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러시아 문화 토포스 비교 사전 상세보기
광기
범주명 인간과 정서
토포스명(한글) 광기
토포스명(프랑스) folie
토포스명(러시아) безумние
정의 1. 상식과 규범에서 일탈할수록 광기의 정도는 커진다.
토포스의 기원과 형성(프랑스)   프랑스어의 ‘푸 fou[fu]’ 혹은 ‘폴리 folie[foli]’ 는 ‘미친’ 혹은 ‘미쳤음’ 이라는 의미로 그 기원을 거슬러 오르면 라틴어의 동사 follere 에서 연유한다. 이 라틴어 동사는 애초에 “풀무의 바람처럼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다”라는 의미에서 출발했다. 고대 그리스의 엠페도클레스가 우주 삼라만상을 네 가지 요소로 환원시켜 설명하려 했을 때의 그 ‘물, 불, 흙, 바람’ 가운데, 광기는 바로 그 ‘바람’ 혹은 ‘공기’ 쪽으로 다가가는 원소 혹은 개념일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이 가능하다. 
  광기는 비정상으로 간주되는 심리적 혹은 행태적 특성을 지칭하는 특정한 스펙트럼이다. 그것은 우선, 사회적 평균 기준을 벗어나는 어떤 상태, 그래서 타인들을 또는 자신을 위험에 빠트릴지도 모르는 상태로 간주된다. 그것은 일시적일 수도 지속적일 수도 있으며 무언가에 의해 촉발된 것이기도 하고 원래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정신의학에서 이 개념은 매우 다양한 정신현상들을 모두 지시할 수 있으며 따라서 그것의 성격에 따라, 그리고 정도에 따라 다양한 용어들, 가령 정신분열, 착란, 병적 긴장, 양극장애, 편집광, 강박관념 등을 동원해 지칭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광기는 어떤 질병이었다. 그 병은 정도에 따라, 남들을 위해할 수도, 자신을 고통 속에 빠트릴 수도, 다행이 치료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다양한 증상에 맞추어 권장되는 치료법도 여러 가지였다. 가장 원초적인 것으로는 푸닥거리부터 시작하여, 광석절제 수술(두개골을 열고 광증의 원인으로 간주되는 광물질을 잘라내기), 대화술, 사혈(피뽑기), 찬물 퍼붓기 혹은 침수시키기 등이 기록되어있다. 

  만약 광기 혹은 광증이 이러한 의학적 측면에서만 다루어졌더라면 하나의 문화적 토포스를 구성하는 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거기에는 어김없이 정신적, 종교적 담론이 첨부된다. 위에 언급된 ‘푸닥거리’가 한 징표이긴 하지만, 광기는 당연히, 어떤 사악한 혼령이 개인의 영혼을 잠식한 결과로 간주되기도 했다. 이 단계에서는 주민들 사이에서 발현하는 광증에 대한 대처는 기독교가 자리 잡기 전에는 족장 혹은 샤만의 몫이다. 고고학이 적어도 7000년 전의 것으로 발굴한 여러 개의 구멍이 뚫린 두개골은 샤만의 전통적 치료방식을 엿볼 수 있게 해주며 동시에, 당시의 샤만이 육체를 벗어난 순전히 정신적 차원에서만 작동하는 주술사가 아니라 사람들의 몸까지 관장하는 치료사이기도 했음을 짐작케 한다. 
  사회가 분화되면서 더 이상 의학의 관심사가 되지는 않는 일정한 행태들에 광기의 규정이 적용된다. 개인의 몸과 재산이 일정한 안정성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의 보편적 지배를 ‘질서’라고 부르기 시작하고 그것을 확보하기 위한 권력이 그 대적자들을 ‘광인’이라 지명했을 것이다. 그 질서는 개인들을 우선 개인들 스스로로부터 지켜줘야 했는데, 자해나 자살을 하지 않도록 또는 자신의 재산을 스스로 파괴하지 않도록 가르쳤으며, 다른 광인들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노출, 난동, 공공재산의 파괴 및 반사회적이라 규정되는 말들을 퇴치함으로써 그 질서를 유지하려 하였다.
토포스의 기원과 형성(러시아)   광기를 뜻하는 ‘베즈움니예 безумние[bezumnie]’는 어원적으로는 ‘이성, 상식’등을 뜻하는 러시아어 ‘움 ум[um]’에 ‘부족, 결핍, 부재’의 뜻을 지닌 접두사 ‘베즈 без[bez]’가 붙어 이루어진 합성어이다. 고대 교회 슬라브어 ‘움’은 ‘숙고, 고찰, 인식, 이성, 의미, 사상’등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νοῦς, διάνοια’에서 유래가 되었으며, 본질적인 의미는 인식하고 사유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뜻한다. 따라서 ‘безумние’는 인식이나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인 이성의 부재와 결핍을 의미하며 광기의 토포스를 규정짓는 근간에는 이성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러시아어에서 ‘광기’를 의미하는 유사어들은 대부분 독립적인 형태의 단어가 아닌 ‘ум’에 접두사를 붙여 형성된 단어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수마스쉐스트비예 сумасшествие’ 는 ‘с (이탈, 분리) + ‘ум’ + сойити (벗어나다, 내려오다)’의 구조로 이루어져있고, ‘우마리숀니이 умалишённый’ 역시 ‘ум’ + ‘лишённый (박탈된, 상실된)’의 결합을 통해 ‘광기, 미친’이라는 뜻을 가지게 된다.
  러시아어 ‘광기’의 어원 중심에 ‘이성’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서유럽의 광기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광기의 역사』에서 푸코는 광기를 단순히 정신 병리학적인 병이 아니라, 각 시대에 따라 변화하는 다양하고 이질적인 의미로 파악하고 그러한 광기를 규정짓는 데에 무엇보다 이성과 비이성의 대립 쌍을 설정하여 설명하고 있다. 고대로부터 광기가 억압, 폭력, 감금, 분리, 배제 등과 함께 하나의 의미 쌍을 이루어 왔다면 그것이 고전주의 시대에 이르러서는 감금이라는 역사적인 대사건을 통해 사회로부터 철저히 배제되기 시작하였고, 이때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 짓고 가르는 기준이 되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이성이었다. 따라서 광기의 보편적인 토포스가 이성의 부재나 결핍, 이성으로부터의 소외, 억압 등을 의미한다고 볼 때, 러시아어의 ‘광기’의 어원은 유의미하며 적절한 형태로 결합되었다고 볼 수 있다. 광기는 오랜 인류사에서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인식되어왔다. 광기는 사회적 규범, 특히 사회의 ‘정상적’인 기준들로부터 일탈한 특정한 행동 및 사고들을 의미했으며, 사회적 인습이나 관습으로부터의 이탈 행위, 정상적 오성기능을 지닌 인간이 병적 상상으로 인해 고통 받는 정신착란이나 기이한 자기 파괴적 행위들을 의미했다. 따라서 서구사회에서 광기의 토포스는 인간정신의 어두운 면으로서 인식되어 오랫동안 억압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나 서구의 고대와 중세 사회에서 광기는 푸코의 규정대로 ‘악’이라는 일반적인 인식 이외에 신앙에 바탕을 둔 신비한 현상이라는 또 다른 토포스를 형성하기도 했다. 특히, 중세의 광기는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 할 수 없는 종교적 현상을 포착하는 수단으로서 인식하였으며, 광인들은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거나, 신비한 현상을 해석하거나 예언하는 사람으로 여겨 그들을 존중하곤 하였다. 
  신의 선물로 여기기도 하였던 광기의 토포스는 러시아 중세 문화에서 나타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유로디비’이다. 그리스도를 위해 일부러 바보스럽고 비정상적인 행위를 함으로써 미치광이 행세를 하는 러시아 정교의 고행성자를 뜻한다. 유로디비는 제한적이고 불완전한 인간의 인식, 즉 이성을 부정함으로써 불가해한 신의 신비한 본질에 접근하고자 했던 동방정교의 부정신학의 교리에서 출발하였다. 아무도 볼 수 없는 높은 정신적 세계나 고상한 진리는 광기의 상태가 되어야 도달 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광기에 대한 독특한 해석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유로디비의 전통은 비잔티움 교회에서 시작되었으나 서유럽에서는 그 숫자가 미미하였고, 16세기 이후에는 거의 소실되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는 그 명맥이 꾸준히 유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숫자동안 적지 않아 유로디비의 전통은 러시아만의 고유한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유로디비의 전통은 이후 서유럽의 광기와 차별되는 중요한 원천으로 작용하는데, 러시아에서의 광인은 정신적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도록 선택된 사람이며, 대중은 그들에게 공포가 아닌 연민과 존중의 감정을 느끼곤 한다. 
  유로디비적인 광기는 이후 러시아 문학에서도 그 현상을 종종 찾아 볼 수 있다. 푸시킨의 『보리스 고두노프』에서 유로디비인 니콜카는 사람들이 모인 광장에서 어린조카 드미트리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차르 고두노프에게 헤롯왕이라고 비난하며,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를 유로디비라고 칭하기도 한다. 
토포스의 전개와 사례(프랑스)   광기의 토포스는 비정상, 헛소리, 질병이라는 부정적 인식 이외에 종교적 영역에서 다소 다른 형태로 나타나곤 하였다. 즉, 지혜, 양식, 이성, 진리 등은 아무에게나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몇몇 특별하고 우월한 개별자들에게 먼저 우선적으로 계시된다. 특히 신의 메시지의 커뮤니케이션은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 그것을 담지한 자들은 일상인들의 눈에는 무언가 ‘다른’ 존재였다. 그들이 때로 ‘미친 사람’으로 간주되기도 하였다. 
  광기의 이러한 측면은 고대의 선각자들에 의해 이미 긍정되고 있었다. 데모크리투스는 “약간의 광기 없이는 시인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하였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광기가 포함되지 않은 천재는 없다”라고 말하면서 광기는 범상함의 반대말이라는 지위를 부여받기도 한다.
  서구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의 광기는 근본적으로 ‘저기’ 혹은 ‘저 너머’ 또는 ‘저 밑에’ 있다. 그러한 숙명은 근대로 들어오는 고전주의 시대에 이성이 자신을 처음으로 규정한 방식에 대해 푸코가 역사적으로 내린 진단에서 이미 드러난다.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에서 그가 내린 진단에 따르면 이성은 스스로를 부정적인 방식으로만 규정할 수 있다. 즉, “네가 누구냐? 너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것이 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반대편에 있는 광기를 가리키며 “나는 저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푸코는 “비이성(착란 혹은 광기)은 이성의 (존재) 이유가 된다.”고 지적한다. 
  광기는 혹은 광인은 공동체의 구성물 혹은 구성인이었으며 그것은 정상의 것들과 일정한 정도의 공존의 자격을 가지고 그 존재를 누리고 있었다. 근대의 이성과 계몽이 광기를 타자화하기 시작할 때까지 광기는 결코 엄격히 격리되거나 수용되지 않았으며 집단의 실존 바로 곁에 늘 공존해 왔었다. 그래서 서구의 정신들은 정신사 혹은 문학사의 이면에서 늘 환상과 광기를 기억하고 언급해 왔다. 예컨대, 프랑스 작가는 아니지만, 20세기에 들어와서도 버지니아 울프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하나의 체험으로서 광기는 내가 당신을 확신할 수 있는 가장 멋진 것이지만, 그것은 냄새가 없으며, 내가 지금까지 써온 대부분의 사물들이 녹아 있는 용암과 같다. 그것은 그 모든 형태들 중에서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나서는, 건전한 정신들처럼 미력하게 찔끔거리지 않고, 아예 끝장을 봐버리는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보쉬의 그림으로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는 <광인들의 배>의 주제는 실상 프랑스를 위시한 서유럽의 수많은 작가, 화가 그리고 창작인 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고 모티브를 제공해 왔다. 수녀 복장을 한 여인이 악기를 연주하고, 함께 배에 탄 군상들은 결코 배가 나아가는 행선지나 목적지 따위엔 관심이 없이 쾌락만을 추구하는 듯이 보이지만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 위의 나뭇가지 사이에는 죽음을 혹은 신을 상징하는 해골이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보쉬의 그림 외에도, 중세가 끝날 무렵 스트라스부르의 제바스티안 브란트의 풍자 작품 『바보배』를 기점으로 하여, 스탠리 크레이머 감독의 영화 <바보들의 배>, 튀르프의 연재 만화 『광인들의 배』를 거쳐, 21세기의 프랑스 공상과학 소설가 리샤르 폴 뤼소의 동명의 소설에 이르기까지, 광인의 주제는 중단되지 않았다. 

  이러한 끈덕진 정서적 요소인 광기가 서구인들의 심성 속에서 사라져 본격적으로 위축되기 시작하는 것은 주지하다시피, 이성과 계몽의 이름으로 시작되는 17세기에 이르러서일 것이다.
  데카르트가 사유하는 주체로서의 정신의 자기 확인을 위해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던 저 사악한 정령의 위협을 받기 시작하면서 그것은 문화적으로 이타적 존재, 다른 어떤 것으로 규정되기 시작한다. 광인은 이제 더 이상 안타깝게도 질병에 걸려 시달리는 자가 아니다. 그는 낯선 타자로 규정된다. 
  푸코에 의하면 계몽주의 시대 한 가운데 등장한 인물 ‘라모’이다. 라모는 드니 디드로가 그의 시대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여질 것 같지가 않을 것으로 여겨서 죽을 때까지 원고를 감추어 출판을 미룬 소설 『라모의 조카』의 주인공이다. 헤겔과 괴테가 주목한 이 가공인물의 말을 들어보면,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에서의 문화적 토포스로서의 광기의 속성과 그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나는 살아오면서 한 번도, 말하기 전이나 말하는 중이나 말하고 난 후에도 생각을 해 본적이 없어요.”

“나는 괴상한 것들이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 자루란 말입니다... 그들(정상인들)에게 나는 정신병원 전체를 옮겨 놓은 것과 같았다구요.” 
“틀림없이 그치들은 지금 자기들을 웃겨줄 내가 없으니 개처럼 따분해 하겠지요.” (디드로, 『라모의 조카』, 1805)

  오랜만에 분별과 양식을 갖추고 말하기 시작하는 라모에게 주어진 것은 추방과 배제였다. 정상인들이 말한다. : “상놈의 자식, 꺼져. 다시는 얼씬거리지도 말어. 세상에, 저게 분별을, 이성을 가지려고 들어! 꺼져! 그 따위 자질은 우리가 가진 것도 남아돈다.”
  19세기 이후의 프랑스인들은 이렇듯 극단적으로 떨어져나간 광기를 때로 두려워하거나, 때로 그리워하거나, 때로 복권시키려는 미친 주장들이 담긴 문학적 발현물을 문화적으로 누린다. 네르발의 『오렐리아』, 모파상의 『오를라』를 비롯한 광기를 주제로한 단편들을 우선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주인공들은 자유로운 몽환과 환상으로 날아오르기도 하며, 때로 연유를 알 수 없는 환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랭보는 참된 시적 성취에 도달하여 삶과 우주의 진실을 직관하기 위한 조건으로 일상적인 ‘모든 감각들의 뒤틀림 혹은 착란’을 요구하기에 이른다.
  20세기의 작가들은 합리와 광기 사이에 유지되어온 폭력적 권력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인식하려 드는 듯하다. 극작가 이오네스코는 “이성이란 강자의 광기이며 약자의 이성이 곧 광기이다”라고 선언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육체와 정신을 끝까지 헤집고 뒤틀고 찢어보려는 무대 위의 아르토의 잔혹극들은 미학적 실존적 차원에서 광기를 극단적으로 연출한다.
  앙드레 브르통과 트리스탕 자라 등의 일군의 아방가르드 정신들은 합리적 이성의 인식의 대상인 삶과 현실 자체를 부정하려 드는듯하다. 그들의 예술과 삶의 진정한 대상은 눈앞에 명백히 현존하는 현실이 아니라, 그 현실이 감추고 있는 것, 즉 ‘초현실’인 것이다. 브르통의 『초현실주의 선언』는 20세기에 들어와서 광기의 토포스가 자리 잡은 위치를 잘 보여주는 셈이다. 
토포스의 전개와 사례(러시아)   러시아 문학에서 광기는 19세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으며 가장 중요한 문학적 토포스 중의 하나가 된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낭만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광기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활발히 진행된 점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유로디비의 전통과 정교적 정신세계를 바탕으로 하는 러시아 문화 환경의 토대와 혹독한 생활환경과 억압적이며 혼돈적인 사회 문화 속에서 인간 이성의 저편에 있는 광기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관심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러시아 낭만주의 초기 작품들에 나타난 광기들은 당대 서구 낭만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주로 정신적 고통과 불행한 사랑에 의한 주인공들의 개인적인 감정의 극한적인 형태들로서의 광기들이 주를 이룬다. 포고렐스키의 『분신, 혹은 소러시아에서의 나의 연회들』, 폴레브이의 『광기의 천국』, 오도옙스키의 『러시아의 밤들』등이 그러한 유형의 작품들이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러시아 사회의 광기는 억압적인 정치적 환경과 물질과 출세 지향적 사회에 대한 반향의 결과로 종종 분출되었으며, 19세기 러시아 작가들은 그러한 현상들을 자신의 작품에 빈번히 드러내곤 하였다. 
  그리보예도프의 희곡 『지혜의 슬픔』(1824)은 천재와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들과의 갈등이라는 낭만주의 광기의 본질이 러시아적 현실과 결합하여 독특한 광기의 토포스를 만들어 낸 작품이다. 『지혜의 슬픔』이라고 우리말로 주로 번역되고 있는 이 작품의 러시아어 원제목은 ‘고레 아트 우마 (Горе от ума)’이며, 이것을 풀이하자면 ‘ум’, 즉 ‘이성, 똑똑함, 현명함’ 때문에 생기는 ‘고통, 괴로움, 슬픔’(горе) 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리보예도프 자신이 서문에 ‘이 희곡은 1명의 이성적인 인간과 25명의 어리석은 인간들이 등장 한다’라고 쓴 것처럼, 희곡은 주인공 차츠키가 파무소프를 비롯한 당대 러시아 모스크바 사회의 후진성과 부정, 부패함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지극히 정상적인 차츠키의 ‘이성(ум)’은 파무소프의 모스크바 사회에서는 ‘광기(безумние)’로 인식되며, 차츠키는 정신병자, 즉 광인으로 취급받는다.
 
“D씨 : ... 혹시 당신 차츠키 얘기를 아십니까?
자고레츠키: 무슨 얘긴데요?
D씨: 그가 미쳤다는군요!
자고레츠키: 아, 알고 있습니다. 기억납니다. 들었어요...
                    사기꾼 숙부가 그를 정신병자들 사이에 숨겨 두었는데, 
                    잡아다가 정신병원에 넣고 쇠고랑을 채워 두었답니다.” 
                                               (그리보예도프, 『지혜의 슬픔』, 1824)

  러시아 현실의 부조리함에 대해 지극히 이성적인 비판을 가한 차츠키의 행동은 그를 이해하지 못하며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에서 역으로 광기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잉태한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문학 작품에서 뿐만 아니라, 데카브리스트 운동의 상황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1825년 서유럽의 진보적인 자유사상을 섭취한 젊은 청년 장교들을 중심으로 제정 러시아 사회의 부패된 현실을 개혁하고자 일으킨 봉기는 실패로 돌아간다. 주모자들을 체포, 처형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행위는 당대 사회를 무질서하게 만드는 광기로 취급되었고, 페스텔, 무라비요프, 르일례프, 류민, 카호프스키 등 주모자들은 광인으로 몰려 처참하게 교수형을 당하였다. 
  19세기 중반이 되면서 러시아 사회의 광기는 이전과는 조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낭만주의를 거쳐 사실주의의 시대로 접어든 이 시기는 급속한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되어가는 인간성의 문제와 더불어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러시아 삶의 실재가 개인의 광기에 직접 반영되어 나타나곤 하였다. 
  이 시기의 광기는 동시대 현실을 모사하면서 시대의 거짓을 폭로하고, 시대의 고통을 직시하는 기능을 하였으며, 광인은 병든 사회의 산물이자 표징으로서 묘사되었다. 이러한 광기과 광인은 고골리의 『광인일기』(1835)에서 매우 선명하게 드러난다. 
  마흔 두 살의 빈털터리 말단 관리 포프리쉰의 일기 형식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부분은 주인공 포프리쉰이 미쳐가는 과정과 그 원인에 대한 기록들이며, 두 번째 부분은 주인공이 완전히 미쳐버려 스스로를 스페인의 왕이라 생각하고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날짜 순서로(‘서기 2000년 4월 43일’, ‘30월 86일 낮과 밤사이’, ‘349년 2월 34일’, ‘날짜가 없는 날’ 등) 진행된다. 9급 관리 포프리쉰의 정신분열은 출세에 대한 강한 욕구와 더불어 당대 사회 구조상 그것을 결코 이룰 수 없다는 한계성을 인식하면서 시작된다. 게다가 주인공은 국장의 딸인 소피를 사랑하며 그녀와 결혼을 꿈꾸지만 냉담한 그녀의 반응과 신분의 벽을 넘을 수 없다는 사실에 사회적 열등감에 빠지면서 그녀에 대한 사랑이 변태적 성적 욕망으로 변환되면서 급격한 자아분열 현상을 보인다. 

“2000년 4월 43일
오늘은 위대한 경사가 있는 날이다. 스페인에 왕이 살아 있었다. 그 왕이 바로 나다. 오늘에야 비로소 이 사실을 알았다. 솔직히 말해 번개처럼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찌하여 나는 나 자신을 지금까지 9급 관리라고 생각하고 상상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난 어떻게 그런 어리석은 공상을 하게 되었을까? 아무도 나를 아직 정신 병원에 보내려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고골리, 『광인일기』, 1835)

  『광인일기』에서 작가는 니콜라이 황제 시대의 비정상적인 사회적 구조, 즉 인간 개성의 가치를 사회적 계급주조의 지위에 의해 규정되는 당대 사회의 모순점을 말단 하급관리의 광기를 통해 포착한다. 따라서 소설의 두 번째 부분에서 포프리쉰이 스스로를 스페인의 왕으로 규정하는 것은 그의 출세에 대한 욕망의 극단적인 표출인 동시에 전형적인 관리의 의무에서 벗어나 사회 계급구조에서 자유를 획득하게 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즉, 고골리의 『광인일기』에 나타나는 광기는 사회적인 고통과 억압 속에서 발생한 광기인 동시에 그 상태를 벗어날 수 있는 자유와 해방으로서의 이중적인 토포스를 발현한다. 

“30월 86일 낮과 밤사이.
장난삼아 잠시 관청에 나갔다. 과장은 내가 굽실거리며 사과라도 할 줄로 알았겠지만, 나는 지나치게 화를 내거나 지나치게 호의를 보이지 않고 무관심하게 그를 대했다. 아무도 안중에 없다는 듯한 태도로 내 자리에 가서 앉았다. 하찮은 관리들을 둘러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너희들 사이에 누가 앉아 있는지 안다면..... 아! 어떻게 될까! 소동이 일어날 거다. <......> 무엇보다도 재미있었던 것은 서명하라고 나한테 서류를 내밀었을 때이다. 녀석들은 내가 판에 박힌 듯이 주임 아무개라고 쓸 거라고 생각했겠지. 그럴 리가 있나! 나는 국장이 언제나 서명하게 되어 있는 자리에 ’페르디난트 8세‘라고 서명했다.”
(고골리, 『광인일기』, 1835) 

  고골리의 『광인일기』와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도스토옙스키의 『분신』(1846) 역시 이러한 유형의 광기가 잘 드러난 작품이다. 전형적인 하급 관리인 야코프 골랴드킨이 주변사람들로부터 철저히 무시하당하고 모욕 받아 정신적인 파멸을 겪어가는 과정을 도스토옙스키 특유한 세밀한 필치로 묘사한 이 작품은 여타의 작품과 다르게 주인공의 자아분열의 환상인 분신이 직접 등장하는 점이 흥미롭다. 주인공 골랴드킨과 똑같이 생긴 분신인 또 다른 골랴드킨은 그를 흉내 내고 사회생활과 직장에서 그의 자리를 뺏고 어디를 가든지 그를 곤경에 빠뜨리고 결국 골랴드킨은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도스토옙스키가 그려내고 있는 골랴드킨의 광기의 근간에는 19세기 중, 후반 러시아 문학에서 자주 언급되는 이른바 ‘작은 인간의 토포스’에서 형성된 관등이 인간성을 지배하고 관등에 의해서만 개인의 우열이 결정되는 비인간적인 관료주의 사회의 현실이 있다. 근대화 과정에서 사회적 제도의 희생물로서의 살아가는 하급관리의 광기를 도스토옙스키 역시 사회적으로 동기화시키면서 인간 가치를 말살하고 가볍게 여기는 비정상적인 사회적 구조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포프리쉰의 경우와 유사하게 골랴드킨의 광기의 실재적인 현상인 그의 분신은 사회적 열등감으로 인한 비겁함과 자기 비하, 상위 계급에 대한 두려움과 질투라는 외적인 사회구조의 결과물인 동시에 그 구조를 벗어나 부와 명예와 쾌락을 누리고 싶어 하는 은밀한 욕망의 비뚤어진 투영의 결과물로 작용하고 있다. 
  20세기 초반 서구 사회의 광기는 기술과학 사회 속에서 사회적, 정신적으로 출구 없는 개인의 분열된 주체에 집착하는 동시에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현대 사회의 왜곡되고 기형화된 사회 전체에 대한 문제에 집중한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의 러시아는 소비에트 사회주의라는 전대미문의 사회가 건설되면서 서구의 광기와는 다소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모두가 행복하고 평등한 유토피아적 사회를 건설하려는 사회주의적 이념은 소비에트 사회 자체에 순응,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광인으로 취급하며,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가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즉, 소비에트 사회주의의 이념 자체가 새로운 의미의 ‘이성’이 되며 이 이념에 대립되고, 이념의 밖에 있는 자는 광인으로 취급된다. 이러한 현상은 20세기 초 러시아 문학에 적지 않게 반영되었는데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1939)가 있다.
  무신론을 신봉하는 소비에트 사회에서 소설 속의 작가인 거장은 예수와 빌라도에 관한 소설을 써서 광인 취급을 당해 정신병원에 수용된다. 흥미로운 것은 불가코프가 거장이 쓴 소설, 즉 소설 속의 소설인 빌라도의 예수에 관한 재판의 내용 역시 지극히 정상적인 예수를 당대 유대인들의 집단적인 광기로 인해 광인 취급을 당해 처형된다는 것이다. 물론, 소설 속의 거장은 악마인 볼란드의 도움으로 정신병원에서 나와서 연인인 마르가리타와 함께 ‘영원한 집’에서 평안을 누리게 되지만, 그 이면에는 작가의 자유로운 창작을 이념의 틀에 맞추어 재단하려는 사회 전체의 집단적인 광기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비교문화적 설명   광기에 대한 프랑스와 러시아의 문화 지형 속에서의 인식은 매우 유사한 형태로 진행된다. 양국 모두 중세 시절 광기는 말그대로 미치광이나 질병으로 인식하는 동시에 종교적 영역에서 신의 계시를 이해하는 특별한 정신 상태라는 이중적 토포스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성의 총체적인 지향을 강조한 17세기 계몽주의 시대는 광기를 , 인간의 결함으로 간주하여 철저히 이성의 대척점으로 인식하였다. 특히, 종교와 이성에 대한 철학적, 사회적 재해석이 시작되면서 광기는 이성과 대립되는 것으로 확고하게 인식되면서 부정적이며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계몽주의 시대에 이성의 권력에 억눌린 광기는 이성에 대한 비판, 인간의 자의식이나 감정 등을 문학적으로 주체화하는 낭만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인간 감정의 극한적인 표출이라는 또 다른 의미의 토포스를 양산한다. 낭만주의 시대의 광기는 ‘이성에 대한 타자에서 이성에 대한 비판’이라는 토포스 속에서 합리주의와 기독교가 지탱한 서구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재해석을 가능케 하였다. 이 시기 광기에 대한 인식은 중세의 그것과 유사하게 정신병이 아니라 일종의 신의 은총이라는 인식과 더불어 특히, 예술적 영감의 근원으로 간주되었다. 
  낭만주의 광기의 토포스는 사실주의의 시대로 오면서 사회적 문제와 보다 긴밀한 형태로 연관되어진다. 이 시기 광기는 동시대 현실을 모사하면서 시대의 거짓을 폭로하고 시대의 고통을 직시하는 메타포로 작용하였고, 광인은 병든 사회의 산물이자 표징으로서 동시대의 지배적인 규범과 가치에 대한 반발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현상들은 20세기로 넘어오면서 급속한 산업화와 문명화에 의해 소외되는 인간 개인에 대한 문제에 더욱 집착하게 되었고, 사회적, 정신적으로 출구 없는 상황에 대한 분열된 주체를 표현하는 동시에 단순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현대 사회의 왜곡되고 기형화된 사회 전체에 대한 토포스를 잉태하였다.
  특히 러시아의 경우 광기는 고골, 도스토옙스키 등 수많은 문학인들의 작품에 그 모티브를 제공하였다. 그 광기들은 프랑스보다는 조금 더 삶의 전면에 부각되어 있는 것이 감지된다. 여기에는 러시아 정교라는 독특한 종교적 영향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20 세기 소비에트 혁명의 와중에 광기의 토포스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적 문맥 속에서 기능하기도 한 점이 이채롭다.
연관 토포스 계몽; 속물; 이성; 환상; 불안;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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