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유라시아 문화코드 사전

메타범주명(한글)
종교와 관념
메타범주명(러시아어)
Религия и идея
메타범주명(그 외 언어)
Religion and idea(영어)
연관 핵심코드
러시아 이념; 러시아 정교; 미; 민간신앙; 샤머니즘; 신화; 유라시아주의; 유토피아; 이슬람; 진
본문

 종교는 인간의 정신문화 양식의 하나로서 인간 삶의 다양한 문제들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것에 관하여 경험을 초월한 존재나 원리와 연결 지어 의미를 부여하고 또 그 힘을 빌려 통상적 방법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것이다. 무한·절대의 초인간적인 신을 숭배하고 신성하게 여겨 선악을 권계하고 행복을 얻고자 하는 일을 총칭하는 종교는 아주 오랜 기원을 지니며, 역사적 과정에서 많은 질적·양적 변화를 거쳐 왔으며 오늘날에도 인간의 정신생활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다.
관념은 통상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나타나는 표상·상념·개념 또는 의식내용을 가리키는 말로서 일반적으로 감각적 혹은 공상적 표상에서 이성적·지적 표상에 이르는 넓은 뜻의 표상 일반, 혹은 그 어느 하나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된다. 철학용어로서 관념은 감각적·감성적 표상에 대립하는 것으로 지적 표상 또는 개념, 나아가서는 그 복합체를 의미한다. 관념은 인간의 가치 체계 혹은 사상과 이념을 포괄한다. 특히 관념의 중심으로서 사상과 이념은 인간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 지니게 되는 세계관을 총칭해서 부르는 역동적인 개념이다. 또한 사상과 이념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재 조건인 공간과 시간에 의해 상당히 제약된다.
유라시아의 종교와 관념은 유라시아라는 공간 속에서 유라시아인들이 역사적으로 형성한 종교와 관념이다. 오랜 역사에 걸쳐 형성·발전되어온 유라시아는 다민족, 다종교, 다언어라는 다양성에 기반한 복합적 정체성을 간직한 독특한 문화 공간이다. 종교와 관념의 영역에서도 이러한 문화적 다양성 혹은 복수성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유라시아에는 러시아정교, 이슬람교, 가톨릭, 개신교, 유대교, 불교 등의 공식 종교와 함께 샤머니즘, 민간신앙으로 대표되는 비공식 종교가 존재한다.
988년 동방정교로부터 신학과 예배의식을 수용하면서 태동한 러시아 정교는 그 후 거의 천년의 세월 동안 러시아 국교의 지위를 누렸으며 다른 동방 종교와 구별되는 나름의 독자적인 문화를 창출했다. 따라서 러시아 정교의 신학, 언어, 회화, 음악은 특히 러시아 역사, 예술, 문화 등에 걸쳐 뚜렷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러시아 정교는 국가의 정체성만큼이나 복잡한 양상을 지녔는데 러시아가 지정학적, 문화적으로 유럽이나 아시아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러시아 정교는 가톨릭, 개신교와도 다르다. 러시아 정교 문화는 신비주의적이고 비합리적인 동양 종교의 특성도 지니고 있다. 나아가 러시아 정교는 구조적으로 국가 지향적이었는데 정교회 지배층들은 러시아 대중들보다 국가 권력과 더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반면 러시아 대중들은 러시아 정교를 믿으면서도 전통적인 민간신앙의 생활방식을 간직하였다.
15세기말 러시아가 ‘타타르 멍에’에서 해방되던 시기에 발생한 ‘모스크바 제 3로마설’은 러시아 정교회가 전제 권력과 결탁한 대표적 사례로서 러시아 민족에게 특유의 선민사상, 즉 러시아적 메시아니즘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러시아정교의 본질로서 17세기까지 유행한 금욕주의는 수도원 운동, 이시하즘, 유로지비가 대표적이다. 가톨릭의 공번성, 개신교의 보편성에 해당하는 개념인 소보르노스트는 고대 러시아의 농촌공동체에 기초한 독창적 사상 체계이다. 기법과 영성을 동방정교에서 수용한 후 15세기부터 독자성을 획득한 러시아 이콘에는 정교 신학, 우주와 조화를 꾀하는 기하학적 원리, 색채의 상징이 반영되어 있다. 특히 신학적 측면에서 이콘은 성당, 프레스코, 성가와 조화를 이루어 예배 의식 중에 신이 강림하고, 신도들이 그것을 체험케 하는 도구였다.
한편 유라시아에서 1300여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슬람은 정치-사회적, 종교-문화적 차원에서 러시아정교에 이어 두 번째로 중요한 위상과 영향을 지닌 종교이다. 이슬람은 전통적으로 볼가, (북)카프카스, 중앙아시아 그리고 시베리아 일부 지역의 카프카스 민족들과 투르크 민족들 사이에서 널리 확산되어 숭배되고 있다. 유라시아 지역에서 이슬람은 오랜 질곡의 역사 속에서 부침을 거듭했지만, 사회적 삶의 강력한 조정자이고 개인뿐만 아니라 민족의 정신적, 문화적 정체성의 고유한 벡터이며 다양한 민족들 간의 지역적 연대의 단일한 기초로서 작용해 왔다. 유라시아의 무슬림 사회에서 이슬람은 통상적 의미의 종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역사, 문화 등을 포괄하는 무슬림들의 삶의 규범이자 양식이며 총체이다. 그러나 무슬림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소통과 상생의 토대로서 기능해온 이슬람은 오늘날 오히려 분열과 반목으로 인해 혼란과 갈등의 원천으로 지목되고 있다. 러시아의 식민지배가 남긴 거대한 역사적 유산들과 전환기의 다양한 내외적 요인들이 상호작용한 결과인 이른바 공식, 비(非)공식(생활), 반(反)공식(저항) 이슬람 사이의 분열과 반목은 현대 유라시아 무슬림들이 관용과 화합, 창조와 혁신이라는 이슬람 정신의 복원과 계승을 통해 해결해야할 중대한 시대적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유라시아의 이슬람은 독자적 특성들을 지니고 있는데, 북카프카스와 중앙아시아지역에서 널리 퍼진 수피즘은 금욕적 고행과 신비적 체험을 통해 신과의 합일을 추구하는 이슬람의 종파로서 토착 신앙과 결합되면서 환상적, 주술적 경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대표적으로 성인숭배는 종교적 궁극의 경지에 도달한 수피들을 성인으로 추대하여 존경하는 수피즘에 고유한 종교적 관행이다. 성묘 혹은 성물 순례를 통해 성인으로부터 축복과 성덕을 기원하는 성인 숭배는 일종의 성지순례에 버금가는 중요한 의례로서 정통이슬람으로부터 이단적 행위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중앙아시아 종교문화의 혼합주의적 경향을 보여주는 오랜 전통이다.
볼가와 크림 지역과 특히 중앙아시아 지역의 이슬람과 무슬림 공동체에 뚜렷한 역사적 각인을 남겼던 자디드운동은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에 걸쳐 이른바 ‘새로운 방법(jadid)’에 기초해서 교육과 문화를 비롯한 사회 전반의 근대적 개혁을 꾀하고, 민족의식의 고취와 정치적 각성을 통해 러시아 식민 지배로부터 해방을 꿈꾸었던 유라시아 무슬림들의 근대적 개혁·민족 운동이었다. 오늘날 러시아의 타타르스탄에서 폭넓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새로운 형식의 자디드운동이 바로 유로이슬람이다. 유로이슬람은 유럽성과 아시아성의 공존과 상생이라는 해당 지역의 유라시아적 토대에 기초하여 자유, 민주, 평등, 관용, 혁신 등의 가치를 지향하고 실천하는 이슬람의 현대적 개혁 운동의 흐름으로서 유라시아의 여타 무슬림 지역에서도 일정한 반향을 얻고 있다.
비공식 종교 가운데 유라시아지역 특히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에 널리 퍼진 것이 바로 샤머니즘이다. 샤머니즘은 가장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인류의 종교적 문화유산의 하나로서, 특별한 영적 능력을 지닌 샤먼이 트랜스나 엑스터시 같은 의식의 전환 상태에서 초자연적 존재와 직접적으로 교통하면서 다양한 주술적, 종교적 의례를 행하는 독특한 문화 현상이다. 샤머니즘은 고유한 우주관(세계관)에 기초하며 풍부한 종교적, 문화적 상징체계를 지니고 있다. 또한 샤머니즘은 인간의 정신세계와 삶의 방식을 규정짓고 공동체를 통합시키는 일종의 규범 체계이자 문화복합체이다. 특히 시베리아와 중앙아시아 지역은 샤머니즘의 본향이자 메카로서 러시아화와 소비에트적 종교탄압으로 상징되는 굴곡의 역사 속에서도 우주와 자연과 인간의 조화와 상생이라는 샤머니즘의 근본정신이 계승과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유라시아의 대표적 공간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이 지역에서 차츰 일고 있는 샤머니즘 부활의 기운은 안팎으로 적지 않은 관심과 기대를 낳고 있다.
샤머니즘에서는 샤머니즘의 우주관(세계관)과 의례 체계의 정체를 함축하고, 샤먼이 행하는 의례들 속에서 핵심적 요소로 작용하며 다양한 실제적, 상징적 의미를 표현하는 샤먼의 무구와 초자연적 존재인 신이나 정령들의 거처로 여겨지는 자연적 대상물이나 상징적 형상물을 지칭하며 오늘날에도 일상의 도처에서 일종의 성물이나 부적처럼 애용되는 온곤이 특별한 주목을 끈다.
한편 개인적, 집단적 행위와 의례 속에서 새롭게 부활하는 샤머니즘의 현대적 발현 형태를 총칭하는 개념으로서 네오샤머니즘은 샤머니즘 전통의 복원과 계승에서 혁신과 창조에 이르는 다양한 흐름을 포괄한다. 네오샤머니즘은 민족 정체성의 추구 과정에서 주요한 종교 문화 전통의 하나로서 주목받고 있으며 인간과 세계의 소통, 신성과 인성의 합일,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를 지향한다.
자연 종교이자 비공식 이교로서 민중적 토대를 지닌 민간 신앙은 유라시아 지역에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고 있다. 주위 세계에 대한 신비감과 경외심에서 비롯된 범신론적 세계관 혹은 신화적 상상력에 기초한 민간 신앙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수용 이후 끝없는 역사의 굴곡 속에서도 공동체적 사고와 전통 문화와 밀접하게 결합되고 서민들의 일상적 사고와 행위 속에 깊게 뿌리내리면서 점진적으로 진화해 왔다. 유라시아 지역의 동슬라브인들과 투르크인들 사이에서 전승되어온 민간 신앙 가운데 이교의 신과 정령 숭배, 조상 숭배는 고유의 체계와 독특한 진화 그리고 남다른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민간 신앙에서 숭배의 대상인 신과 정령들은 지역과 민족에 따라 고유한 질서와 체계, 즉 판테온을 형성한다. 러시아인을 비롯한 동슬라브족이 숭배했던 이교의 신들은 블라디미르 대공의 판테온에 모셔졌던 페룬을 비롯한 6주신과 벨레스, 로드와 스바로그 등의 기타 신격 그리고 도모보이와 레쉬 등의 일상의 정령들이 대표적이다. 또한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투르크계 민족들이 섬겨왔던 이교의 신들은 천신인 텡그리를 비롯하여 우마이, 예르-수, 예르릭 등이 유명하다. 오늘날 민간 신앙은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가운데 또 다른 민족의 정신적 자긍심의 원천이자 사회 구성원들의 공동체적 연대의 뿌리로서 주목받고 있다.
비잔틴으로부터 도입된 외래 종교이자 공식 종교인 동방기독교(러시아정교)와 동슬라브의 토착 신앙이자 자연 종교인 민간 신앙(이교적 믿음과 관습들)이 상호적으로 경쟁, 절충, 혼합의 양상을 띠면서 오랫동안 공존하였던 러시아의 독특한 정신문화 현상 혹은 종교적 신념 체계가 이중신앙이다. 애초에 부정적 함의를 지녔던 이중신앙은 오늘날에는 일종의 문화적 변용 혹은 재구조화라는 보편적 맥락에서 종교적 혼합주의로도 칭해진다.
천신사상 혹은 텡그리주의는 유일한 하늘 신인 텡그리에 관한 종교적 철학적 사고에 기초한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투르크계 유목 민족들의 총체적 세계관이다. 텡그리는 태초의 전지전능한 본체이자 하늘-우주의 창조자이며 물질과 비물질, 생명과 비생명, 즉 모든 존재의 근원이다. 오늘날 천신사상은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유라시아에서 민족 정체성의 복원과 지역적 연대라는 차원에서 유력한 정신적 문화유산으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조상숭배는 가족이나 조상이 사후에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믿음에 기초한 일종의 신앙 체계이다. 러시아의 조상숭배에는 정교적 요소와 이교적 요소가 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으며, 정교 축일에 조상의 묘를 찾아가 예배를 드리거나 조상을 기리는 의례가 행해진다. 이것은 죽은 자의 영혼의 안위를 기리거나 죽은 자가 끼칠 수 있는 악영향을 방지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닌다. 중앙아시아의 조상숭배는 지배 종교인 이슬람 문화와 천신사상을 비롯한 민간 신앙과 접목되어 발전하였으며, 조상신에 대한 숭배, 성인에 대한 숭배 그리고 유일신 알라와 결합된 천신에 대한 숭배 등을 통해 보존되고 있다.
유라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민족들은 기독교나 이슬람 또는 불교로 개종하면서 자신들의 민간 신앙을 이교로 배척했고 유일신 종교로 문화의 방향을 틀었다. 따라서 다양한 민간 신앙은 종교적 기능을 점차 상실하면서 일종의 신화 형태로 보존되었다.

종교에 못지않게 유라시아에서는 복잡다단한 굴곡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사상과 이념이 피어났다. 러시아를 비롯한 유라시아 지역에서 사상과 이념은 상당히 극단적인 형태를 띠고 나타났는데,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이른바 ‘러시아 이념’이다. 러시아 이념은 “우리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야하는가”라는 러시아인들이 역사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던지는 물음에 관한 대답의 추구이다. 유라시아의 사상과 이념에는 계몽주의, 자유주의, 슬라브주의와 서구주의, 인민주의,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신)유라시아주의 등이 있고, 문예와 일상에서 핵심적 가치 범주로서 진(眞)과 미(美)가 있다.
키예프-루시 시대의 민간 신앙은 나름의 체계와 위계를 가지며 일상생활에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특별히 정교하거나 보편적이지 못했다. 실상 루시인들은 988년 기독교 수용과 함께 비로소 보편적 이념을 가질 수 있었다. 정신문화와 일상생활을 지배했던 기독교는 러시아가 17-18세기를 거치며 세속화의 길로 접어들게 되자 점차 그 위력을 잃어갔다. 종교 사상 대신에 이른바 계몽주의가 지배 엘리트들과 사회 활동가들에게 자신들의 이념을 펼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이념적 도구가 되었다. 계몽주의의 도움으로 지식인들은 스스로 사회 개혁에 앞장섰는데, 이들은 국가 지배 엘리트가 아니라 스스로의 행복과 이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개인들로 러시아 역사에서 최초로 시민사회를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세기 초 유럽을 휩쓴 자유주의라는 사상의 물결은 러시아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쳐 이른바 데카브리스트들을 잉태시켰고, 그 후 러시아 지성사에 등장하게 될 인텔리겐치아들의 사상적 자양분이 되었다. 데카브리스트는 1825년 12월 전제정치와 농노제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귀족 가문 출신의 진보적 청년들을 지칭한다. 그들은 차르 체제의 억압과 착취에 맞서 저항적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자처하였다. 19세기 전반기 러시아 사회의 긴요한 문제의 변혁적 해결을 주창했던 데카브리스트 운동은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당대는 물론이고 후대의 러시아 사회 전반에 커다란 파장과 반향을 불러일으킨 역사적 대사건이었다. 특히 억압과 착취에 맞선 귀족-혁명가들, 진보적 인텔리겐치야의 반란은 자유와 평등을 희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양심의 잣대이자 행위의 본보기로 기억되고 있다.
전혀 러시아적 현상이었던 ‘러시아의 길’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미래에 대한 고민은 슬라브주의와 서구주의 속에서 본격적으로 이념적 체계를 갖추게 된다. 슬라브주의자들은 정교와 러시아의 우월성에 대해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예컨대 호먀코프가 제시한 ‘소보르노스트’ 개념은 정교의 사랑과 자유, 진실에의 의지 등에 기반한 개념으로 러시아의 농민공동체와 전국민회의와 같은 러시아 전통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다. 슬라브주의자들에게 표트르 대제의 개혁은 러시아의 조화로운 미래를 방해하고 민중들을 미혹의 길로 빠지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오히려 그들에게는 러시아의 전통을 되살려 서구의 미혹들과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러시아의 운명에서 관건이었다. 슬라브주의자들의 주의·주장은 러시아의 독창성에서 자양분을 끌어올렸으나 종교적 낭만주의를 내포하고 있었다. .
한편 서구주의자들의 경우에는 슬라브주의와 달리 내부적으로 통합되거나 일치된 견해가 존재하지는 않았다. 서구주의자들은 슬라브주의자들보다 훨씬 다양했고 개인적으로도 자신의 입장을 번복하는 경우도 빈번했으며 상대적으로 개인주의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구주의자들은 공통적으로 러시아의 역사는 결국 서구의 경로를 따라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러시아 역시 서구 문명이라는 세계사 속에서 자신의 경로를 개척해나가야 하며, 따라서 당대의 러시아의 정치적·사회적 상황은 여전히 미성숙한 상태에 머물고 있다고 판단했다. 가령 그들에게 표트르 대제의 개혁은 더욱 철저해야 했으며 더욱 서구적 모델을 따라야 했었다.
러시아 지성사에서 급진주의는 1860년대에 등장하게 된다. 이는 사상사적으로 낭만주의에서 사실주의로의 변화, 관념론에서 유물론으로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러시아의 당대 현실은 지식인들에게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돌릴 것을 요구하였고 이는 1870년대에 인민주의의 이념으로 등장하게 된다. 당대에 혁명적 이념을 지니고 있었던 인민주의자들에 의해 촉발된 운동이 바로 ‘브나로드 운동’이었다. 민주적 의식을 지닌 일군의 젊은이들은 자신의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 민중들과 농민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당국의 억압에 의해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러시아적 환경에서 자라난 급진적 혁명 사상으로서 인민주의는 마르크스주의에도 영향을 끼친다.
마르크스주의는 과학을 내세웠으나 인민주의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다. 마르크스주의는 러시아적 토대 위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로 진화하였고 1917년 혁명을 성공으로 이끄는 밑거름이 되었으며 소비에트 시절에는 유일무이한 공식적 지배 이데올로기로 격상되었다. 러시아혁명의 지도자인 레닌의 사상과 이론을 지칭하는 레닌주의는 좁은 의미로는 20세기 초 레닌에 의하여 러시아에 적용된 마르크스주의를, 넓은 의미로는 제국주의시대의 보편적 프롤레타리아혁명 이론을 가리킨다. 레닌은 마르크스주의를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제국주의시대의 러시아 현실에 맞는 독창적인 혁명이론을 창안하였다. 그의 사상과 이론은 인민주의, 카우츠키의 경제주의,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 멘셰비즘 등에 대한 치열한 이론투쟁을 거쳐 형성되었다. 레닌 사후 스탈린, 트로츠키, 부하린, 지노비예프 등이 권력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각자 자신을 레닌의 정통계승자로 자처하면서 레닌주의라는 말이 생겨났다. 결국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스탈린에 의하여 레닌주의는 ‘제국주의시대의 보편적인 프롤레타리아혁명이론’으로 격상되었다. 그 후 사회주의권이 붕괴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까지 레닌주의는 마르크스-레닌주의라는 이름으로 동유럽과 중국의 사회주의국가들에 널리 보급되었다.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혁명 사상은 소련이라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를 탄생시켰고, 유라시아 전역에서 새로운 공화국들을 만들어냈다. 그 이후 소비에트 시대에 전개된 사회주의적 근대화와 산업화는 유라시아 지역 사람들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온 실로 혁명적인 과정이었다. 더불어 2차 대전 이후 전개된 동구권 등 공산주의 블록의 형성은 세계의 지정학적 판도를 바꾸는 일대 사건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혁명 74년 후에 일어난 소연방의 해체와 독립국가연합(CIS)의 성립은 다시 한 번 유라시아뿐만 아니라 세계사의 판도를 바꾸는 일대 사건이었다. 소연방의 해체와 동구권의 몰락으로 사실상 공산주의 블록은 붕괴되었고, 사회주의 국가 소련은 자본주의 국가 러시아로 변모하였다. 그리고 유라시아 지역에서는 새로운 독립 국가들이 탄생하였고, 유라시아의 국경선은 다시 새롭게 그어졌다.
20세기 초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외에 보수적 민족주의로 간주할 수 있는 유라시아주의도 등장한다. 혁명 이후 시들해진 유라시아주의는 1980년대 중 후반 이후 소비에트 사회가 위기에 처하고 러시아의 정체성이 화두가 되면서 신(新)유라시아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시 등장한다.
유라시아주의는 ‘러시아의 길’ 혹은 ‘러시아의 이념’이라는 근본 문제를 궁구하는 러시아 지성사의 도도한 흐름 속에 위치하고 있는 한 세기 이상의 역사를 지닌 지정학적, 사회-철학적, 지문화적 학설이자 사회운동의 한 흐름이며 나아가 지역 통합을 위한 대안적 구상 중의 하나이다. 유라시아주의는 일종의 전환시대의 담론으로서 제정 러시아의 종말과 소비에트 체제의 출현이라는 역사적 상황에서 1920~1930년대 19세기 슬라브주의의 전통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망명 지식인들 사이에서 본격적으로 태동되었고, 1960~1970년대 탈(脫)스탈린주의와 해빙의 분위기 속에서 일정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소연방 해체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유라시아 공간에서 일종의 대안적 통합 구상으로서 정치-사회적, 역사-문화적 영역에서 새로운 관심과 주의를 끄는 고유한 사고 체계이자 운동 이념이며 실천 활동으로서 여전한 물음의 진리 중의 하나이다. 특히 신유라시아주의는 두긴, 푸틴, 나자르바예프 등에 의해 주도되면서 대중적 관심을 적지 않게 끌고 있다.
두긴은 신유라시아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이자 실천가로서 고전적 유라시아주의를 비판적으로 계승·발전시키고 특히 유라시아 제국의 지정학을 정초하는데 공헌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중심의 단극적 세계화에 맞서 범유라시아적 지역 제국의 창설을 대안적 정언명령으로 제기한 두긴의 사고는 전통주의, 종말론, 비교(秘敎)주의, 제국주의, 인종주의, 아리안주의, 신비주의, 국수주의, 파시즘 등이 모순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따라서 다민족, 다신앙, 다문화라는 유라시아성의 존재적 실체에 정당한 인식에도 불구하고 초제국적 민족주의를 부추기는 위험한 이데올로기적 신화이거나 특정한 정치세력의 이익을 위한 위선적 정치 강령 혹은 상황 논리에 머물 가능성이 상존한다.
유라시아 연합을 비롯한 푸틴의 유라시아주의 구상은 강력한 국가의 재건과 다극적 세계의 구축이라는 러시아의 핵심적 대내외 전략의 표현이다. 푸틴의 유라시아주의는 대내적으로 체제 전환 이후 러시아 사회를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단일한 국가 이념과 대외적으로는 세계지역화의 경향 속에서 미국을 위시한 서구 세력에 대항할 수 있는 지역 기구의 절대적 필요성에서 비롯되었다. 유라시아 공간의 연대와 통합을 위한 철학적 원칙이자 이론적 토대로서 대중적 공감을 얻어가고 있는 푸틴의 유라시아주의 구상은 다양한 차원에서 적지 않은 과제들에 못지않은 커다란 잠재력과 미래적 전망을 지니고 있으며 유라시아경제연합은 그것을 실현하는 중요한 지렛대로 평가되고 있다.
나자르바예프의 유라시아주의는 유라시아 공간의 중심에 위치한 카자흐스탄의 지정학적, 지경학적, 지문화적 위상과 소명에 대한 독창적 인식에 기초하고 고유한 내용과 과제를 지닌 독립적인 정치-이념적, 사회-경제적, 문화-역사적 구상이다. 나자르바예프의 유라시아주의는 종래의 유라시아주의와는 달리 모든 유라시아 민족과 국가들의 정치적, 경제적, 역사적, 문화적 평등과 화해, 평화와 안보, 상생과 번영을 중시하며 글로컬한 문제들의 해결을 위한 동서양과 유라시아의 협력을 지향한다. 나자르바예프의 유라시아주의는 학술적, 이론적 추구에 머물지 않으며, 현실적인 형식과 실천적인 구체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유라시아주의 역사에서 각별한 위상을 지닌다. 이에 ‘카자흐스탄국민의회’와 ‘세계종교포럼’ 그리고 ‘유라시아연합’으로 대표되는 나자르바예프의 유라시아주의는 카자흐스탄을 비롯한 유라시아 공간에서 다양한 민족(국가)들 사이의 새로운 상호관계와 새로운 지역질서의 창조를 통한 참다운 공동체 건설의 대안적 기획으로 주목을 끌고 있다.
러시아에서 사상과 이념은 보다 보편적인 가치 체계에서도 드러나는데, 대표적 경우가 러시아 지성사와 문화사에서 핵심적 범주인 진(眞)과 미(美)이다.
러시아어에는 ‘진(眞)’을 표현하는 두 개의 단어 ‘프라브다’와 ‘이스티나’가 존재하는데, 현대 러시아어에서 ‘이스티나’는 신의 영역에 속하는 초월적, 불변적, 절대적 진리를 가리키고, ‘프라브다’는 상대적이고 주관적인 인간의 진실에 상응한다. 하지만 고대에는 두 단어의 상관관계가 현대의 그것과는 판이했는데, 기독교 전래 이후 고대 러시아적 인식에서 ‘이스티나’는 인간의 실제인 현실세계와 ‘프라브다’는 진정한 실제인 영적세계에 관련되었다.
하지만 종교적 맥락을 벗어나는 근대 러시아적 인식에서는 ‘이스티나’는 불변적인 자연법칙, 과학적 원리에 적용되고, ‘프라브다’는 점차 인간세계, 현실세계와의 일치를 가리키며 두 단어의 의미적 근접화 현상이 발생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반까지 ‘프라브다’의 복합적 개념 중에서 가장 부각되던 의미는 정당성이었다. 따라서 당시 러시아에서 출현한 다양한 사상, 종교철학, 문학작품이 하나같이 ‘프라브다’에 열중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프라브다’는 단순히 진실을 뛰어넘어 정당성을 근거로 사회 선동과 구호의 역할까지 담당했다.
현대 러시아어에서 ‘프라브다’는 일상의 의사소통에서 ‘참’의 의미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단순히 화자의 말이 사실임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정직하고 솔직한 사람이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이처럼 상호 밀접하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지니는 ‘프라브다’와 ‘이스티나’에는 러시아 문화의 핵심적 가치가 담겨있다. ‘진’과 ‘정의’의 통합이자 솔직함을 관념화하는 ‘프라브다’와, 절대적, 초월적, 보편적 진을 가리키는 ‘이스티나’의 존재는 러시아적 진 개념의 복합적이고 다면적인 특성을 드러내주며 진의 가치에 대한 인식의 다양성을 마련해준다.
러시아 문화와 예술 그리고 일상에서 또 다른 핵심적 범주인 미는 인간의 감정이 긍정적이고 유쾌하며 만족스럽고 행복한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사물이나 추상적 가치에 대해 부여하는 말이다. 러시아어로 아름다움, 미는 ‘크라소타’로, 형용사 ‘크라시브이’의 명사형이며 어근은 아름다움의 의미를 가진 ‘크라스’이다. ‘크라스’는 매력적으로 보이거나 아주 좋은 것 등의 의미를 가지며, ‘장식, 예쁨, 미인, 영예’ 등의 의미를 지닌 슬라브어 공통의 어근으로 다양하게 활용되며 발전하였다. 이는 ‘질서와 조화, 가치’와 연관된 고대 그리스어 ‘코스모스’에서 기원한다고 알려져 있다. 근대에 이르러 미학의 범주로서 ‘지극히 아름다운 것, 극미’를 뜻하는 ‘프레크라스노예’는 ‘미’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미의 대립적 개념은 ‘추, 추한 것, 형상이 없거나 일그러진 것’으로서 ‘베즈오브라지예’이다.
미는 인간의 감정과 정서에서 진과 선에 대한 개념과 더불어 핵심적인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고대에서부터 인간은 인간 자신과 세계를 진·선·미라는 세 가지 가치로 이해하여 왔다. 그리고 그 범주들은 각각 과학과 윤리, 예술의 영역으로 분화되며 발전하였다. 진·선·미는 각각 독립적인 범주이며 개념이지만, 상호 매우 긴밀한 관계를 지닌다. 이들의 복합적인 상호관계 양상은 역사적으로 문화의 다양한 정체성을 형성한다. 미는 어떤 문화권에서 예술의 영역에서 가장 세련된 형식으로 드러나지만, 일상의 삶에서도 다양하게 작동하는 개념이다.
러시아정교의 전통은 오랫동안 러시아 정신문화의 핵심적인 요소로서 미의식의 형성과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런 이유에서 러시아 문화에서 미는 다른 어떤 문화에서보다 종교적·윤리적 의미를 깊게 지닌다.
고대나 중세에 미는 윤리의 부속물로 인식되고 중요한 개념으로 여겨지지 않거나 배제되어야할 것으로 인식되었다면 근대에 이르러 미는 종교적 윤리적 의미에서 벗어나 보다 독자적이며 개인적인 의미를 획득하기 시작한다. 19세기 중반과 후반에 시작된 미에 대한 다양한 논쟁은 미의 독자적 가치를 수립하기 위한 과정이었으며 이는 모더니즘 예술의 발전과 현대적 미의식의 형성을 촉발한다.
현대의 미의식은 극도로 개인적인 가치를 담아내는 방향으로 발전해갔고, 그에 따라 윤리성과의 갈등이 치열해지기도 한다. 인간의 미의식이 다양하게 세분화·개별화·개인화된 것은 현대문화의 중요한 한 특징으로 특히 전체주의 문화를 극복하는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현대의 미는 공동체 문화와 윤리의 붕괴, 인류 문화의 보편적 가치의 실종을 촉진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다민족, 다종교, 다언어라는 다양성과 복수성에 기초한 복합적 정체성을 간직한 독특한 문화 공간인 유라시아에서 종교와 관념의 영역 역시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적 다양성과 복수성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요컨대 종교의 영역에서는 러시아정교와 이슬람으로 대표되는 공식 종교와 함께 샤머니즘, 민간신앙으로 대표되는 비공식 종교가 다채롭게 공존한다. 또한 관념의 영역에서도 러시아인들의 자기 정체성에 대한 추구인 이른바 ‘러시아 이념’이 다양한 방식으로 현상하는데, 사상과 이념으로서 계몽주의, 자유주의, 슬라브주의와 서구주의, 인민주의, 마르크스주의, 레닌주의, (신)유라시아주의 등이 있고, 문예와 일상에서 핵심적 가치 범주로서 진(眞)과 미(美)가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