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자 프랑스의 독립을 요구하며 영국 런던에서 ‘자유 프랑스위원회’(Forces françaises libres)를 결성한다. 그 이후, 알제리로 옮겨가 ‘프랑스국민해방위원회’(Comité Français de Libération Nationale)로 개편하고, 앙리 지로(Henri Giraud) 장군과 함께 공동위원장에 취임해 독일에 대항하여 항쟁을 이어간다. 1944년 프랑스가 독일로부터 해방되면서 드골은 파리로 다시 돌아오고, 두 차례에 걸쳐 임시정부 주석이 된다.
<독일군에게서 해방된 파리로 입성하는 드골장군>
1947년 제 1 정당 ‘프랑스국민연합’(Rassemblement du peuple français, 이하 RPF)을 조직해 1951년 선거에서 당수가 된다. 그러나 1953년 선거에서 RPF가 과반수를 득표하지 못하여 제정당의 연립내각을 형성하려는 정계의 움직임이 일어나자 이에 동조할 수 없던 드골은 1946년 1월 20일 돌연 사퇴한다.
1954년 알제리에서는 알제리의 독립주의자들이 프랑스로부터의 해방을 요구하며 결성한 단체 ‘민족해방전선’(Front de Libération nationale, 이하 FLN)을 창설한다. 당시 정권 교체로 정치적으로 불안정했던 프랑스는 알제리의 독립 요구로 더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알제리의 독립을 인정할 수 없던 르네 코티(René Coty, 1954~59 임기)대통령은 알제리 사태를 안정시키기 위해 인민공화운동 지도자인 피에르 플랭랭(Pierre Pflimlin)을 알제리로 보낸다. 하지만, 그와의 협상에서 이미 실패를 경험했던 FLN측은 독립 투쟁을 계획하고 5월 24일 프랑스의 코르시카를 점령한다. 다급해진 코티대통령은 알제리를 안정시키기 위해 반란군들의 지지를 얻고 있는 드골을 알제리로 보낸다.
<월간지 '파리마치'지 표지: 알제리에 도착한 드골장군>
<알제리 국민들에게 연설하는 드골장군>
알제리 사태를 수습한 후 드골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프랑스는 1958년 9월 국민투표를 통해 프랑스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어 제 5공화국이 수립된다. 이후, 드골은 10월 정당 ‘신공화국연합’(Union pour la Nouvelle République)을 창설한 뒤 이듬해인 1959년 1월 제 5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시민들에게 환호받는 드골대통령>
<국가 안정화를 말하는 드골대통령>
드골대통령은 유독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연설하는 것을 좋아한다. 동영상에서 볼 수 있듯이 처음에는 안경을 쓰고 연설을 시작하지만, 자신의 외모를 관리하기 시작한 그는 국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화면에서 자신의 얼굴이 잘 보이도록 안경을 벗어던지고, 더 나아가 얼굴 표정 관리도 하게 된다.
<텔레비전 연설을 좋아한 드골대통령>
이러한 태도는 5월 운동에 가담한 학생들의 웃음거리가 된다. 학생들은 인기 관리를 하는 드골대통령을 비웃고, 야유를 보내기도 한다.
<드골대통령의 텔레비전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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