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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베이스 소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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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기 재조일본인 언론인 아쿠타가와 타다시(芥川正)가 발행한 <<부산일보>>는 당시 조선 내 신문발행부수 3위, 광고수 2위로서,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 다음으로 영향력이 컸던 신문이다. 특히 광고수에 있어서는 1938년 당시 조선․만주․일본을 통틀어 일본어권 신문 중 28위를 차지할 정도의 거대 언론기관이었다. 조직 면에서 보더라도, 1942년 현재 부산․경남을 비롯한 조선 내 주요도시와 나아가 일본의 하카타․오사카․도쿄, 만주국의 간도․봉천․신경․대련, 중국의 상해․북경․천진․하얼빈에 이르기까지 총 116개의 지사 및 지국이 개설되어 있어, 당대 일본의 유수 언론과 비교하여도 결코 뒤지지 않는 사세(社勢)였다. 이러한 언론파워 때문에 일제 말 조선총독부의 ‘1道 1紙’ 정책에도 살아남아 타 신문사를 병합하고 부산․경남지역에서 유일한 신문으로 일제 패망 시까지 발행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거 한 언론사의 ‘영광’이 갖는 현재적 의미는 당대 발행되었던 막대한 분량의 신문 원본이 현전한다는 것에 있다. 1930년의 예만 보더라도, 경성․부산․인천을 포함한 조선 내 주요 도시에서 총 32종의 재조일본인 신문이 발행되었으나, 현재 남아 있는 것은 <<경성일보>>, <<조선신문>>, <<조선시보>>, <<부산일보>> 4종뿐이다. 그 중 <<부산일보>>는 일부 결호가 있지만 <<경성일보>> 다음으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고 할 수 있다. <<부산일보>>는 일문으로 발행되어 독자층이 일문 해독이 가능한 일본인과 일부 조선인에 국한되어 있었으나, 신문의 지면 구성과 기사의 내용으로 볼 때 국문지인 <<조선일보>>나 <<동아일보>> 못지않은 사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일차적으로 <<부산일보>>는 일본 본국 소식 및 총독부의 동향, 각 지역별 재조일본인사회를 상세하게 다루고 있어 국문지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일제의 지배정책 연구를 보완해 준다. 그러나 일문지라고 해서 <<부산일보>>의 취재망과 관심 범위가 일본인사회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부산일보>>의 최대 장점은 지방소식으로, 소도시 읍면 단위까지 침투한 지사․지국․보급소 망을 동원하여 부산을 비롯한 경남과 경북 일대에서 일어난 사건을 상세하게 취급하고 있다. 즉, 지방사회에 관한 한 일본인사회는 물론 조선인사회에 대해서도 매우 풍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서 국문 중앙지로는 접할 수 없는 지역의 현황과 속보를 어느 자료보다 상세히 알 수 있다. 따라서 지역사 연구를 위해 매우 긴요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부산일보>>의 자료로서의 가치는 부산․경남․경북 등 영남권뿐만 아니라, 타 지역 연구자들도 인정하는 바이다. 비록 부산에서 발행된 지방지이지만, 경북은 물론 호남, 충청, 강원 등의 소식을 전하는 지방면이 매일 혹은, 일주일에 2-3회의 주기로 발행되고 있어서 타 지역의 지역사 연구에도 긴요하게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해당 지역의 지사․지국이 중심이 되어 지역의 발달상을 소개하는 특집은 향토사 자료로서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
한국연구재단(구 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2005년 ~ 2008년까지 3년에 걸쳐 일제시기 부산일보 기사(1914~1944)를 대상으로 총 429,598건의 기사 내용을 축적하였다.
본 연구는 이러한 연구를 효율적으로 저장, 유지, 활용하기 위해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2011년 12월 ~ 2012년 6월까지 6개월에 걸쳐 일제시기 부산일보 기사 목록 및 기사 검색을 위한 DB와 검색시스템을 구축하였다. 직관적 내비게이션 및 웹 검색기를 통하여 다양한 용어에 대한 신속한 정보 제공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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