전의 전통 가족과 확연히 달라지면서 러시아 사회에서 계층에 따른 가족의 분리가 현저해진다. 19세기 후반 러시아 사회를 휩쓴 다양한 급진적 사상들의 영향과 사회의 혁명적 분위기 속에서 가족의 의미, 가족 구성원의 관계 등도 커다란 변화를 경험하였다. 부모와 자식의 갈등이 첨예화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전통적인 성 역할도 달라졌다.
중앙아시아 사회에서 가족 개념의 두드러진 변화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을 거치면서 일어난다. 러시아의 영향이 확대되고 자본주의 경제 관념이 퍼지면서 핵가족화가 뚜렷해지고 전통적 가족 관계와 가족의 의미도 크게 변화한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모습은 과거와 많이 달라져있지만,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농촌사회를 중심으로 20세기 초반까지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온 전통 가족의 특징들은 많은 측면에서 유사점을 드러낸다. 가족의 가치가 높고 가계의 뿌리로서 집의 상징성이 크며 가족의 일상생활이 마을 공동체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특징들은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사회에서 개인주의보다는 집단주의적 성향이 우세한 것과도 관련이 깊다.
현대 중앙아시아 사회에서도 이러한 집단주의적 사고방식과 밀접히 관련된 옛 가족의 특징들이 다소간은 보존되고 있다. 분가한 자식의 가족이 부모와 가정 경제를 포함해 여러 측면에서 상호 긴밀한 관계를 평생 유지하고 각종 가정의례를 가족 및 일가친척이 공동으로 주관하며 가족, 친지, 이웃들이 다양한 집안일, 농사일, 가정 행사를 서로 돕는 문화가 지금도 남아있다.
기원과 개념
[러시아]

러시아어로 ‘가족’을 뜻하는 ‘세미야(семья)’는 고대 러시아어 сѣмь(‘한 집안 사람’)의 집합명사 형태로서 공통슬라브어 semьja로부터 기원한다. 애초에는 같은 마을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다가 점차 한 집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가 되었다(샨스키&보브로바, 『학교어원사전』 참조). 슬라브인들에게 현대적 의미의 가족과 유사한 가족 형태의 등장은 8~9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를 즈음하여 예전의 집단적 무덤을 대신해 곳곳에서 작은 규모의 가족 쿠르간이 발견되고 있다(세도프, 『6~13세기 동슬라브인들』 참조). 그 이전의 사람들은 지금의 가족 개념과는 본질적으로 상이한 씨족 연합을 이루며 살았는데 6~7세기경부터 씨족 연합이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점차 아내와 자식, 형제와 조카, 친척까지 포함하는 대가족 유형이 등장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대규모의 가족을 거쳐 점차 가부장적 가족 형태가 러시아 사회에서 지배적이고 안정적인 가족 유형으로 자리잡아나갔다.
988년 러시아의 기독교 수용은 가족 개념에 커다란 흔적을 남겼다. 당시까지 널리 퍼져있던 일부다처제의 가족 형태가 차츰 일부일처제로 바뀌는 데 교회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또한 종교적 규범은 가정 구성원의 역할 규정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가족 구성원들 사이에 엄격한 수직적 위계 관계가 마련되어 아내와 아이들은 가장의 절대적 권위에 복종해야만 했다. 기독교 교리는 자식의 도리와 역할도 규정하여, 부모에 대한 공경과 무조건적인 순종을 가르쳤다. ‘성경’과 ‘몽둥이’로 가족 구성원의 관계와 가정생활을 규율하도록 권고하는 ‘도모스트로이’가 사회 계층을 가리지 않고 모든 가정에서 오랜 세월 중요한 지침서의 역할을 하였다(☞도모스트로이).
이렇듯 중세 러시아 사회에 뿌리를 내린 가부장적 가족은 엄격한 위계관계와 규칙을 지니는 하나의 조직이었다. 그러나 17세기부터 점차 두드러지기 시작한 서유럽의 영향은 공고했던 러시아 가족 형태에 변화를 예고하였다. 옛 전통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사회의 근대화, 서구화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사회적 분열이 일어난 가운데 가족의 개념과 역할에 대한 생각에서도 커다란 변화가 나타났다. 무엇보다, 공동체를 벗어나 생각할 수 없었던 인간이 점차 독자적 개인으로 인식되면서 이전 시기의 공고했던 가족 개념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버지의 보수적 권위에 도전하는 자식들의 모습이나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형상이 17세기 문학작품들을 통해 차츰 부각되기에 이른다.
이와 같은 변화의 기류는 18세기 들어 더욱 본격화된다. 표트르 대제의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과 서구화 정책의 결과 가족 영역에도 중대한 변화가 찾아들었다. 가장 두드러진 징후는 귀족 가족과 농민 가족의 분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이전까지 러시아 사회에서 계층에 따른 가족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면, 이 시기부터 전통을 보존하는 농민 가족과 서구화된 귀족 가족이 뚜렷이 구분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19세기 후반 러시아 사회에 불어 닥친 다양한 사회사상들과 개혁의 바람도 가족 개념을 근간부터 흔들어 놓았다. 예컨대, 가족의 가치를 포함해 전통적 가치를 부정하던 허무주의나, 민중의 의식 개혁에 심혈을 기울였던 인민주의는 가부장적 가족 제도의 폐해를 폭로하고 여성의 평등과 사회진출과 같은 문제에 주목하도록 만들었다. 당시 가족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가부장적 가족 형태가 유지되고 있던 농민 사회에 급진적 사상을 홍보하고 이들을 혁명의 대열에 동참시키기 위한 필연적 절차였다. 나와 내 가족의 일에서 벗어나, 남녀가 동등하게 러시아 사회의 변혁과 발전을 위한 일에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져갔다.
다양한 사회사상의 영향과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달라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절대적 권위와 자식의 무조건적인 순종이라는 과거의 공고했던 관계가 무너지고 부모와 자식 간 갈등이 첨예해졌다. 또한 여성의 자의식이 강화되고 사회 진출이 확대되면서 가족 내 전통적인 성 역할도 달라졌다.
오늘날 러시아 전통 가족의 특성과 옛 관습은 많은 부분 사라졌지만 러시아 역사상 가장 많은 인구층을 차지했던 농민사회를 통해 어느 정도는 그 맥이 유지되고 있다. 농민사회에서는 가부장적 대가족 형태가 20세기 직전까지도 지배적인 가족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농민의 가족을 중심으로 보존되어온 러시아 전통 가족의 특징으로, 가장이 가족 문제에 대한 전권을 지니고, 가족의 이해를 각 개인의 이해보다 중요시하며 가족의 일상생활이 지역 공동체와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중앙아시아]

카자흐어로 ‘가족’을 뜻하는 대표어로 ‘옷바서(отбасы)’를 들 수 있다. 어원적으로 ‘아궁이 옆’으로 해석되는 ‘옷바서’가 ‘가족’의 뜻을 가리키게 된 것을 통해 카자흐 문화에서 집 공간의 중심이자 선조와 후손, 가족 구성원을 연결해주는 매개체로서 아궁이의 상징성을 읽을 수 있다(아가르코바&메젠체바 「카자흐 민족문화에서 ‘가족’ 관념」 참조). 우즈베크어엔 ‘대가족’을 뜻하는 용어가 여럿이 있다. ‘카타 오이라(катта оила, 대가족)’, ‘비르 코존(бир қозон, 하나의 솥)’ 등이 사용된다.
카자흐, 키르기스인들과 같은 중앙아시아 유목민족은 10세기경부터 전통적인 유목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12세기경부터 대규모 가족 공동체가 점진적으로 분화되긴 하나, 유목 경제와 봉건적인 씨족적 생활양식에 입각한 가부장적 가족 형태가 다양한 형태로 유지되었다.
중앙아시아 유목민 혹은 반유목민 사회에서는 19세기까지도 대가족 형태가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고된다. 대가족은 보통 3세대를 아우르는 직계가족으로 구성되며 때로 가까운 친척들까지 포함하여 50~60여명의 가족 구성원을 지녔다. 결혼한 자식들이 부모의 집에서 아버지의 권위에 복종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이었다(아브람존, 『키르기스인과 그들의 민족, 역사, 문화적 관계』 참조). 19세기 후반 우즈베크 반유목민들 사이에서도 결혼한 아들이 부모로부터 분가하지 않고 한 솥밥을 먹는 이른바 ‘비르 코존(하나의 솥)’이 널리 나타났다(아리프하노바 외, 『우즈베크인』 참조).
이렇게 비교적 전통이 잘 보존되어온 중앙아시아 사회의 가족 형태와 가족 관계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을 거쳐 본질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19세기부터 러시아의 영향이 본격화되고 20세기 초 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서면서 수세기 동안 유지되어온 삶의 기반이 파괴되고 전통적인 유목 공동체가 와해된 것이다. 또한 19세기 말부터 러시아의 이주 정책에 따른 이주민의 유입이 확대되고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출현하면서 대가족의 붕괴가 가속화되어갔다. 경제적 관념의 변화도 가족 형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사적 소유 개념이 강화되면서 가족 구성원 간 경제적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일이 잦아지고 이로 인해 가장의 절대적 권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우즈베키스탄에서도 20세기 초중반을 거치면서 가족형태와 가정생활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도 우즈베크인들의 기본적인 가족 형태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생활양식을 토대로 한 대가족 형태였다. 이는 당시 중앙아시아의 사회, 경제적 상황과 밀접히 관련된다. 유목민들의 생활양식이 정주 생활로 전환되면서 토지와 주거지가 부족해지고 따라서 가족의 분가가 용이치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점차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핵가족의 확대가 가속화되어 1970년대 말에 이르면 핵가족의 규모가 전체 가족의 60%에 육박하게 된다(아리프하노바 외, 『우즈베크인』 참조).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중앙아시아 사회에서도 농촌을 중심으로 유지되어온 전통적인 대가족 형태에서는 옛 가족의 모습이 지금도 발견되며 민족적 전통과 관습도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다. 반면 새롭게 지배적인 가족 형태로 떠오른 핵가족 형태에서는 현대적인 가치가 유연하게 수용되어 남편과 아내의 상호관계가 보다 민주적이 되고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과거의 종속적, 수직적 관계와는 사뭇 달라져있다.
도시와 농촌을 망라하고, 민족이나 종교적 차이에 상관없이 중앙아시아 사회에서는 가족에 대한 높은 가치 지향성이 널리 나타난다. 가정을 이루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가족의 공고성이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높다. 또한 분가한 이후에도 자녀의 가족과 부모 가족이 긴밀한 경제적, 정서적 관계를 유지하는 현상도 중앙아시아 가족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전개와 사례
[전통 가족]

러시아의 전통적인 가족 형태는 가장이 집안문제의 전권을 지니는 전형적인 가부장적 기반을 지닌다. 러시아인들은 예로부터 대가족을 이루며 살았는데 대가족의 구성원에는 직계가족뿐만 아니라 가까운 친척까지도 포함되었다. 30~50여명의 가족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대가족은 가장의 지휘 하에 공동의 경제활동을 꾸리며 살았다(코스벤, 『가족 공동체와 부계친족명칭』 참조).
가족 공동체의 재산을 소유하고 관리하는 것은 가장의 몫이었다. 결혼한 아들을 분가시키거나 재산을 나누어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자식은 분가할 권리를 지니지 못했는데 마을 공동체는 분가를 하려는 자에게 가족의 반목을 야기했다는 이유로 죄를 묻기도 하였다. 가장에 대한 나머지 가족 구성원의 존경과 복종은 절대적이었으며 이를 행복한 가족의 전제 조건으로 여겼다.
기독교 교리는 가부장적 가족 형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기독교 성인들의 형상과 복음서 교리를 통해 훌륭한 남편상과 아내상이 마련된 것이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훌륭한 남편의 이미지를 선한 기독교인으로서 가정을 지키고 식솔들의 도덕성을 책임지는 자로 고착시키고, 훌륭한 아내의 형상은 남편에게 순종적이고 자식의 양육에 힘쓰며 오로지 가정의 일에만 혼신을 다하는 모습에서 찾았다.
러시아 가부장 사회에선 노인에 대한 태도도 특별했다. 노인은 집안의 주인일 뿐만 아니라 사회의 결정권자로서 가정과 사회 일을 주도하며 전통을 보존하고 전수해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노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의견을 경청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었다. 마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공동체의 의견을 주도해나가는 것도 그들의 몫이었다. 노인들이 길을 지나갈 때면 마을 사람들은 존경의 표시로 길에서 잠시 비켜섰다(베르딘스키흐, 『러시아의 시골』 참조).
러시아 사회에서 가부장적 대가족 형태는 19세기말까지 비교적 잘 유지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에서 대가족 형태가 상대적으로 길게 지속된 원인 중 하나로 농민 대가족이 조세 단일체였다는 점이 손꼽힌다. 농노제가 존재하던 시대에 정부와 지주들이 앞장서서 대가족의 보존에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농노제 시대에 잘 유지되던 가족 공동체가 농노제가 폐지되면서 차츰 와해되기 시작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준다(코발렙스키, 『가족과 재산의 출현과 발전』 참조).
이와 함께, 러시아 사회에서 대가족 제도가 오랫동안 지속된 데에는 러시아인들의 세계관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고대 시대부터 중세 사회에 이르기까지 러시아인들에게는 개인주의의 특성이 두드러지지 않았다. 러시아인들에게 가족, 집단, 공동체 밖의 개인은 상상하기 어려웠으며 개인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위험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중앙아시아 사회의 전통 가족도 가부장적 기반을 지닌다. 유목민의 전통 가족은 혈연관계로 묶인 대규모의 씨족 연합을 토대로 하는데 이는 유목민의 생활 조건과 경제 활동에 부응하여 발전한 가족 형태였다. 이러한 가부장적 대가족 형태가 19세기까지 중앙아시아 유목, 반유목민들 사이에서 널리 나타났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중앙아시아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가족관계와 친족관계에서는 옛 대가족 공동체의 흔적이 많이 발견된다. 대가족 공동체는 해체되었지만 그 특성들이 오늘날 친인척 간 끈끈한 유대관계의 형태로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가령 크고 작은 집안 행사들에 가족뿐만 아니라 친척들이 대거 참석한다든지 가계에 큰 부담이 되는 칼림의 마련에 친척들이 십시일반 도움을 주기도 하며 또한 일가친척을 위한 공동의 매장지가 존재하는 것 등이 이를 잘 보여준다(아브람존, 『키르기스인과 그들의 민족, 역사, 문화적 관계』 참조).
“떨어져나간 사람들은 늑대가 먹어치운다”라는 속담이 말해주듯, 중앙아시아 사회에서는 대가족으로부터 분리되어 독자적 가정을 일구는 것을 전통적으로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아버지 생전에 자식의 분가는 완전한 성격을 지니지 못한 채 단순히 ‘솥’만 분리되는 모습이었다. 즉 집 혹은 방이 분리되어 있고 음식을 따로 해먹는 정도였고 가정 경제의 대부분은 여전히 가장에 대한 의존성을 탈피하지 못했다. 대가족으로부터 분리된 가족 일원들도 경제를 따로 꾸리긴 하지만 상호 긴밀한 관계를 평생 유지한다. 다양한 의례, 행사를 공동으로 주관하고 참석한다. 가족, 친지, 이웃들이 다양한 집안일, 농사일, 가정 행사를 서로서로 돕는 ‘하사르’ 전통이 유지되고 있다.
대가족 전통의 흔적은 한 가정의 대소사가 그 집안만의 행사로 머물지 않고 친척, 지인, 마을사람들이 모두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성격을 띤다는 데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특히 할례 의례인 ‘수낫 토이’에서 잘 드러난다. 이 의례는 종교적 의무이기도 하지만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각자의 가정 행사를 공동체에 개방하는 사회적 의무이기도 했다.
가족의 수가 지나치게 많아져 공동 경제를 꾸려나가기 힘든 경우와 같이 불가피하게 분가가 이루어지는 경우, 중앙아시아 사회에서는 보통 맏아들을 분가시키는 관습이 존재한다. 이때 분가 의례를 치르는 전통이 있는데 친척, 이웃들을 초대하여 가장이 자식의 분가에 대한 희망을 피력하고 기도를 올리면 참석자들이 동의를 표하고 축복의 말을 건네는 방식으로 분가 의례를 치른다. 중앙아시아 사회에서 부모 부양의 책임은 막내아들에게 돌아간다. 막내아들은 일반적으로 독자적인 경제를 꾸리지 않고 아버지 집의 계승자로 남는다. 부모 부양에 대한 책임과 부모의 사망 후 장례 절차와 추모의례를 책임지는 대신 유산 상속의 권리도 지닌다. 현대 사회에서는 집안의 형편과 사정에 따라 편차가 크지만 과거 사회에서 이 관습은 상당히 엄격히 지켜졌다고 한다(카바코바, 「현대 카자흐 가족의 가치와 전통」 참조).
중앙아시아 사회의 가부장적 가족 문화는 집안의 윗사람에 대한 존경의 태도를 세대에서 세대로 전수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아이들은 어른들로부터 집안의 가장이자 혈통을 이어나가는 존재로서 아버지, 아궁이를 지키고 전수하는 자로서 어머니, 그리고 가족의 평안과 번영을 지켜주는 존재로서 조상혼에 대한 존경심을 배워나갔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도 엄격한 가부장적 가족의 관습에 따라 규율되었다. 자식은 아버지의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 없고 미성년의 자식뿐만 아니라 성인이 된 자식의 재산도 아버지가 관리했다. 이렇게 가부장적 가정에서 가족의 소유물에 대한 절대권은 가장에게 속했으며 따라서 가족의 분가와 재산의 분할은 가장의 동의하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었다.
가부장적 가족 문화는 아이들이 아직 어렸을 때 미래의 결혼을 약속하는 관습을 낳았다. ‘베식 커다(бесiк құда)’(‘요람 사돈’)라 불리는 관습에는 결혼을 포함해 자식의 미래가 부모의 의지에 달려있다는 오랜 인식이 담겨있다. 이 관습은 전통적 가치뿐만 아니라 실용적인 목적도 지닌다. 부유하고 명망 높은 가족은 이른 결혼을 통한 친인척 관계의 확대와 사회적 권위의 신장을 노리고, 가난한 가족은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되는 칼림을 모으고 조금씩 지불하기 위해 이른 결혼을 약속한다(아가르코바&메젠체바 「카자흐 민족문화에서 ‘가족’ 관념」 참조).


[집]

가부장적 가족 형태가 정착되면서 집은 단순히 거주 장소로 머물지 않고 가족의 가치를 상징하는 특별한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 러시아 사회에서 집의 가치와 의의는 특히 ‘우사디바(усадьба)’와 ‘조상 대대로 전수된 집(родовой дом)’이라는 개념으로 이어졌다. 독특한 러시아 단어 ‘우사디바’는 조어적 형태에 따르면 정원 옆의 집, 곧 정원이 딸린 저택을 가리키며 일반적으로 정원과 저택이 있는 영지를 의미한다. ‘우사디바’나 ‘조상 대대로 전수된 집’과 같은 개념에는 단순히 물리적 공간 개념을 넘어서 선조, 전통, 관습에 대한 표상이 담겨있다.

톨스토이가 거주했던 ‘우사디바’. 1921년에 11월에 ‘톨스토이 저택 박물관 하모브니키’로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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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
가부장; 집단주의; 가장; 대가족; 집; 칼림; 다처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